나의 고향, 나의 꿈

프롤로그

by chacha

내가 태어난 도시의 인구는 70만 명.

어릴 적 70만 명은 나의 자랑이었다.

나름 도시에 살며 표준어를 쓰는 젊은이라 자부했지만, 서울의 학원에 가자마자 사투리로 바로 들켜버린다.

(사실 그때까지 '할겨, 말겨'가 사투리인 줄도 몰랐다)

아무튼 인구가 많든 적든, 인천공항에 내리면 지방행 버스를 찾아야 하는 난 그냥 지방 사람이었다.


취업을 꿈꾸며 깨달았다.

서울에서 태어난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아르바이트를 위해 전철로 왕복 네 시간을 오가고, 면접을 보기 위해 첫차를 타야 했던 내게 서울의 일자리는 신기루 같았다.

하루살이 대학생에게 월세 지원이 되는 곳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우리 집은 도와줄 수 없는 형편이었기에 취업까지의 길은 그저 막막했다.


다행히 내 지역에 있는 작은 광고 회사에 합격하였다.

소설을 전공한 나는 글로 일을 하고 싶었기에 희망한 부서는 마케팅, 기획부였다.

하지만 입사하자마자 면접을 본 부서가 사실상 없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지금이라면 바로 그만뒀을 텐데 그 당시 나는 텔레마케팅이 가장 중요한 마케팅이라는 이유에 설득되었다.

그렇게 난 고객센터에 배치되어 인바운드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수월할 리 없었다.

회사는 계약을 따내면 인센티브를 주는 구조였는데, 몇몇은 고객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동의'와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며 무리하게 계약을 밀어붙였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지만, 통화 내용은 내가 들어도 당황스러울 때가 있었다.

하지만 난 회사 편에 서야 했다.

광고 철회를 막기 위해 고객과 회사 사이에서 필사적으로 중재에 나섰다.

나는 분명 내 이름을 말하며 전화를 받았지만, 수화기 너머의 누군가에게 나는 이름 없는 '무슨 년'일뿐이었다.


그렇게 매일 전화기 앞에서 감정을 소모하던 내가 인생의 방향을 틀게 된 건, 정말 우연한 계기 때문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지금 일본에서 인프라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수화기 대신 키보드를 잡고, 고객의 목소리 대신 24시간 돌아가는 서버 상태를 들여다본다.


이것은 영원할 것만 같았던 나의 고향을 벗어나 먼 곳으로 도망친 나의 이야기다.

내가 엔지니어의 세계에 불시착하게 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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