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
거의 새벽에 집에서 나서서 개장시간까지 기다려서 공원 문을 열어주고 한나절을 그곳에 머문 후, 오락실에도 들러 동생의 심적 허기를 달래주고 만화방에도 들러 나의 허기를 채우느라 이래저래 저녁 어스름에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전날 전쟁의 잔해가 고스란히 낭자해 있을 법한 집은 의외로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전날의 치열했던 전쟁 때문인지 우리 둘을 걱정하느라 그랬는지 소파에 앉아 우리의 귀가를 반색하는 엄마와 아빠의 낯빛이 하루 사이 눈에 띄게 핼쑥했다. 그들도 우리처럼 어떤 난관 앞에서는 동지애가 샘솓는걸까? 그들은 어느새 역할에 충실한 부모로 돌아와 머리를 맞대고 없어진 애들을 걱정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약간의 배신감으로 속이 울렁였다. 저렇게 별거 아닌 연대감으로 회복 가능한 전쟁을 전날 그렇게 피 터지게 치렀단 말인가...
그간의 마음 조림을 궁둥이 팡팡쯤으로 퉁치고 보글보글 끓는 찌개와 따듯한 갓 지은 밥으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생선을 발라가며 무언의 사과가 전해졌다. 발라진 생선을 맛있는 척 받아 들며 오늘의 고달픔은 잊어주겠다는 양 무언의 용서가 전해졌다.
그 저녁 가족의 대화는 우리들의 부재로 이어졌다. 그것은 어느새 가출로 매도되고 있었다. 우리는 내몰림이었는데 그들은 작당해서 가출이라고 우기고 있는 중이었다. 어디서부터 오해가 시작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생선을 발라줌으로 우리가 용서했다고 믿는 건 아니겠지 설마? 애초에 생선 따위는 받아주는 게 아니었다... 뒤늦게 생선의 비린맛이 스멀거리며 올라오는 것 같았다.
어리다는 것은 때론, 진실이 묻히는 현장을 두고 볼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일이었다.
-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