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물을 참 좋아한다. 어릴 땐 마당에서 개를 키웠고, 아파트로 이사 와서는 슈나우저를 무지개다리 건널 때까지 키웠다. 아니, 엄마가 키운 거고 나는 같이 생활했다는 게 더 맞겠다.난 대부분을 그 강아지를 예뻐하는 데에 썼고, 뒤치다꺼리도 대부분 내가 하지 않았으니까! 어쨌든 나는우리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나면 강아지를 다시 키우겠다고 짐짓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는, 내가 사내아이 둘을 키우면서 너무 진을 뺐다는 데 있었다. 이제 겨우 아이들 스스로 대소변 처리도 다 하고먹을 것도 스스로 먹을 수 있도록 키웠는데, 또다시 용변 등 누군가의 뒤치다꺼리를내가해야 하는 - 그것도 최소 15년 - 상황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게 여간 막막한 게 아니었다. 게다가 아이들 장난감뿐만 아니라 흩날리는 개털까지 신경 써야 한다 생각하니, 내가 아무리 개를 좋아한다한들, 오로지 나의 몫이 될 게 뻔한 이 일에 첨벙 뛰어들 용기는 나지 않았다.이럴 때면 항상 우리 집에 나 말고도 엄마가 한 명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아이들은 '언젠가는 강아지를 키우게 될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그래서 공부가 필요했다.어떤 강아지가 우리 아이와 나에게 최적의 파트너가 될 수 있는지!
우리는 애견카페 2곳을 방문하였다. 한 곳은 중소형견, 다른 한 곳은 대형견 카페였다. 대형견을 키울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이러이러한 강아지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중소형견 카페에서 큰 아이는 스피츠, 둘째는 포메라니안이 좋다고 했다. 찾아보니 둘 다 털이 어마어마하게 빠지는 견종이다. 게다가 둘의 조상이 같다고 했다. 어쩜 형제끼리 골라도 조상이 같은 녀석을 고르는 것인지!!
그다음 주, 대형견 카페로 갔더니 말을 잘 듣는 골든 레트리버를 만나자 큰 아이의 생각이 바뀌었다!
엄마, 우리 골든 레트리버 키워요!
역시, 감당하지 못할 일이면 근처에도 가면 안 된다.
너 골든 레트리버가 좋은 게 아니라, 네 말 잘 듣는 개가 좋은 거 아니야?
이 말로 겨우 아이를 설득했다. 애견카페 주인들은 내가 강아지 키우는 걸 망설이는 걸 알자 하나같이 말했다.
강아지 키우는 거 손 많이 가니, 고민되면 지금처럼 이따금씩 여기 와서 강아지 보게만 해도 애들에겐 충분할 거예요
애견 카페를 나오는 아이들 옷에는 강아지 털이 한가득 붙어 있었다. 그 털을 바라보고 있자니 강아지를 키우는 게 어떤 일인지 실감이 났다. 아이들이 나를 보며 물었다.
엄마, 우리 언제쯤 강아지 키워요?
응, 너희들이 너희 장난감이랑 물건들 정리 잘하면 그때!
나의 대답에 아이들은 싱글벙글하며 정리정돈 잘해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큰 아이 9살, 둘째 7살.강아지가 적어도 15년을 같이 산다면 큰 아이가 군대 갔다 왔을 때도 난 여전히 그 강아지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어야 한다.그리고그세월 동안 미운 정, 고운 정, 세상 온갖 정이 들었을 그 아이를 또 무지개다리 너머로보내주어야만 하는 날도 올 것이다.이 생각만 하면 강아지를 안 키우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고민의 그림자만 계속 늘어뜨리고 있다.이 모든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강아지를 키울 날이 언젠간 '닥칠'거라는 걸 애써 외면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