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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아톰 Jan 29. 2021

우린 모두 여행자

당연한 말

   배달 콜이 가장 많이 밀려드는 저녁 피크타임, 대한민국 금융의 심장 여의도로 불려 갔다. 먼저 한 스테이크 집에서 음식을 픽업했는데 ai가 비슷한 위치의 배달지가 있었는지 다른 픽업지를 하나 연달아 주었다. 픽업지는 IFC몰의 한 샐러드 가게, 오늘 운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때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곳이 처음 가는 기사들에겐 개미지옥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픽업지의 주소는 그저 IFC몰이었고 상세주소에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층 내려오면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보통은 몇 층이라고 명시되어 있는데 무언가 느낌이 좋지 않았지만 일단 무작정 오토바이를 끌고 그곳으로 향했다. 근처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충격받은 것은 여타 다른 대형 쇼핑센터들처럼 건물은 한 개지만 입구가 여러 개가 아닌 건물 자체가 여러 개였다.

그래서 우선 주차장으로 진입하려 했다.

    "오토바이는 주차장 진입 안됩니다. 다른 곳에 세워주세요."

이륜차도 엄연히 보험도 들어야 하는 찬데 오토바이는 왜 주차장에 진입이 안되는지 물어봐야 소용없다. 그들도 모르니까.

한적한 곳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일단 눈 앞에 보이는 건물 입구로 들어가 에스컬레이터를 찾는다.

   "여기는 오피스 건물입니다. 다른 입구로 가세요."

 여기는 오피스 건물이구나. 옆 건물로 발걸음을 돌렸다. 들어가지도 못하고 입구에서 쫓겨난다.

    "여기는 호텔 입구입니다. 입장 안되세요."

그런데 내가 체크인하려는 고객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어떻게 확신하고 묻기도 전에 쫓아냈을까? 헬멧도 벗고 있었는데.

보이는 모든 건물이 IFC이다.


    그렇게 네 번의 도전 끝에 쇼핑센터의 한 입구로 들어섰다. 들어서니 두 번째 충격이다. 지상에 있던 모든 건물들 부지의 지하에 하나의 세계를 건설해놨다. 여기서 샐러드 가게를 찾을 생각을 하니 정말 아찔하다.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오면 있다고 했는데 그 많은 입구마다 에스컬레이터는 다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픽업한 스테이크는 식어가고 있었고 핸드폰 속 픽업 시간은 이미 초과되었으며 등에선 식은땀이 나고 있었다. 그래서 다들 여유롭게 걷는 인파들 사이에서 뛰다시피 지하세계를 누비기 시작했다. 픽업지를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 한층을 더 내려가고 더 내려가며 찾아봤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네이버에 매장을 검색해 전화를 하니 COS 맞은편에 있는데 왜 못 찾느냐고 핀잔을 듣는다. 찾아갔더니 테이블 두 개짜리 테이크아웃 전문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작은 매장이었다. 바쁜 걸음으로 지나치다 보니 영어로 그것도 필기체로 적힌 작은 간판을 놓친 것이다. 가게에 들어서니 늦은 것에 마음이 상하셨는지 직원분이 인사조차 받지 않으신다. 삼십 분을 헤매어서 간신히 찾아갔는데 괜스레 억울한 마음이 울컥한다. 근데 그 감정이 단지 늦어져서 쏟아진 건 아닌 것 같다.



   대형 쇼핑센터는 보통 여유를 가지고 여가를 즐기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곳에 때 묻은 방한복을 겹겹이 껴입은 채로 하루 종일 헬멧을 쓰고 땀도 나서 떡진 머리로 들어가 배회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불청객이 된 것 같달까. 깔끔 속에 나만 꼬질이고, 여유 속에 나만 악착이며, 다들 걷는데 나만 뛰고 에스컬레이터의 왼쪽만이 내길이다. 또 이런 곳은 왜 이렇게 환한 건지. 유독 내 그림자만 더 길고 짙고 커 보인다. 그 이후로 난 쇼핑센터에 갈 때도 꽤나 먼길을 걸어야 할 것을 알면서도, 더운 실내에서 땀이 흐를 것을 알면서도 그 무거운 헬멧을 꼭 쓰고 들어간다. 헬멧은 내 머리를 보호하기도 하지만 보다 많은 경우 마음을 지켜준다.



   어찌 됐든 픽업을 해서 기다림에 지쳤을 고객에게로 최대한 빠르게 이동한다. 상세주소는 2603호. 전달사항은 문 앞에 두시고 노크해주세요. 전화 X. 다 식어버린 스테이크를 들고 고층건물 1층에 들어섰다.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잡았는데 10층까지 밖에 없다. 다시 건물 밖으로 가 주소를 확인해보지만 틀리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전화를 걸어 여쭤보는데 전화하지 말랬는데 그것도 몰라서 전화했냐며, 거긴 오피스텔 입구이니 아파트 입구 찾아서 들어오라고 하신다.

   "전화해서 죄송합니다."

죄송한 이유는 안타깝게도 난 여기가 처음인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초보 배달러여서이다. 그 이후의 기분은 적지 않고 싶다. 다만 며칠을 비참했다.



   이후로 내가 몇 번이고 되새기고 다짐하는 말이 있다. 내게 당연한 일이 남에겐 처음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당연한 말을 우린 꽤나 자주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당연한 말을 잊고 살면 나도 모르게 남에게 비수를 꽂는다. 당연한 말은 모두가 다 아는 말이어서가 아니라 당연하게 계속해서 되새겨야만 하는 말이라 당연한 말이다. 내가 매일 다니기에 브런치를 읽으며 몸을 맡기고 내려가도 감이 끝날 때를 알아 다치지 않는 에스컬레이터도 남에겐 처음일 수 있다. 술이 잔뜩 취해 전날을 기억 못 해도 몸이 알아서 무사히 돌아와 주던 내 집 입구가 남에겐 처음일 수 있다. 이 사실만 기억하면 우린 서로에게 조금 더 친절해질 수 있고 보다 상처 주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마치 외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길을 물을 때 우리가 취하는 태도처럼 말이다.

"삶의 어느 부분에서 우린 모두 항상 여행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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