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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아톰 Jan 26. 2021

낙엽 줍는 아주머니

책갈피와 지뢰 사이

   가을에 오토바이 라이더들이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다름 아닌 도로에 쌓인 낙엽이다. 눈길이나 빗길은 누가 봐도 미끄럽기에 몸이 반사적으로 조심하게 되지만 하찮은 낙엽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다니기 마련이다. 그렇게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다니다가 낙엽 쌓인 커브길을 돌며 바퀴가 미끄러져 그대로 옆으로 눕는 경우가 즐비하다. 특히 주로 '가'라 불리는 길로 다니는 오토바이의 특성상 낙엽이 가장 많은 도로 위로 주행을 하기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만 불상사를 피할 수 있다. 하루 종일 오토바이를 타야 하는 배달 기사들 입장에서 낙엽이나 은행은 말 그대로 쓰레기를 넘어 지뢰 비스무레한 것이다.


   하루는 이 지뢰들을 연신 피해내며 마침내 신도림의 대형 쇼핑센터 지하 1층에 자리한 푸드코트의 한 상점에 픽업을 가게 되었다. 대형 쇼핑센터에 위치한 식당의 경우 오토바이에서 내려 생각보다 많이 걸어야 하기 때문에 소요시간이 길어져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분주한 마음으로 "죄송합니다. 지나가겠습니다."를 연신 중얼거리며 뛰다시피 가고 있는데 앞에 가던 한 어머니 뻘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 주머니에서 지뢰 하나가 빼던 손과 맞물려 살포시 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아닌가. 더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그 지뢰를 그 아주머니는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 양 아기 다루듯 아주 소중한 손길로 주워 다시 자신의 주머니에 살포시 넣는 것이다. 시급 2만 원도 감지덕지한 내 현상황에서 눈 앞에 오만 원짜리가 떨어져 있어도 그렇게 소중하게 다루지는 못할 것만 같았다.


   학부시절 내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가을이 되어 바닥에 형형색색 물든 각종 나뭇잎이 떨어지면 밟히기 전에 재빨리 예쁜 것들을 골라 주워 읽던 책들 곳곳에 끼워 놨다. 멋들어진 책갈피를 끼워 놔도 딱딱하기만 했던 전공책조차 낙엽 책갈피를 넣어두면 조금은 흐물흐물 해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 그렇게 잊고 지내다가 들춘 책에서 뜬금없이 낙엽 한 장 흔들리며 떨어지면 내 비루한 일상에도 영화의 한 장면이 포착되곤 하는 것이다.



   그 기억 탓인지 배달을 하는데 하루 종일 그 장면이 슬로우 모션으로 머릿속에서 재생되며 떠나가지 않았다. 악착같이 돈만 좇던 걸음에 마주친 뜻밖의 낭만 때문이었나? 무엇이 누군가에겐 지뢰나 쓰레기를 누군가에겐 보물이 되게 만드는가? 왜 내가 그토록 쫓고 있는 돈은 떨어져도 그렇게 소중한 손길로 주울 수 없는 걸까? 그렇게 생각이 번지니 돈은 그 자체로써는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주어졌다. 어떤 것을 살 수 있기 때문에, 그걸로 인해 내가 윤택함과 편리함을 누릴 수 있기에 가치가 있지만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종이 쪼가리이기 때문에 굳이 그 자체를 소중하게 다룰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한참이나 돈을 좇다 돈을 무시하는 낭만적인 생각이 겹겹이 쌓이다 보니 마음에 분홍 구름이 부푸는  기분이다. 내 삶에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는 대부분의 것들은 나만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애인, 가족, 친구들, 추억이 담긴 물건들, 여행지에서 사 온 쓸모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기념품들까지. 미니멀 라이프 열풍에 한편으론 동조하며 짐을 줄여 보려 했지만 가슴 한켠에 서운한 마음이 켜켜이 자리해 치우지 못한 이유가 여기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찾았다! 자질구레하고 서로 다르다고 외치지만 정작 외치는 꼴이 비슷한 온갖 감성들이 부유하는 시대에 진짜 감성. 진짜 감성은 다른 이들이 보기에 보잘것없는 것으로부터 자신의 취향을 찾는 이들에게 있었다. 돈이 낄 곳 없는 것들이 쌓여 이뤄진 감성이 돈이 되는 시대라니. 정말 아이러니 포스트모던이다.



 이 생각 끝에 삶을 살아가며 꿈꿀만한 한 가지 작은 바람이 생겼다. 점점 더 작고 하찮은 것들이 내 삶에 가치를 지녔으면 하는 마음이다. 비단 꼭 나와 관련이 없더라도, 내게 큰 도움이나 기쁨을 주지 않아도, 남이 볼 때 그다지 선망할만한 것이 아니더라도, 그저 지나치는 인연이라도 집착은 하지 않되 소중한 마음은 품고 살고 싶다. 비싼 것들 말고 공짜인 것들을 보듬고 살고 싶다. 무심히 지나치는 길에 핀 꽃들의 이름도 색색들이 알고 싶고 때에 따라 피고 지는 자연의 모습을 눈에 담기 위해 같은 산을 계절마다 오르고 싶다. 또 아재 감성이라 놀림받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운명인 양 꿋꿋하게 꽃 사진을 찍어대고 싶다. 오늘따라 갑자기 아빠의 카톡 프로필 사진이 낭만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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