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걷다 1 01화

등산이 취미가 되기까지

산은 언제나 거기 있었다

by 메이플

내가 처음으로 올랐던 산은 황령산이다. 캐나다로 오기 전까지 쭉 살았고 지금도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부산 우리 집 남쪽에 황령산이 있다. 지금은 집 앞쪽에 아파트가 들어서서 잘 보이지 않지만, 옛날에는 집에서 산이 바로 보였고, 맑은 날이면 산 꼭대기의 봉수대까지 뚜렷하게 보였다.


일요일 아침에 가끔 아버지에게 끌려 이름도 몰라서 그때는 그냥 앞산이라고 부르던 그산을 올라가야 했다. 산에 가는 것이 싫었지만, 아버지가 가자 하시면 투덜대면서도 따라나서야 했다. 집에서 출발하여 산 밑의 윗동네를 지나 봉수대까지 올라가는데 서너 시간은 족히 걸렸던 것 같다. 봉수대가 올려다보이는 마지막 비탈길이 제일 힘든 구간이었다. 꼭대기에 올라서면 반대편으로 광안리 쪽 바다까지 훤히 내려다 보여서 올라갈 때 힘들었던 것을 잊어버리곤 했다.


십 대가 되면서 더 이상 앞산을 올라가지 않아도 되었지만, 산은 또 다른 형태로 내 삶에 끼어들었다. 고등학교 뒷산이 금정산이었다. 고등학교 삼 년 동안, 봄가을 소풍 장소는 늘 학교 뒷산이어서 일 년에 두 번은 꼭 금정산을 올라가야 했다. 중학교 졸업여행은 속리산으로, 고등학교 졸업여행은 설악산으로 갔다. 울산바위 앞에서 찍은 사진 속의 나는 '산에 올라가기 진짜 싫어!'라는 듯한 뚱한 표정을 하고 있다.


금정산 산기슭에 있는 캠퍼스에서 대학생활을 하면서 산은 조금 더 가까워졌다. 캠퍼스 제일 위쪽 산비탈에 있는 건물에서 수업을 받기 위해 정문에서부터 올라가면 등산이 따로 없었다. 철마다 돌아오는 학과 행사 대부분도 금정산에 있는 산성마을에서 했기 때문에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산을 올라가야 했다. 산성마을까지 올라가는 마을버스가 다녔지만,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를 타고 금강원 입구까지 가야 해서 시간이 있으면 학교 뒤편으로 빠져나가 등산로를 타고 오르곤 했다. 행사를 마치고 친구들과 어울려서 한밤중에 달빛을 의지해 걸어 내려오는 때도 가끔 있었다. 산을 오르내렸지만 그때는 그것이 등산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제대로 등산이라고 부를만한 경험은 부모님과 한라산을 올랐던 일이다. 부모님이 여행을 가실 때 가끔 자식 중 한 명을 데리고 가셨는데, 내가 따라간 곳이 제주도였다. 두 분은 신혼여행지가 제주가 아니었기 때문에 부모님도 제주 여행이 처음이셨다. 팔월의 찌는 듯이 더운 여름이었다. 제주는 부산보다 훨씬 더웠다. 그 더위에 아버지는 제주도까지 왔는데 한라산을 올라가 봐야 한다고 하셨다. 더위를 먹어가며 성판악에서 출발해서 올라갔는데 마지막에는 거의 기어가다시피 해서 백록담까지 올라갔다. 나 때문에 다섯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 이후 등산이라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게 되었다.


산을 한참 멀리하고 살다가 친구들이 지리산을 가자 해서 따라나서게 되었다.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자고 그 다음날 아침 천왕봉에 올랐다. 해 뜨는 걸 보기 위해 새벽 일찍 길을 나섰던 것 같은데, 막상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았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여전히 등산이 썩 좋아지지는 않았다. 친구들과 어딜 놀러나 갈까 할 때, 갈 곳이 마땅치 않아 가끔 산에 갈 때도 있었지만 등산이라기보다는 소풍에 가까웠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등산에 취미는 별로 없었지만 직장 내에서 가장 활발한 동호회여서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직장 산우회에 가입을 했다. 그때부터 등산의 맛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산행을 했는데, 하루 당일 산행으로 갈 때도 있었고, 주말에 일박이일로 꽤 먼 곳까지 가곤 했다.


지리산 천왕봉이나 영남 알프스를 당일에 갔다 오는 것도 힘들었고, 일박으로 설악산이나 월출산을 다녀오는 것은 등산하는 시간보다 운전하는 시간이 더 긴 살인적인 스케줄이었다. 일요일 한밤중에 돌아와 그다음 날 월요일에 출근하자면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그래도 산에 가는 것이 즐거웠다.


캐나다에 이민 온 후 몇 년 동안은 사는 것이 바빠서 산을 가고 싶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지냈다. 두 번 록키를 다녀왔지만, 손님과 함께한 패키지여행이어서 버스를 타고 관광지만 돌다 왔고 트레킹을 하지는 못했다.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알게 된 한국분이 등산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으시고 등산 모임을 소개해주셨다. 그 등산 모임에 나가면서 다시 등산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다녔는데, 여기 등산 모임은 일주일에 한 번 정기적으로 산행을 간다. 매주 나가지는 않지만 한국에서 다닐 때보다는 더 자주 산행을 하고 여름에는 록키로 백패킹을 가기도 한다.

8b220c-58822-c.jpg 캐나다에서 첫 등산, 침픽, 칠리왁

팬데믹으로 산에 가는데 제약도 많고, 작년부터 개인 사정으로 제대로 등산을 못가고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등산이 취미라고 말하고, 산행을 위해 비행기를 타고 떠나기도 하는 찐 등산 덕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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