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파울“어머니는 얼을 심어 주고 아버지는 빛을 준다”

7인의 위인이 알려주는 직업진로를 위한 기초소양

by 장도훈

자녀들은 부모를 떠나 언젠가는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날아올라야 합니다. 인지적, 정서적, 신체적인 영역에서의 기초 소양과 능력을 길러 주는 곳이 가정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관계가 가족인 것입니다.


가정을 이끌어 가는 두 축이 있다면 그것은 부부일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아버지, 어머니로서의 역할은 자녀가 보고 배우는 살아있는 모델링(Modeling)이 되겠지요.

가정은 세상을 알아가고 배울 수 있는 세상의 축소판입니다. 가정은 가족이라는 구성원들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교실이기도 합니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역할들을 어떻게 수행하는지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Thomas Edison)과 비틀스의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의 예로 살펴보기로 하죠. 먼저 에디슨입니다.

토마스 에디슨

“나는 평생 하루라도 일을 한 적이 없다. 그것은 모두 재미있는 놀이였다” 토마스 에디슨의 말입니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학이유 유이학(學而遊 遊而學)’ 즉, 공부가 놀이요 놀이가 공부다. “공부는 즐기듯이 하고 노는 것은 배우는 듯이 해라” 논어(論語)에 나오는 말입니다.


미국의 발명왕 토마스 앨바 에디슨(Thomas Alva Edison, 1847~1931)은 오하이오 주 밀란에서 태어났습니다. 1869년 전기투표 기록기 발명에서 축음기, 백열전등, 전화 송신기, 영화 촬영기, 영사기, 축전지 등에 이르기까지 천여 개 이상을 발명한 발명가이자 사업가였습니다. 에디슨은 초등학생 당시 학교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는 부적응 학생이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퇴학을 당한 이후로는 줄곧 혼자서 공부 했습니다. 정규 학교 교육을 받은 것은 고작 3개월 정도라고 합니다.

에디슨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귀가 잘 안 들리는 난청과 글을 읽고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난독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때 알을 가슴에 품어 병아리로 부화시키려 했다는 일화만 봐도 엉뚱하고 호기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커가면서 친구를 대상으로 인체실험을 했다거나, 기차에서 실험을 하다 불을 냈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짐작컨대 보통 아이들과는 다른 지적 호기심과 탐구심이 왕성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에디슨이 학교를 그만둔 뒤, 에디슨의 어머니 낸시 에디슨(Nancy Edison)은 아들 에디슨과 함께 다양한 분야를 함께 공부하게 됩니다. 책을 함께 읽으면서 같이 생각을 나누고 대화를 이어갑니다. 어린 아들이 끊임없이 호기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지적 자극을 주면서 이끌어 주었죠. 비록 정규 학교공부는 아니지만 토마스 에디슨은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를 마음껏 즐기면서 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 낸시 에디슨은 엉뚱하고 감정 기복이 심한 아들에게 언제나 긍정적인 사고를 갖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또한 사물을 찬찬히 관찰하면서 일어나는 변화를 공부하고 기록하도록 했습니다. 언제나 어머니 낸시 에디슨은 아들 토마스 에디슨이 좋아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자 노력했습니다. 발명왕으로서 성공한 토마스 에디슨은 어머니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내게 인생의 고비가 닥칠 때 마다 어머니처럼 나를 인정하고 믿어 주셨던 사람은 없다. 어머니만큼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이해해주셨다.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라도 계속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어머니가 없었다면 나는 결코 지금과 같은 발명가로서의 삶을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내게 보여준 헌신적인 사랑은 신이 내게 내려준 축복이나 다름없다.”라고 했습니다.


누군가 나를 인정하고 믿어주고 지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가족일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아버지, 어머니의 격려와 믿음은 세상에 둘도 없는 성공의 명약이 될 것입니다.

이번에는 폴 매카트니 얘깁니다.

(좌)폴 매카트니 (우)존 레논

팝 음악의 고전이라고 불리우는 렛 잇 비(Let It Be), 예스터데이(Yesterday), 헤이 주드(Hey Jude)는 영국의 전설적인 록 그룹 비틀스(The Beatles)의 멤버 중 한사람인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1942~)가 만든 노래들입니다.


록 그룹 비틀스는 1962년, 존 레논(John Lennon),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 링고스타(Ringo Star) 등 4명의 멤버로 리버풀에서 결성해 1970년 해체될 때 까지 활동하게 됩니다.

특히 비틀스 멤버 중의 한 사람인 폴 매카트니는 수 많은 명곡을 직접 작곡, 연주, 노래한 뮤지션입니다.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성공한 최고의 천재 중 한 사람으로 손 꼽히기도 합니다.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하사 받은 그는 제임스 폴 매카트니(Sir James Paul McCartney) 경(卿)이라는 호칭으로도 불리웁니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성공한 뮤지션인 폴 매카트니에게는 음악적, 정신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의 아버지 제임스 매카트니(James McCartney)인데요. 아버지 제임스 매카트니는 고향인 영국 리버풀에서 트럼펫과 독학으로 익힌 피아노를 연주하는 ‘짐 맥의 재즈 그룹’ 리더로 활동한 음악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폴 매카트니가 14살 되던 해, 간호사로 일하던 그의 어머니 메리 매카트니가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어린 폴 매카트니는 어머니를 여윈 슬픔을 잊기 위해 기타 연주에 빠져 듭니다. 그러자 아버지 제임스 매카트니는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의 폴 매카트니와 동생 마이크 매카트니 형제를 위해 직접 뒷바라지를 하기로 결심합니다.


아내가 숨진 후 집안일은 아버지 제임스 매카트니가 도맡아서 하게 됩니다. 두 아들을 위해 좋아하는 술도 끊고 요리는 물론 세탁도 하면서 아내의 빈 자리를 채우고자 애 썼습니다. 이렇게 어린 시절 아버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폴 매카트니와 마이크 매카트니 형제는 방황하지 않고 음악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성인이 된 뒤, 두 형제는 “우리 형제는 아버지에게 많은 빚을 졌다”라는 말로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가난한 연주자였지만 음악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보여준 아버지 제임스 매카트니의 음악적인 영향은 어린 폴 매카트니에게 뮤지션으로서의 소양을 길러 준 바탕이 되었습니다. 또한 아버지 제임스 매카트니가 아들 폴 매카트니에게 항상 강조한 말이 ‘관용과 절제의 미덕을 가져라’였습니다. 이후 ‘관용과 절제의 미덕’은 폴 매카트니의 삶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관용과 절제의 정신을 가슴 속에 늘 새기고 살아 가라. 그러면 자신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결코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늘 강조했다고 합니다. 폴 매카트니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아버지 제임스 매카트니의 음악적 열정, 정신적 영향을 통해 ‘관용과 절제’라는 태도를 승화시켜 영감 넘치는 명곡들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keyword
이전 03화잡스 “사랑하는 사람을 찾듯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