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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수 Dec 31. 2023

연말의 부제 : 연락할 '빌미'의 날.

연말은 내내 하고팠던 말을 용기내 하는 날. 그러니, 나를 좀 찾아줄래?



연말.


연말이라 연락했어.

연말이라서 네 생각이 났어.


사실은 말이야.. 전하지 못한 말이 있어, 그때 내 마음은 말이지..







   연말이라하며, 건네는 얘기들엔 어딘가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 같다. 오랜만에 연락한 일에도, 내내 간직해 온 말을 이제서야 하는 비겁함에도 '연말이라..'는 말이 붙으면 한결 너그러워진다. 늦게 전한 사실엔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오늘 같은 날에 나를 찾아주는 네가 너무 반가워서. 연말을 빌미 삼아 연락했을 네가 꽤나 기특해서.


   한 해의 마지막 날. 오늘 정도는 내 마음도 조금은 유해진다. 새 시작을 앞두고 구태여 나쁜 기분도 잘 들지 않는다. 네가 오래 간직한 그 말도 보다 열린 마음으로 들어줄 수 있다. 왜 이제야 하는데? 라는 옹졸한 생각보다, 올해가 다 끝나기 전에 전해주어 고맙다는 생각이 먼저 들 것 같다.



  그러니 연말을 빌미로 연락을 좀 건네주겠니.







    .

    .


   사실 나는 1년 내내 오늘을 기다렸어. 


   어쩌면 네가 연말을 빌미로 연락해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네게서 연락이 없는 건 마음이 아니고 빌미가 없어서라고 여겼거든.

   나의 고백으로 생긴 너의 부재를 그렇게 위로해 왔어. 

   근데 막상 빌미 데이가 왔음에도 네가 묵묵부답이라 나는 꽤 속이 상해.



   오늘은 아직 4시간이나 남았고, 아련하고 불편한 연락은 밤에 하는 게 일반적이잖아. 

   그래서 어쩌면 남은 시간 안에 네 연락이 올지도 모르니까 일단은 기다려 보는데... 

   무음도 풀어놓고 있어 보는데.. 

   

   근데 아마 넌 오지 않을 것 같아.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제법이라, 비껴가는 길이 잘 없더라구. 결국엔 넌 나를 찾지 않을 거 같아.


   그럼, 네가 날 찾지 않는 건 빌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영락없이 마음이 없어서라는 소린데.. 

   써 놓고 보니 정말 속상하다



   역시나 나 혼자만 네게 애틋했던 게 맞았나 봐. 

   우리가 그렇게 되고 나서, 문득 돌아본 시선 끝에 내가 있길 간곡히 바랐었거든. 

   무심코 올려본 하늘 아래 내가 있길 내내 빌었었거든. 


   근데 너는 나를 떠올려주지 않았나 봐. 

   오늘에조차 네게 연락이 없는 걸 보니, 정말 우리한테 다음 같은 건 없나 봐.

   너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나 봐.



   무래도 오늘보다 더 큰 빌미의 날도 없는데, 

   오늘 안 오면 넌 진짜 영영 내게 오지 않을 거 같은데.. 

   불안하고 초조하게 핸드폰만 붙들고 있어.


   그때 그러지 말걸.

   네게 좋아한다고 고백하지 말걸.

   너 없이 살고 싶어서 한 고백이 아녔는데..

   이렇게 기다리게 되려고 한 고백은 더더욱 아녔는데...


   이 글을 쓰는 중에도 혹시나 네게 연락이 오면 어떡하지, 글 내용을 바꿔야하나, 어쩌나 했는데 쓸데없는 고민인가 봐. 글이 다 끝나 가는데도 너는 결국 오지 않네.



   너의 거절과 함께 우리의 말로는 이미 나있었는데, 나는 무슨 바보 같은 기댈 했던 걸까. 

   어쩌면 네가 너의 마음을 깨닫고 다시 내게 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 


   너는 이미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었는데, 진짜 이게 다 무슨 바보 같은 생각이었을까.














겨울.


이번 겨울은 내내 너의 생각을 했다.
우리가 맞춘 눈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나를 정말 단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았을까.

내게 건넨 그 다정스런 말들에 사랑이 정말 하나도 묻어있지 않았던 걸까.


너의 맘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봤다.

나의 부재의 이유는 마음 없음이 아닌데,

너의 부재의 이유는 뭘까.


추측도 해봤다.

너는 왜 나를 찾지 않을까.

아, 빌미가 없어서구나.

그럼 연말 정도면, 한해의 마지막 날 정도면,

좋은 빌미가 되지 않을까.


내게 남은 너의 흔적을 샅샅이 뒤져봤다.
에라이, 착실하게도 지웠구나.


그러나 어째서 아무것도 지워지지 않은 걸까.

아마 그 말을 하고 오지 못해서 이러는 것도 같다.


내가 널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네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그래서 이 고백이 얼마나 무서운 지도.

아니다,

 말을 하고 왔어도 나는 내내 네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생각. 생각이라.
생각, 그래 생각.


어딘가에 갇혀 내리 네 생각만 하는 형을 사는 기분이다.
계획 없이 문득 찾아온 너를 의연하게 환대할 자신도 없으면서, 나는 네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도 올해는 이럴래.

연말까지는 그냥 이렇게 한 번 지내볼래.
사실 이렇게 지내지 않는 방법을 나는 모르겠어.

기억하지 않는 방법을 모르겠어.



기다리지 않는 방법도, ... 도무지 모르겠어.















   올해 초, 제가 별안간 했던 짝사랑에게 쓴 글입니다.


   서로 좋아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다정했고, 따듯했거든요. 


   그래서 좋은 사람을 잃게 될 줄도 모르고 용기 내서 고백을 했는데 차였습니다. 그에게서 다시는 연락이 오지 않더라고요. 혹시나 뒤늦게라도 자기의 맘을 깨닫고 연말 정도엔 연락을 해오지 않을까 했는데, 아니네요.


   정말 그는 저에게 아무 마음이 없었나 봐요.


   다음 글엔 제가 한 그 짝사랑에 대해서 떠들어 보겠습니다.
   저는 같이 좋아했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쌍방향이 아니었는지 일방향이었는지 함께 판단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끝으로,

   혹시나 보낼까 싶은 연락이 있다면 보내보는 건 어떨까 싶어요.

   그 분도 저처럼 이렇게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아마 반갑게 맞아줄겁니다.


   오늘은, 그게 다 되는 연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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