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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수 Dec 28. 2023

오빠가 죽었던 해, 나는 열셋이었다.

스물여섯에 멈춘 오빠의 시간이 퍽 새삼스러운 밤.


   오빠가 죽었던 해, 나는 열셋이었다.

  

   오빠는 띠동갑보다도 더 어른이었는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나는 이제 그때의 오빠보다 나이가 많다.    


   여전히 내 비밀번호는 모두 오빠의 이름이지만,

   아직도 한 켠엔 오빠가 두고 간 남색 스웨터가 걸려있지만,

   오빠로 인해 울지도 마음 아파하지도 않고 산다.


   정말이지 이젠,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가끔 오빠가 나오는 꿈을 꾼다.     



 



   우리 오빠는 교통사고로 죽었다. 더없이 억울한 죽음이었다. 술에 취한 택시 하나가 오빠의 차를 절벽 아래로 떨어뜨려버렸다.


   어제는 그 억울한 죽음을 막아보려는 꿈을 꿨다. 나는 수도 없이 과거로 돌아갔고, 오빠를 살리고자 그 새벽에 그렇게나 달렸다.


   오빠,

   오늘은 늦잠을 자고,

   오늘은 좀 돌아서 오고,

   오늘만은 그 도로를 달리지 말고..


    맺힌 목소리가 수도 없이 외쳐졌지만, 끝내 나는 오빠를 붙잡지 못했다. 그 고군분투가 애석하게도 결국 오빠를 살려내지 못했다. 연속해서 오빠의 죽음만 만나게 될 뿐이었다.


   꿈속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꿈에서 깨고도 어찌나 속상하던지.


  '아, 조금만 더 달려 볼걸. 그때 거기서 그러지 말걸. 내가 과거로 갔음을 더 빨리 알아채 볼걸. 꿈에서 살려낸들, 현실에서 살아나는 것도 아니다만, 한 번만 더 오빠를 불러 볼걸..'


  오빠가 없는 게 당연한 아침 속에서 꿈속의 내 무능을  계속해서 자책했다.     



   나는 클 만큼 커서, 이제 꽤 많은 죽음을 봐서, 그 어떤 죽음도 돌려 낼 수 없다는 걸 안다. 마법이니 기적이니 하는 건 헛된 것임을 너무나 안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이 든다.


   어쩌면 그 꿈이 기회는 아니었을까.

   신께서 주는 장난 같은 선물은 아니었을까.

   만약 내가 꿈에서 오빠를 살려냈다면 현실에서도 당신이 웃으며 살아나 있지는 않았을까.

   스물여섯에 멈춘 당신이 어느새 서른아홉이 되어 내 앞에 서 있지는 않았을까.

   내가 그 기회를 허망히 날려버린 건 아니었을까ᆢ.  


   그렇다면, 다음번 꿈엔 꼭 당신을 살려내 보이리라.

   그래서 책이나 영화에만 있는 기적을 기어코 실현해 보이리라.

   당신을 오늘로 꼭 돌려내고 말 것이니라..


   그렇게 부질없는 자책과 다짐을 한가득 쏟아냈지만 결국 내게 남는 건 허무뿐이었다. '꿈속에서 살려냈다 해도 현실에서 오빠는 다시 살아나지 않았을 거야.' 그래. 그게 맞지. 맞는데...



  그런 꿈을 꾸고 나면 나는 온종일 오빠 생각을 한다.

  스물여섯에 멈춘 오빠의 시간이 퍽 새삼스럽다. 아, 오빠가 진짜 빨리 죽었구나 싶어서 먹먹해지고 만약 오빠가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이런 것들을 하고 있겠지ᆢ 하는 상상도 한다.     


   남은 사람은, 할 수 있는 게 이런 자책밖에 없다. 그리워하는 것 말고는, 속상해 우는 것 말고는, 도무지 허락되는 일이 없다. 죽음 앞에 손 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사람이 진짜 죽는 건 심장이 멎었을 때가 아니라 기억에서 잊혔을 때라는 말에, 내내 기억하고 살고 싶었다. 오빠를 잊고 싶지 않았다. 오빠의 죽음을 감흥 없이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내내 똑같이 슬퍼하고 싶었는데, 우리 오빠가 내 마음을 알았나 보다.


   이렇게 오빠가 옅어질 때마다 가끔 나와주면 좋겠다. 마음 아픈 아침이어도 되니까, 계속 그리워하고 싶다. 서글프고 속상한 꿈이었지만 그래도 다시 만나서 너무 좋았으니까. 자책 가득한 아침이었지만 그래도 오빠로 인해 울 수 있어서 다행이었으니까.


   나한테 진짜 오빠가 있었구나, 싶어 지거든..

   오늘이 새삼 낯설어지거든..






   오빠.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그래도 사후세계가 있었으면 좋겠어.

   거기서 다시 오빠를 만나면 좋겠어.

   우리 가족은 오빠를 오래 그리워했고 내내 마음 아파했다고.

   꼭 얼굴 보고 얘기해주고 싶어.



   새삼스레, 참 보고 싶다 우리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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