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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수 Jan 11. 2024

10년 지기 남사친을 짝사랑한 일에 대해. (3)

너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나에 대해,

다정하기가 이를 데 없던 너에 대해,

이다지도 사랑이었던 내 마음에 대해,

그 사랑이 얼마나 당위스러웠는지에 대해서도.








   비밀.

   나에게만 허락되어지는 너의 어떤 것.

   나만 아는 나, 한 조각 떼어주고픈 너의 마음.


   네가 내게 무엇을 말해주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게 설령 내가 기대하는 말이 아니더라도, 이깟게 비밀인가 싶게 사소한 것일지라도. 비밀, 그 단어가 주는 느낌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벅참이 느껴졌다.


우리 집 말이야.


   오래 뜸 들이던 너의 첫마디가 떨어진 시선과 함께 미세히 떨리고 있었다.


- 사실은 네가 아는 것처럼 그렇게 화목하지 않아. 아버지는 곧잘 화를 내셔. 물건을 던지고 부수고 소리 지르시고 그래.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본인 뜻대로 하고 싶어 하시거든.

- 너희 아버지가?

- 응. 그리고 아버지가 그럴 때면 어머니는 방에서 웅크리고 소리도 없이 우셔. 딱 가정폭력… 이지.


   가정폭력. 그건 우리 12년 우정 중 오로지 내게만 있던 서사였다. 지긋지긋한 우리집. 구질구질한 집구석. 그런데, 너랑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단어가 네 입에서 나왔다.


- 내가 어렸을 땐 어머니를 때리기도 하셨어. 나도 꽤 맞고 자랐고. 지금은 나랑 준영이가 아버지보다 크기도 하고, 나이도 드셔서 그렇게는 못하시지만.

- ….

- 네가 나를 오해하는 거 같아서. 우리 집, 네가 부러워할 만큼은 전혀 아니야.

- ….

- 보기엔 그럴 수 있어. 돈도 많고, 두 분 다 직업도 좋으시고, 나랑 준영이도 부모님한테 잘하니까. 근데 그게 다는 아니거든.

- ….

- 알아. 네가 견뎌온 환경에 비하면, 내가 하는 건 그저 응석 정도지.


   '응석 정도'라는 말이 직선으로 날아와 가슴에 쿡 박혔다. 맞고 자란 너의 서사가 어떻게 응석 정도야, 바로 반박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너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3개월 시한부 앞에 서면 모든 병이 하찮아지듯 내 앞에선 너도 그랬을 것이다. 내게 그런 말을 바라고 있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그게 어떻게 응석 정도야.


- 그리고 지난 여름에도, 내가 왜 그 이름 없는 바다에 갔었냐면 …


   찬영이네는 언제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찬영이네 부모님은 찬영이가 다니던 대학의 부부교수셨는데, 찬영이의 차분함과 여유로움이 어디에서 왔는지 한눈에 알 수 있는 분들이셨다. 학교 때는 학예회, 운동회 등 각종 행사날마다 성대한 도시락과 가장 좋은 차로 모두의 이목을 끄셨다. 나는 그때마다 어째서인지 항상 도서관 구석에 숨어 있던 찬영이를 찾아 끌어내곤 했다. 그땐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보러 오지 않는 나도 있는데, 너는 감사함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이제야 생각건대, 네가 숨어있고 싶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한 번쯤은 그 이유를 물었어야 했다. 끌고 나오는 길에도 얼마나 잔소리를 해댔는지 모를 일이었다.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간 보이는 대로만 판단했다. 능력 있고 가정적인 부모님을 가진 너를 내내 부러워했고, 아주 화목한 집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니. 너도 나와 같은 가정폭력의 그늘 아래서 자랐었다니..


   네가 지난 여름 다녀왔다는 그 이름 없는 바다. 실은 그 바다도 여행까지 가서 또 윽박을 질러대는 아버지를 피해 걷다 도착한 곳이라고 했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많이 걷지는 못하고 돌아왔지만 그 바다 앞에 앉은 잠깐의 10분이 참 좋았다고 했다. 보랏빛 찰랑임이 위로를 전해주는 것 같았고, 선선한 바람에 눈물도 흐르지 않았다고.


   그리고 요즘도 가끔씩 그 바다 앞에 서 있는다고도. 아버지가 다시금 화를 내실 때, 어머니가 또다시 우실 때, 그때라고..


   이번엔 그 바다를 떠올리며, 함께 걷는 그 언젠가의 우리보다 그 바다에서 혼자 쓸쓸했을 너의 손을 잡아주고 싶단 생각을 했다. 괜찮다고, 울어도 되니까, 씩씩하지 않아도 되니까, .. 허락만 해준다면, 다정하게 안아도 주고 싶었다. 그때 알았다. 나의 마음은 좋아함이 아니었다. 사랑이었다.


   상상 속에서만 잡던 너의 손을 잡았다. 너는 잠깐 놀랐지만, 나의 뜻을 알았는지 이내 너도 손을 맞잡아 주었다.


   미안하다는 말도, 괜찮냐는 말도,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음을 안다. 찬영이가 그간 자신의 얘기를 차마 꺼내지 못할 만큼의 비극적 서사가 내게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다만, 손을 잡고 눈을 맞춰주었다. 그 언젠가 찬영이가 내게 했던 위로 방식이기도 했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그간 홀로 끙끙 앓게 한 건, 네 입을 막은 건, 모두 다 나였음이 너무도 자명했기 때문이다. 네가 이걸 고백하는 순간에 마저도 자신은 고작 응석정도라고 말하게 할 만큼 나의 사연도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줄 알았는데, 어른이었네?

- 내가 좀 상남자긴 해.

- 어른이라고 했지, 남자라곤 안 했는데?

- 나 되게 남잔데?

- 네가 어디가 남잔데.

- 보여줘?

- 보여 주겠다고? 그래, 한 번 봐보자.

- 크흠. 잘 봐. ..흣!


   참 너다운 화제전환이었다. 짧은 호흡과 함께 물구나무를 섰다. 아니, 시도를 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잠깐 서려다 고대로 고꾸라졌으니.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큭큭 웃어대는 네가 얼마나 한심하고 예뻤는지 모르겠다. 나도 따라서 한참을 웃었다.


- 이게 남자?

- 아니면 뭔데?


   나도 그랬다. 나의 얘기로 인해 괜한 분위기 처짐이 생기는 게 싫었다. 한창 무르익던 분위기가 나의 가정사로 인해 가라앉을 때마다, 괜히 꺼냈구나 싶어졌다. 분명 아픔을 실토하는 자리더라도 가정사는 그런 취급을 받았다. 가장 처연하고, 가장 불쌍한 서사.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마음을 닫게 되니까 나는 네가 이끄는 대로 함께 장난스러워 주기로 했다. 다음에 언제든 다시 얘기할 수 있게 그리 무겁게 대하지 않기로 했다. 이것도 그 언젠가 네가 내게 했던 위로의 방식이었다.


   너의 움직임에 빈 병이 모텔 바닥을 뒹굴었다. 아까 이자카야에서부터 여기까지 내리 마셔댔으니 못해도 다섯 병쯤은 먹었을 거라 꽤 취하긴 했을 것이다. 너를 일으켜 세워 의자에 앉혔다. 물구나무에 마지막 정신을 다 쏟은 모양인지 이제는 확실히 취한 것처럼 보였다.


- 내 비밀 들으니까 어때?

- 어떻긴, 그냥 미안하지.

- 나도 그랬는데. 너 얘기 들을때.

- 근데 미안하다고 안 하려고.

- 맞아. 그 말을 들으려고 한 건 아니니까.


   너는 그제야 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망설였을까. 앞으로는 섣부르게 너를 부러워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너의 마음 상태에 대해서도 간간이 물어주어야지 결심도 했다. 네가 내게 해주는 것들을 나도 돌려주어야지, 이제는 내가 너에게 어깨를 내주어야지.



   그렇게 몇 잔을 더 주고 받자세상이 2차원에서 4차원을 넘나들며 아주 어지럽게 보였다. 더 이상의 술은 들어올 자리가 없다는 몸의 신호였다. 거기에 일주일 간의 피로가 몰려와 눈꺼풀이 무겁게 느껴졌다. 몸이 저절로 침대로 향했다. 네가 보이는 쪽으로 누워 이불을 끌어안았다. 그래도 너는 나보다는 덜 피곤했는지 아직도 의자에 앉아 남은 술을 따르고 있었다.


- 안 자냐.

- 술이 남았는데?

- 너 지금 술 달지.

- 응.

아이고. 취했네. 그만 자자.

- 그럴까?


   의문형 동의그럴까?로 답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는 의자에서 일어날 생각을 않았다. 술이 뭐 얼마나 남았나, 하고 보니 빈 병뿐이었다. 근데 왜 안 자?


- 흠

- 뭐 하는데. 안 잘 거야?


   새벽 다섯 시가 넘은 시각. 이미 기상한 지 23시간쯤 지난 후였다. 누워 있으니 취기가 더 올라와 진짜 더 이상은 졸음을 참지 못할 것 같았다. 현관 쪽 작은 조명을 제외하고 모두 소등되자 버티던 눈이 꾸벅 감겼다.


   잠깐 졸다 손으로 더듬더듬 침대 옆을 짚어보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뭐야? 어디갔어? 무거운 몸을 가까스로 세워 보니, 글쎄 네가 현관 앞에 웅크리고 누워있는 게 아닌가. 하필이면 유일하게 켜둔 그 조명 아래였다. 아주 잠깐, 정신 나간 거리의 행위 예술가(노숙자)처럼 보기기도 했다.


- 너 뭐 해?

- 자.

- 그러고?

.

- 원래 그러고 자?

- 원래는  누워서 자지.

- 근데?

- 근데

얼른 안 올라와?


   밍기적. 어물쩍. 꽤나 멋쩍은 움직임으로 아주 느리게 침대위로 기어 올라왔다. 같이 자잘땐 언제고, 뭘 민망해하는지. 너는 곧 떨어질 듯 침대 끝자락에 겨우 걸쳐 누워 내외를 했다. 아무래도 함께 자는 게 영 불편한 모양이었다. 나는 너의 그런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너의 팔을 내 쪽으로 잡아당겼다.


- 너 그러다 떨어져.


   눈을 감은 채였기 때문에 너의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아마 꽤 불편한 얼굴이었을 것이다. 아니 진짜 이럴 거면 왜 같이 자자고 한 거야.


- 이렇게 내외할 거면 왜 같이 자자고 했는데.

- 아니.. 나는 너 불편할까봐.

- 이러는 게 더 불편해.


   나의 마지막 말은 퍽 신경질스러웠다. 솔직히 말하면 나를 아예 건드릴 생각도 없는 네가 조금은 얄밉기도 했다. 거기에 내가 자기한테 뭐라도 할 것 마냥 거리를 두는 것도 꼴보기 싫었다. 술이 올라 조금 더 감정이 격해졌던 것 같다. 물론 성인 남녀가 한 침대에 누웠는데 불편하지 않으면, 그것도 이상하긴  일이긴하지만..



   분명 아주 잠깐 눈을 감았을 뿐인데 띠리링- 모텔 전화기가 울렸다. 비몽사몽 일어나 받으니 퇴실 30분 전을 알려주셨다. 3만 원에 6시간 대실 연장을 하고 다시 누웠다. 두 시간만 더 자야지, 했는데 고대로 깨버렸다. 술 먹은 다음 날은 어쩐지 잠이 빨리 깬다. 그리고 직장인의 관성 같은 것도 있다. 주말엔 아무리 늦잠을 자도 10시를 넘기지 못한다.


- 전화 뭐야?

깼어?

아니그런 건 아닌데 

- 더 자. 시간 연장했어.

- 그런 것도 돼?

-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으로 안 되는 게 거의 없어.

- 오. 마르크스 울겠다. 대실 실패.

- 뭐래는 거야ㅋㅋㅋㅋㅋ 헛소리 말고 더 자.


   너는 별다른 대꾸가 더 없는 걸 보니, 다시 잠든 모양이었다. 나는 너의 잠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조용히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과음으로 인해 퉁퉁 부은 얼굴. 속 안에서부터 올라오는 취.. 우웩. 분노의 양치질 후 욕조에 물을 받아 반신욕을 했다. 가볍게 씻고 나니 붓기가 한 결 가라 앉았다.


   씻고 나왔는데도 너는 여직 한 밤중이었다. 어차피 퇴실 연장을 해두었기에 급할 건 없으니 나도 다시금 너의 옆에 누웠다. 나가서 해장이라도 하자고 할랬더니, 언제 일어날런지. 그나저나 모텔방은 굳이 불을 켜지 않으면 언제고 똑같은 시간이다. 분명 12시쯤이 넘었을 텐데, 완전 깜깜한 밤 같았다.


   아주 고요한 적막 가운데 너의 숨소리만 정기적으로 들려왔다. 사람 숨소리가 이렇게 청아했었나. 나는 소리에 이끌려 옆으로 돌아누웠다. 정자세로 누운 너의 옆태가 보였다. 뽀얗고, 말갛고, 그러나 어딘가 날카롭고. 훔쳐보던 너의 옆태를 맘놓고 보다보니 어느새 나는 사춘기 남자애처럼 몸닳기 시작했다. 그건 아마 내 시선이 너의 입술 쯤에 멈췄기 때문일 것이다. 그 순간, 온 세상과 신경과 걱정과 그러니까 모든 이성과 작별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스스로가 퍽 자괴스러워 벌떡 일어나 앉았다. 훔쳐보고 달아오르는 꼴이라니. 괜히 가만 자고 있는 너를 흔들어 깨워 화풀이를 했다.


- 일어나!

- … 응?

- 일어나라고!

- 몇 신데?

- 배고파. 일어나.

- … 응. 나 근데 10분만.


   커튼을 열고 조명을 켰다. 너의 눈이 찡그려졌다. 이씨! 10분만이라고 했잖아! 하며 벌떡 일어나 나를 노려보았다. 노려보는 눈이 저렇게 힘이 없을 수가 있나? 찡그린 너의 얼굴도 아주 퉁퉁 잘 부어있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내 눈엔 귀여워 보였다. 귀여우면 게임 끝이라는데, 아이고 참.


- 나가자. 해장하자.

- 기다려. 씻고.


   씻는 너를 기다리는 동안 어제 어지른 모텔 방을 간단히 정리했다. 물론 청소는 하지 않아도 되지만,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는 문구가 좋아서 적당하게는 치워 두는 편이다. 덜 마른 머리를 툭툭 털고 겉옷을 챙겨 입는 너에게 모텔 로션을 챙겨주었다. 얘는 이런 걸 잘 바르지도 않는데 어째서 피부가 나보다 좋은 걸까?


- … 뭐 봐?

- 네 피부. 와.. 너 피부가 왜 이렇게 좋아?

- 전생에 덕을 많이 쌓아서 그래.

- 그럼 나도 다음 생엔 꿀피부?

- 친구야, 네 덕분에 피부과 망하는 일은 없겠어. 아주 태어날 때 마다 vip,


   퍽, 네 등짝에 스매싱을 한 대 갈겼다.


- 이거 봐. 지금도 이러면서. 꿀피부 되긴 글렀어.

- 밥 네가 사.

- 그래~

- 커피도 네가 사!

- 그러지 뭐~

- 이씨!

- 열내면 피부 늙는다. 신발이나 신어.


   두고 온 게 없나 마지막으로 방을 한 번 살폈다. 다 뜯어진 어매니티 속, 유일하게 온전한 제품 하나. 콘돔이 화장대 위에 놓여있었다. 어차피 싸구려라 챙길 이유도 없지만 문득 신발을 신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 모텔에 와서 아~무 일도 없이 나가는 구나. 밤에도 낮에도 묘한 기류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조금이라도 야할 틈없이, 진짜 정~말 술만 마시고 잠만 자고 나오는 구나..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그렇게 못나 보일 수 없었다. 새삼, 내가 매력이 그렇게 없나? 싶어졌다. 아무래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카운터에 키를 반납하고 밖으로 나오는 내내 기분이 묘하게 나빴다.


   보통 술 먹고 한 방에 들어가면 뭔 일 나지 않나? 그래, 물론 네가 그런 애는 아니지. 나도 그런 여자는 아니고. 그래도 그렇지.. 아니다, 무슨 일이 있었으면 그것도 그거대로 심란했을 것이다. 그래도 기분이 나쁜 건 나아지지 않았다.


   모텔 앞 거리에는 얕게 눈이 쌓여있었다. 밤사이 내리던 비가 눈이 된 모양이다. 너는 자동차 위에 쌓인 눈을 작게 뭉쳐 내게 던졌다. 솔직히 별로 상대해주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어젯밤 우리 사이에 아무 일도 없어야 하는 게 맞긴 맞는데, 그렇다고 해도 그게 '죽을 힘을 다해 참아서' 생긴 결과도 아니고, 너무 자연스럽고 너무 당연하게 아무 일도 없으니 여자로서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났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너로인해 달아올랐기 때문이다.


   눈을 뭉치는 너를 뒤로하고 가만 뚱하게 서있었다. 그러자 이번엔 조금 더 큰 눈 덩이가 내게 던져졌다. 이씨! 하고 돌아보니, 하얀 눈 가운데, 그 보다 더 하얀 네가, 아주 하얗게 웃고 있었다. 그 웃음과 함께 모든 게 사르르 녹아내렸다. 불과 방금전까지만 해도 여자로서의 자존감이 지하 500m까지 떨어질 정도로 저기압이었는데, 너의 그 웃음 하나에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졌다.


   이따금 내리는 눈.

   하얗게 웃는 너.

   그리고 찬 바람이 솨아- 불자, 나는 그만 결심해 버리고 말았다.


   오늘은 너에게 말을 해야겠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내가 너를 아주 많이 좋아한다고 말이다. 오늘 우리가 헤어지기 전에 해야할 일은 딱 하나다. 바로, 나의 고백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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