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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수 Dec 14. 2023

작가가 되고 싶다. 젠장, 근데 나 재능 있는 거 맞나

대체 어쩌다 글 같이 이리 돈 안 되는 것을 사랑하게 된 건지.

이럴 것 같았다.

역시 글을 업으로 삼으려 하니 그리 좋아하던 글조차도 무게를 지니게 된다.









  생각해 보면 재능이 맞았다. 단 한 번도 글을 쓰며 머리를 골몰해 본 적 없다. 아무리 긴 글을 썼다 해도 첫 형태소부터 마지막 온점까지 탄탄한 짜임이 있었다. 그러려고 노력한 적 진짜 한 번도 없다.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들을 적었을 뿐이고, 그냥 손이 가는 대로 끄적였을 뿐이다. 그래서 내게 글은 참 쉬운 취미였다. 구태여 배우지 않아도 되는 돈 안 드는 고급 취미.



  어디 가서 자랑하기도 참 좋았다. 편지를 쓸 때도 이 재주는 득이 됐다. 학교에 다닐 때 특히 그랬다. 과제를 할 때도, 논문을 쓸 때도 나의 글재주는 참 시의적절했다. 아직도 생각난다. 타 학과 전공 수업을 그냥 취미 삼아 들었는데 아니 글쎄 무려 10장짜리 에세이를 쓰는 게 기말과제인 것이다. MBTI P답게 미루고 미루다 3시간 만에 막 써서 냈다. 가성비가 진짜 최고였던 게, 고작 3시간 투자했을 뿐인데 A+을 받았다. 심지어 내 과제가 공지사항에 기재되기까지 했다. 아주 잘 쓴 글이라며 말이다.



  그래. 그런 식의 칭찬. 너 글 좀 쓴다 하는 칭찬. 솔직히 익숙했다. 살면서 숱하게 들어왔다. 글 좀 쓴다는 거 이미 알고 있었다. 에이- 솔직히 모르기 어렵지. 고딩 때 글 쓰기 대회만 나갔다 하면 우승에, 칭찬을 얼마나 들으며 살았다고. 김태희가 자기 예쁜 거 모르겠나. 나도 어디 가서 너 특기가 뭐냐- 하면 글이라고 했다. 누구에게나, 심지어 나를 싫어하는 인간들에게조차 반박 없이 인정받을 특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걸 업으로는 삼지 않았던 것 같다. 앞에서 나 글 엄청 잘씁니다, 라고 허세를 잔뜩 부려놨다만.. 사실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인 사이//에서의 얘기다. 솔직히 말하면 막상 그 세계에서 그러니까 글을 쓰는 이들이 모인 자리에서까지 인정받을 자신이 없었다. 이 재주가 사실은 그리 크지 않을까 봐 무서웠다. 그래서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사랑하는 글이 없는 곳으로만 향했고 그곳에 나를 가둬 놓았다. 그러면 적어도 다치는 일은 없겠지 싶었다. 계속 칭찬만 들으며 살 수 있겠지 싶었다.



  근데 이젠 안 되겠던 거다. 이게 생각보다 너무 좋았던 거다. 내가 이 세계에서 사실은 무능하고, 알고 보니 글 깜냥도 안 되는 게 패악질만 부렸던 거래도.. 그래도 쓰고 살고 싶다. 좋아하니까, 내가 글을 너무 좋아하니까.












  첫 형태소부터 마지막 온점을 찍을 때까지, 단 한 번도 그 위로 다시 올려보지 않는 것이 나의 글 쓰는 재미다. 사실 문단 하나가 추가될 때마다 흐름을 체크하기 위해 첫 문장부터 다시금 읽어가며 쓰는 게 옳다만. 근데 ㅋ 그건 멋이 없지 않은가. 막 ~~ 휘갈겨 써도 수려한 글이 더 간지 나지 않느냐고.ㅋ 그런데.... 이젠 한 문장을 더할 때마다 처음부터 몇 번을 다시 읽는지 모르겠다. 원래는 나만 이해하게끔 쓰면 됐었는데 이젠 읽는 이가 잘 이해하려나, 하는 마음으로 쓰게 된다. 재미는 좀 덜어지고 무게가 좀 더해졌달까.




  이걸 브런치에 써도 되나 싶긴 한데, 솔직히 브런치 통과? 그닥 별로 기쁘지 않았다. 싫었다는 건 아니고, 그냥 기쁘지 않았다고. 글로 먹고살겠다는 사람이 이런 플랫폼 하나 못 뚫으면 그게 창피한 일이지. 여기저기 와~신난다~ 하며 떠들고 다니긴 했다만. 그건 기뻐서 그런 게 아니다. 뭐라도 하고 있음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혹시나 나를 걱정하는 이들을 위해서 말이다. 생각해 보면 기성 작가들도 여럿 떨어진다는 눈 높은 브런치를 한 번에 통과한 일은 기뻐해야 는 일이 맞다. 맞는데, 이걸 업으로 하고자 하니 이 정도 성과는 별 감흥이 없다. 자꾸 재미는 덜어지고 무게만 더해진다.




그럼에도 나는 글이 왜 좋은가.

나는 글을 왜 사랑하는가.

왜 글을 쓰면서 살고 싶은가.

어째서 글이 아니면 이렇게 심장이 뛰지 않는 걸까.



  차분한 음악과 일필휘지로 갈길 종이와 펜이 있는 밤. 대체 어쩌다 이런 돈 안 되는 것들을 사랑하게 된 건지. 여전히 나는 나에게 객관적이고 구태여 관대하지 않다. 따라서 일반인 중에 글 좀 쓴다고는 쉽게 말하곤 하는데, 이게 업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아! 젠장. 업으로 삼으려 하니 영 자신이 없다. 주변에서 아냐, 너 진짜 글 잘 써. 진짜야! 하는 말을 들어도 그런 말들은 내게 어용하다. 그래, 당신들 보다야 잘 쓰겠지, 아니 잘 써야지. 나는 이걸 업으로 삼을 사람인데 주변 사람들한테 조차 인정받지 못하면 때려치우는 게 맞지. 그래서 그런 칭찬들 참 고맙다만 별 감흥 없다.



나는 타인의 인정보다, 스스로의 인정이 훨씬 중요하다.



  존경하는 노희경 작가가 내 글을 보고 너 글에 참 재능이 있구나? 해도 그냥 그럴 것 같다. 내가 인정하기 전까진 그 누구의 인정도 내 안에 들어올 수 없다. 그러려고 그러는 거 아니다. 남의 눈에 휘둘리지 않음을 설파하기 위해 굳이 허세 부리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난 그런 사람이다. 글이 좋은 것처럼, 이것도 그냥이다.



글에 서사가 부족해도

맞춤법이 가끔 어긋나도

쓰는 문장이 수려하지 않아도

문단 사이의 개연성이 떨어지더라도

괜찮았는데.



  이젠 이걸 업으로 하겠다, 하고 나니. 이렇게 일기장 같이 휘갈기는 글에도 저런 걸 신경 쓰게 된다. 혹시나 무심코 누군가 여길 들려, 이 글을 보곤. '아 뭐야, 작가 되겠다는 애가 이 정도 글 밖에 못써?' 이런 소릴 할까 봐 괜히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러니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지 말라는 말을 하나 보다. 그래도 아직 나는 하나도 유명하지 않으니. 그 누구도 내 글에 지난한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오늘 정도는 이렇게 생각나는 대로 쉽게 쉽게 써 내려야지.




  그러니 혹여나라도 저런 생각이 들면 조용히 뒤로 가기를 눌러주셔라. 자존감이 진짜 되게 낮은 상태니 제발 건들지 마셔라. 갑자기 유언장에 당신 이름 적고 켁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맞다, 협박이다.















  요 며칠간 고작 a4 두 장짜리 글을 보고 또 보고.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조사 하나까지 신경 쓰고 그러느라 글에 좀 지쳐있었다. 자연스럽게 휘리릭 갈기던 이런 자유의 저작 시간이 어찌나 그리웠는지. 문장에 미사여구가 많아도 상관없고. 의식의 흐름이 이리저리 튀어 글에 그게 투영되어도 다 괜찮고. 어쨌든 편하고 안락하고 막 적는 이 시간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르겠다.



음, 아마 난 자유롭고 싶어서 글이 좋았나 보다.

글 속에서 만큼은 내가 원하는 대로 자모음을 배치할 수 있으니.

하고픈 말을 마음대로 다 뱉어도 되고

마음 안에 있는 상상들도 다 구현해 낼 수 있으니.

나는 아마 그게 좋았나 보다.

그래서 이걸 업으로 삼으려 하니 퍽 서글픈 것도 같다. 이젠 글을 쓰고 싶은 게 아니고, 잘 쓰고 싶으니까.



근데 웃기지.

사랑 없이 사는 삶과

글 없이 사는 삶 중에

굳이 하나를 고르라 한다면

나는 주저 않고 글 없이 사는 삶을 고를 것 같다.

참나, 글이 좋다고 위에 저렇게 막 떠들어 놓고 결론은 사랑이냐? 그래, 사랑이다. 사랑이 최고다.

다른 건 그게 안 돼서 하는 거다. (맞다. 이 대사 그 논란의 감독의 명대사다. 그렇다고 내가 불륜을 옹호하는 사람은 절대 아니다. 참고로 이혼가정에서 자랐고 부모의 불륜으로 상처 가득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러니 저 대사 하나 인용했다고 불륜 옹호자로 보지 말아 주셔라. 아니다, 아무도 관심 없을 것 같다. 이 글이 여기까지 누구에게라도 읽히려나? 혹시나 이 즈음까지 봤다면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이고 복 받으세요.)




밤은 깊고

사색은 더 깊다.

사랑도 하고 싶고, 글도 계속 쓰고 싶다.

그래도 뭔가 하고 싶은 게 있는 삶은 좀 좋은 것 같다. 그냥 사는 거 아니고, 살고 싶어서 사는 것 같다. 내가 그렇게 멋지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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