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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수 Dec 15. 2023

굳이 내게 아는 척을 해야겠다면 나중에 장례식에서나 해

참고로 조의금 하한선 최소 10이니까, 그거 못 줄 거면 장례식도 오지마

   뭐? 직장 상사를 좋아하게 됐다고? 일명 짝사랑?


   세상에. 내 상사들은 죄다 치졸하고 저열하던데.

   너네 회사 되게 좋은 덴가 보다.


   휴 … 나도 상사 좀 짝사랑해보고 싶다. 야, 아니 화내지 말고. 니 짝사랑이 쉬워 보인다 이런 말이 아니고. 사랑할 만큼 되게 좋은 사람들이 내 상사였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그 사랑 때문에 매일 밤 엉엉 우는 게 훨 낫겠다 싶겠다고.

   적어도 분노에 치밀어 흘리는 눈물보다야 백배는 아름다울 테니까.



   있지. 나는 말이야.

   내 전 직장 상사를 우연히라도 마주치게 된다면 말이야. 꼭 해주고픈 말이 있어.


   그놈은 분명 내가 자기 때문에 회사를 관뒀다는 걸 절대 모를 테니, 그때처럼 거만하게 '어이-' 하며 인사를 하겠지? 아님 또 내 차를 발로 뻥뻥 차면서 지 할 말만 와다다 내뱉거나. 그럼 그때, 꼭 이렇게 말할 거야. 할 수 있으면 멱살이라도 잡고선 말이지,


   "넌 내가 반갑나 보다? 근데 반가워도 인사하지 마라. 난 너 안 반가워. 근데도 굳이 내게 아는 척을 해야겠다면, 나중에 장례식에서나 해. 숨 붙어 있는 동안은 되도록 좀 피해 주자고. 아, 참고로 조의금 하한선은 최소 10만 원이니까, 그거 못 줄 거면 장례식에도 오지 마. 죽어서도 난 너는 안 반가워."



   와, 근데 직장 상사를 '사랑'할 수도 있구나.

   참나, 비열하고 치졸한 게 그들의 계층적 특성인 줄 알았더니. 내가 운이 더럽게 없는 거였어. 직장 상사도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거였어.



   보고 있나? 내 전직 상사 S 씨?

   아 어디선가 되게 꿉꿉한 발 냄새가 나는 것 같애, 당신 얘기 써서 그런가.







   윗글은 다음 글의 프롤로그다. 내가 전 직장을 어떻게 관두게 되었는지. 내 상사가 얼마나 개 XX였는지. 전부 다 써보려 한다. 그 상사를 대상으로 내가 얼마나 잔인한 상상을 했었는지까지도 말이다. 그러니 다음 글도 기다려주셨으면! 라이킷도 좀 눌러주셨으면!




   이 브런치북은 남의 사생활을 훔쳐보고픈 이들에게 제격이다. 창호지에 구멍 뚫어 엿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맞춤이다. 저자가 자기 심연 속 얘기를 가감 없이 다 적어보기로 결심을 했거든. 원래는 블로그에 '나만 보기'로 적던 얘기들을 브런치에 '전체공개'로 써낼 예정이다. 남에게 보여준다는 생각으로 쓰는 글이 아니니만큼 착한 척, 위선은 결코 않겠다는 얘기다.



   근데 훔쳐본다는 어감이 좀 별로긴 하다, 그죠?

   그래도 우리 좀 솔직해집시다. 훔쳐보는 거 솔직히 재밌잖아요. 훔쳐본다는 건, 타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꽁꽁 숨겨 놓은 것들을 구태여 찾아보는 거잖아요. 한 마디로 가십이죠, 가십. 술안주로 삼을 재미난 얘깃거리 같은 그런 가십이요. 더 꽁꽁 숨겨 놓았을수록 더 재밌는 가십이 됩니다.



   이 나라에 그런 가십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물론 내 지인의 가십이 가장 궁금하긴 하겠지만. 저같이 쌩판 모르는 인간의 가십도 재미집니다. 심지어 그게 불행에 가깝다면, 괜히 좀 더 궁금하지 않나요?



   음. 그러고 보니 우린 남의 불행에 관심이 많아요. 아니라고요? 글쎄요. 제가 만약 자랑질 하는 글만 써댄다면 과연 그게 재미가 있을라나요.


   10억을 벌었다는 소식보다,

   10억을 잃었다는 소식에 클릭수가 더 높을 것이고


   남친에게 프러포즈받았다는 소식보다,

   결혼을 약속한 남친에게 뒤통수 맞고 쪽팔려서 동창회도 못 간다는 소식이 훨씬 당길 거예요.




   그러니 직장 상사를 장례식에서나 보고프다는 제 다음 얘기가 궁금하시다면, 라이킷 플리즈!






   요즘엔 "길티 플레저"라는 말도 있더군요.

   불행한 사람들을 전시하고, 그 사람을 조롱하면서 느끼는 쾌감을 뜻하는데요. 죄책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나의 현실을 좀 더 사랑하게 된다네요.



    참 못났다, 싶으면서도 아니다, 이건 인간의 추악하고 당연한 본성일지도 모르겠다 싶었어요.

    생각해 보니 저도 그렇더라고요. 제가 미워하던 사람이 망했다는 소식이나, 열등감을 느끼게 하던 그 애가 엇나갔다는 소식 같은 거. 어딘가 좀 불편하지만 사실은 되게 통쾌해져요. 물론 아무 상관없는 지인의 가십도 솔직히 재밌고요.



   근데 이거 특별히 우리가 못돼 처먹은 사람들이라서가 아니고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전 이런 건 그냥 인간의 본성 같아요. 일단 재밌잖아요. 괜히 내 인생이 좀 더 나은 인생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아니 글쎄, 잊고 살던 동창 하나가 성형 수술이 망해가지고 그 예쁜 얼굴이 다 사라졌다지 뭡니까. 아휴, 안타깝다 싶지만은 그래서 어디 어디 성형했는데? 강남에서 했대? 이런 질문이 연쇄적으로 나오더라고요. 근데 또 다른 동창 하나는 사업이 대박 나서 월 1억씩을 번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이번에도 무슨 사업? 강남에서? 같은 걸 묻긴 했지만 전혀 다른 텐션이었어요.



   여러분, 이쯤 되니 제 말 되게 맞는 말 같지 않아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은 있어도, 사촌이 억만장자가 되어 내 기분 너무 좋아-라는 말은 없잖아요. 이래도 남의 불행한 사생활 훔쳐보는 거 재미없다고 하실 건가요?



   연예인 이혼 기사 같은 가십에 매스컴이 또 얼마나 뜨거워집니까. 왜 이혼했을까, 애는 누가 키울까. 사실 이혼은 한 개인에게 얼마나 큰 감정소모고 상처인데요. 그 사이에 낀 아이에게도 얼마나 마음 아픈 혼란인데요. 근데 우린 그런 걸 생각하지 않아요. 얼마나 힘들어할까, 보다 그냥 쟤네가 왜 헤어졌는지 같은 것에만 관심이 있죠.



   그게 사실은 일종의 가해거든요. 그 사람들도 감정이 있는 인간일 거고 안 그래도 이혼으로 심란할 텐데.. 아무것도 해명하지 못하고 바람녀가 되기도 하고요, 그냥 조용히 울고 싶을 텐데 우리가 그걸 허락해주지도 않고요. 연예인이니 감당해라… 면 또 할 말은 없지만요, 근데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주변에 누가 이혼했다 하면 '왜? 이유가 뭐래? 뭐 바람? 아이고~ 그래, 그럴 것 같더라.'라고 하지, '마음이 정말 아프시겠다.. 이런저런 말들에 속상하실 테니 나는 궁금해하지도 말고 관심도 완전히 꺼야지!' 합니까. 제 말 맞지 않나요?



   심리학을 전공하질 않아서, 세상사를 다 꿸 만큼 나이를 먹지도 않아서. 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지. 망했다는 소식엔 어째서 빵빠레가 울려 대는지. 그걸 다 논리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요. 우리는 어쨌든 불행 섞인 가십을 좋아한다는 거. 그거 하나는 확실히 맞는 것 같아요.



   네? 아니라고요?

   저만 이런다고요? 아 진짜 저만이래요?

   여러분은 안 그러신다는 거죠...?



   음.. 저 9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는데, 어른들이 글쎄 얼마나 물어보시던지요. 제 마음이 어떤지에는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왜 이혼했는지, 너는 누구를 따라갈 것인지. 그런 것들만 여쭤보셨어요. 하나의 재밌는 가십 거리인 양 제 불행을 즐기고들 계셨죠.



   그래서 여러분은 절.대.로 아닌데 저만 이렇게 삐딱하려나요? 아휴, 그렇대도 걱정 마세요. 그렇다고 제가 또 그렇게 옹졸스럽기만 한 사람은 아닙니다. 글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더만요. 저는 생판 모르는 남에게 기부를 하고 있기도 하고요, 길을 헤매는 외국인에게 기꺼이 가이드가 되어주기도 하고요, 언제나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으려 노력도 한답니다.



   아이고, 제가 말을 하다 보니 좀 격해졌나 봐요. 사실은 앞으로 내 속 얘길 구구절절 좀 적어볼 건데, 관심 좀 주셔라. 뭐 이런 말이었어요. 여러분들을 '가십 좋아하잖아~ 불행 재밌잖아~' 하면서 유혹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일정 부분 진심도 있었긴 하지만 이 글이 재미있을 테니, 내가 하는 얘기가 퍽 구미를 당길 것이니 좀 봐주십사 하는 말이었답니다.






   요즘 인스타든 어디든 아무튼 나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모든 공간에서 우리는 보통 '내가 얼마나 잘났는지'에 대해 떠들더라고요.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이고, 어찌나 잘 사는지 전시하고들 하죠. 물론 저도 현생을 막살진 않아요. 나름 공부도 좀 했고요, 효도도 잘하고 사는 좋은 사람이에요.



   하지만 매일이 그렇진 않아요. 어느 날엔 미끄러지고, 어느 날엔 '아 저 새끼 죽이고 그냥 감옥 갈까?' 하는 날도 있어요. 그치만 그런 건 보통 꽁꽁 숨기잖아요. '멋진 나'라는 프레임에 어긋나는 내용이니까요.



   이 브런치 북에서는 저런 것들을 얘기할 겁니다.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둔 나만 아는 나를 말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제가 나중에 혹여나라도 유명해지면요, 이 글은 다 비공개 처리 할 거예요.



   그때는 심오한 척, 되게 지적인 글쟁이인 척하면서 아주 고상이란 고상은 다 떨거거든요? 유명해지기 전에 보십시오. 어쩌면 당신은 행운을 만났을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제가 유명해지고 나면요. 야, 그 작가? 걔 인성 되게 별로야. 전 직장 상사를 두고 뭐라고 했는 줄 알아? 하면서 아는 척하기도 좋을 겁니다.





   그럼 저는 빠른 시일 내에 또 오겠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셨다면 정말 감사드리고요,

   기다려주시겠다면 그것도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라이킷 플리즈!









  (휴.. 나만 이런 가십 재밌는 거야? 아휴, 나만 옹졸한 인간이었나 봐. 사촌 얘기쯤에서 글 마무리 했음 진짜 큰일 날 뻔했겠어. 변명 타이밍 좋았고, 변명 내용도 개연성 있었어. 괜찮아 괜찮아 아무도 몰라. 와 진짜 시작부터 인성 쓰레기 작가로 낙인찍힐 뻔했네. 변명 너무 좋았어, 잘했어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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