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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수 Dec 21. 2023

수천번을 다시 돌아가도 또 그렇게 당신을 사랑했을겁니다

내 생에 머물다 가주어 정말 고맙습니다.


https://brunch.co.kr/@nowandforever/13

 이어 쓰는 편지입니다.






아빠가 쓰러지셨을 때, 저는 스물넷이었어요.

경주 어딘가를 여행 중이었죠. 그 날을 내내 기억하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할만큼 평범한 날이었습니다.


아홉 살에 헤어진 아빠였는데도, 부모는 부모더라고요.

살면서 그렇게 비통했던 적이 또 있었나 싶게 아팠습니다.


때 부모를 잃는 기분을 처참하게 느껴서 남은 엄마한테라도 진짜 후회없이 하자고 굳은 다짐을 했었어요. 원래도 착한 딸이었지만 그 이후론 더 헌신하는 딸이 됐었죠. 매일 전화를 드리고, 종종 여행도 가고, 선물도 많이 하고, 사진도 엄청 찍어 뒀어요. 엄마가 언제까지고 곁에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일찍 깨달았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그걸 너무 일찍 깨달은 탓일까요.
절망적인 소식이 너무 빨리 와버린 거예요. 저는 또다시 마음이 남아나질 않았어요.

아무리 후회없이 하자고 다짐을 했어도 엄마의 암 선고는 너무 힘이 세더라고요.

울 엄마 이제 겨우 60 넘겼는데.. 암이라니요.


솔직히 스물넷 때보다 더 속상했어요.

제 엄마라서가 아니고 진짜 울 엄마는 그렇게 아프면 안 되는 사람이거든요.

9살 난 저를 버리지 않은 책임감 있는 부모였고요, 반지하 방에서도 꿈을 키워준 감사한 어른이였고요, 중졸 학위로 공장 다니며 자식은 인서울에 보낸 멋진 여자였어요.

제가 정말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지금도 엄마는 제게 1등이에요.



암 선고 이후 바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엄마 집으로 들어갔어요.

어차피 비정규직이었고, 설령 정규직이었대도 고민할 것도 없었어요. 그럴 일 없겠지만, 또 없어야 하지만 만약 엄마를 잃게 된다면 올해가 엄마와의 마지막 해가 될 테니까요. 제겐 무엇보다 엄마와 시간을 더 많이 함께하는 게 가장 중요했어요.


그래서 올 한 해 엄마 옆에 딱 붙어서 딸이자, 친구이자, 간병인 역할을 했습니다.

한다고 했는데, 역시나 큰 병 앞에서 인간은 너무 나약한 존재가 되더라고요.

엄마는 투병 중에 치아가 다 빠져버려서 임플란트 수술도 하셨어요. 무려 18개나요. 암 수술 이후 뼈이식 수술까지 견디시며 정말 몰라보게 수척해지셨죠.


지난 달에는 집 리모델링을 했어요. 거기에 티비, 냉장고, 청소기, 침대, 쇼파, 식탁, 세탁기 등등 집에 있는 가전도 모두 바꿨어요. 모아둔 돈을 다 썼습니다. 깨끗한 집에서 살아보는 게 엄마 소원이셨거든요. 집을 사서 새집으로 이사를 시켜드리면 좋았겠지만, 제가 아직 그 정도 돈은 모으지 못해서 있는 집을 새집처럼 바꿔드렸어요.



아직도 엄마는 힘든 치료를 계속 받고 계시지만 요즘엔 곧잘 웃으세요.

로봇청소기가 데구르르 굴러가는 걸 보고 신기하다며 아이처럼 좋아하세요.


엄마가 그렇게 웃고 계신 걸 보면 그나마 마음이 좀 잦아들긴 해요.

오늘도 엄마가 어쩜 이렇게 티비가 선명하냐며 감탄을 하고 계세요. 엄마, 그거 OLED 65인치라서 그래. 엄마가 좋아하니 나도 좋네.







있잖아요, 당신.


저 작년 이맘때부터 해서 되게 힘들었어요.

아빠가 깨어났다는 소식은 좋았지만, 아빠의 상태가 온전치 않아서 힘들었고요.

계속 건강했으면 좋겠는 엄마가 갑자기 큰 병을 앓아서 또 힘들었어요.

드디어 평안에 이르러 살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평안이 그리 오래가질 못하더라고요.


그렇게 힘든 순간순간마다 당신이 떠올랐어요.

혼자 숨 죽여 우는 내내 당신의 이름을 되뇌었어요.

무슨 그 이름이 용한 주문도 아닌데, 그렇게 되더라고요.



언젠가 당신에 대한 글을 쓰며 그런 문장을 남긴 적이 있어요.

이루어지지도 않은 첫사랑인데 어째서 다시 돌아가도 또 그럴 것 같은지, 왜 후회가 없는지 모르겠다고요.


그런데 이제는 알 것도 같아요.

역시 그때로 또 돌아가더라도 나는 당신을 사랑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속상한 이별을 하게 될 걸 다 알아도 다른 선택은 하지 않을 것 같아요.



당신은 비록 오늘 제 앞에 계시지 않지만, 당신을 사랑했던 기억만으로도 나는 당신을 추억할 수 있어요.

그 추억 속 당신께 이렇게 편지로나마 다 털어놓을 수도 있고요.


그거면 된 거 같아요.

당신과 함께이지 않지만, 이제는 같은 하늘 아래 어딘가 당신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냥 그거로 충분해져요.


진짜, 제가 고새 좀 크긴 했나 봐요.










올해가 이제 보름 정도 남았습니다.


올 한 해, 저는 일을 관두고 엄마 옆에 딱 붙어서 후회 없는 추억들을 많이 쌓았어요.

엄마가 오래 건강했으면 좋겠지만 혹시나 하는 불행이 와도 후회가 없을 만큼 좋은 딸이었던 것 같아요.

아빠께도 꽤 좋은 자식 노릇을 하고 있고요. 거기에 새아빠께도 이제는 진짜 딸이 되어 드리고자 노력하는 중입니다. 엄마랑 저를 진짜 많이 사랑해주시거든요. 물론 아직은 좀 어색하지만, 전화도 자주 드리고 아빠라고도 자주 불러드려요.


아마 그래서겠죠? 제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사실은 오로지 저만 알아요. 엄마도, 아빠도, 새아빠도 모르세요. 밖에선 또 너무 잘 웃고 다녀서 가까운 친구들 마저도 다 모르고 있어요.


그러나 이제는 진짜 힘에 부쳐요.

더 견디기가 정말 어렵네요.



그래서 이렇게 당신께 편지를 쓰게 됐어요.

다시 생각해도 참 이기적인 편지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못 살 거 같아서 구구절절 긴 글을 썼어요.

어디에라도 꼭 털어놓고 싶은데 그게 여전히 당신이 아니면 어려워서요.


역시 이 편지는 당신에게 만큼은 결코 닿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기억 속 첫사랑에게 쓰는 편지라고 둘러대기엔.. 제가 좀 비겁했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미안해요, 아직 다 잊지 못해서, 아직도 이렇게 당신이어서요.


사랑..했다는 말보다, 오늘은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나와 사랑해 줘서 고마웠고, 이렇게 힘든 순간에 털어놓을 대상이 되어주어 고맙다고요.

당신만은 꼭 보지 말았으면 하는 애석한 편지지만, 그래도 뱉어봅니다.



당신,

참 고마웠고

지금도 고마워요.

내 생에 머물다 가주어 정말 고맙습니다.



다음엔 부칠 수 없는 편지에 말고, 누군가에게 이런 얘길 다 털어놓는 삶을 살고 싶어요.

당신의 당부처럼 저도 이제는 기대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당신도 이제 그만 완전히 보내드리고 싶고요.

이렇게 혼자 그리는 거.. 당신께도, 당신의 애인께도 못할 짓 같아요.


꼭 해낼게요. 알잖아요, 나는 언제나 꼭 해내는 사람인 거.




그래도 그게 당장은 좀 어려우니,

늘은 이 글을 읽어주는 여러분께 한 번 털어놔 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글쟁이라 여러분이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거든요.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은 3편 말미에 언급한, 제가 가끔씩 그리워 한다는 그 옛사랑에게 편지를 써봤습니다.


거짓 한 줄 없는 글이고

왜곡 하나 포함되지 않은 편지입니다.


그리고 아마 이 브런치북의 주제 의식과 가장 부합하는 글이지 싶습니다.

작가를 꿈꾸지 않았다면 블로그에 나만보기로 적었을, 저의 심연 속 얘기입니다.


다음 글도 뜨겁고 냉정하고 들뜨고 가라앉고 다채롭고 잿빛인 그런 재밌는 글을 갖고 오겠습니다.

이 글을 마저 쓰고 니니 이 브런치 북의 갈래가 정확히 정해지네요.


아주아주 솔직한 산문집이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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