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ew moon Sep 09. 2022

행운의 양말


대학교 때부터 믿어 오던 게 있다면 바로 내 '행운의 양말'이다. 하도 오래 신어 약간은 꼬질한 빨간색 양말인데, 왜 이 양말을 계속 가지고 있느냐. 바로 난 이 양말을 굳세게 믿기 때문이다. 첫 취업을 성공했을 때에도, 자격증 시험을 볼 때도, 시험 합격을 할 때에도 이 양말은 언제나 내 곁을 함께했다. 내 빨간 양말을 신은 날엔 이상하게 좋은 일이 생기거나 나쁜 일은 무사히 넘어가는 느낌이 들어 언젠가부터 이 양말을 신뢰하게 되었다.


난 나보다 행운의 양말을 더 믿었던 것 같다. 잘 되면 양말 덕분, 못 되면 내 탓. 오히려 일이 잘 풀리지 않은 날에 이 양말을 신었을까봐 걱정하기도 했다. 참 바보 같이, 아니 순수하게 양말을 그렇게 믿었다. 사실 양말은 양말일 뿐이고 모든 일의 과정엔 내가 있었을 뿐인데 말이다.


그리고 첫 탈락을 행운의 양말과 함께 하게 되었다. 대학교는 예비 앞 번호로, 취업도 아르바이트도 한 큐에 했던 내게 처음 떨어진 완벽한 '불합격'이었다. 너무 간절한 마음을 담아 내가 신었나본데, 우습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침부터 신고 있었어야 됐는데, 점심 때 신어서 운이 덜 들어왔나?'였다. 나도 참 나다 싶은 생각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을 끝마치고 갑자기 억울해졌다. 합격해도 불합격해도 내가 열심히 한 사실은 변하지 않고 그저 운이 닿지 않았을 뿐인데. 양말은 그저 양말일 뿐인데. 불합격한 것도 서러운데 양말 눈치까지 보고 있자니 너무 억울했다.


사실 일이 잘 풀렸을 땐 양말 덕분이라기 보단 내가 그만큼 열심히 해서, 내 진심과 운이 닿아서 잘 된 것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땐 내가 열심히 했지만 내 진심과 운이 닿지 않았을 뿐인 거고. 근데 나는 우습게도 과정 속의 내 노력은 쏙 빼고 양말에만 의지하려 했다. 양말과 함께 한 불합격을 맛보고 나니 이젠 이 양말을 진짜 보내줘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쪼잔하게 불합격 한 번 가지고 행운의 양말을 버리는 거냐고 묻는다면, 맞다.)


행운의 양말에 깃든 행운을 내 마음 속으로 옮기려 한다. 어떤 사물이 아닌 '나'를 믿고 집중하려 한다. 나는 이제 행운의 양말이 없어도 시험을 보고, 어떤 도전이라도 할 수 있다. 행운은 다른 어디가 아닌 내 마음 속에 있을 테니까. 행운의 '양말'이 아닌 행운의 '나'를 믿으니까!

이전 10화 저 퇴사하려구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