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ew moon Sep 09. 2022

저 퇴사하려구요

조각 모음집 08


퇴사 통보 D-day. 팀장님께 조용히 티타임을 신청했다. 갑자기 티타임을 신청했으니 당연히 눈치를 채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팀장님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신 것 같았다. 티타임 장소를 정하고 그 시간만을 기다렸다.


"티타임 신청한 이유가 뭐죠?" 웃으며 팀장님이 건넨 말이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되는 것인지, 구구절절 내 상황과 내가 느낀 감정들을 풀어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다 그냥 거두절미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내가 티타임을 신청한 이유. "저 퇴사하려구요." 환하게 웃고 있던 팀장님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타닥타닥- 팀장님의 노트북 타자 소리만 울릴 뿐이었다. 팀장님은 내게 퇴사 이유를 물었고, 나는 직무에 대한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마음이 많이 힘든 것, 매일 운 것도 덧붙였고. 그렇게 이야기 했으니 조금이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길 바랐다. 내가 홧김에 했던 그 이야기와 행동 때문에 그런 거냐고 물어봐주길 바랐다. 근데 그러지 않았다. "우리 소통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내가 힘든 줄 몰랐다고? 당신 앞에서 몇 번이고 눈물을 보이며 서럽게 울었는데. 내가 힘든 줄 몰랐다는 말을 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티타임은 10분 만에 끝났다. 팀장님은 날 붙잡지 않았고, 난 내가 원하는 퇴사 일자를 말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잘 끝마치고 나가고 싶어서 그 일자를 고집하는 거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 내일채움 수령 금액 때문에 그런 거였다. 회사 생각은 요만큼도 없었다 난.


퇴사를 이야기하고 팀장님은 내게 인수인계 할 목록들을 정리해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더 실감이 났다. 진짜 퇴사를 하는 구나 내가. 정말 뱉어버렸구나 그 말을. 아직 내 퇴사 결심을 모르는 우리 팀 선임의 옆에 앉아 나는 조용히 인수인계 목록을 정리했다. 그렇게 이 회사에서의 내 몫을 하나씩 정리해나갔다.

이전 09화 퇴사를 결심한 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