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모음집 06
우울했던 많은 나날들이 퇴사를 결정하게 된 이유였지만, '퇴사 해야할까?' 싶었던 마음에 '퇴사 해야지.' 하며 종지부를 찍게 만들어준 가장 큰 사건이 있었다. 이름하야 50만원짜리 계약직 사건. (계약직 비하 발언 아닙니다..)
여느 때처럼 주어진 시트를 만들던 날이었다. 그러다 작은 실수를 하나 하게 되었고, 그 날 선임의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인지 나와 내 동료는 불려나가게 된다. 그 자리에서 시트를 제대로 만들지 않은 것에 대한 꾸중을 들었다. 그것까지는 괜찮은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우리가 있던 방에 들어온 팀장은 어떤 상황인지 선임에게 물었고, 시트를 보더니 우리를 향해 폭언을 내던졌다. 맹세코 시트는 하나의 작은 오류만 있었을 뿐이었고, 그게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50만원짜리 계약직을 뽑는 게 나을 것 같다.' (이 회사에만 짱박혀 있어 요즘 시세를 모르나보다. 요즘 파트 타임 알바를 하더라도 50만원보다 더 받는다.) '너네가 월급만큼의 일을 하는 것 같냐.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등의 폭언을 들으며 나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 자리에서 우리 팀의 팀장이자 나의 선임은 입 한 번 뻥긋 않으며 본인의 기분 나쁨만을 표현하고 있었다. 작은 실수 하나로 인신공격성 발언을 듣고 있는 본인의 팀원을 감싸거나 해당 상황을 중재하지는 못할 망정 계속해서 자신의 기분을 드러내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었다.
가장 기분이 나빴던 건 타팀 동기와 나를 비교하는 말들이었다. 매번 불러내 조언이랍시고 말을 할 때마다 타팀 동기와 나를 비교했다. 그는 승진을 했지만 나는 하지 못한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며, 아무렇지 않던 나의 기분을 아무렇게나 긁어놓았던 그 행동들.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메일로 공지되었던 승진의 기준들을 읊으며 이 중 나와 내 동료가 해당되는 건 어떤 것이냐고 물었다. 숨 죽이며 눈물을 흘리면서 해당되는 게 없다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이렇게 불려나와 혼난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잘해보려다가도 동기와의 비교, 인신공격성 발언을 듣고 있자면 힘이 쭉 빠졌다. 내 자신이 하등 쓸모 없는 사람인 것만 같았다. 내가 이 직무와 정말 맞지 않는 것인가 자꾸 의심이 들었다.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는데, 계속되는 폭언으로 나는 한없이 작아져만 갔다. 그리고 매주 정신과 약은 늘어만 갔다.
그 일이 있던 후 주변 사람들에게 해당 이야기를 하니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며 하나 같이 놀란 모습들이었다. 그렇게 상처된 마음을 안고 언제나처럼 야근을 하고 있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곳에서 내가 더 성장할 수 있을까? 몇 년 후의 내 모습이 보이나? 내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졌을 때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내 미래는 이 곳에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 때 마음 속에서 버릇처럼 외던 '퇴사'가 가깝게 느껴졌다. 퇴사해야겠다. 타이밍이 딱 느껴졌다. 그 순간 화장실로 달려가 펑펑 울었다. 퇴사해야겠구나, 여기에 내 자리는 없구나. 그렇게 '진짜' 퇴사를 결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