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휘클리 심화반
효창 공원은 푸르지오 녹지 에디션이다. 온갖 식물과 곤충이 사는 대단지다. 여태 공원을 지나다니면서도 그렇게나 많은 수의 생물이 서식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공원은 쉬었다 가는 곳, A에서 B로 가는데 거쳐지나 가는 곳, 날 좋을 때 바깥바람 쐬며 잠시 머무는 곳뿐이지, 누군가에게는 영원한 보금자리라는 인식 자체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햇살이 잔잔하고, 바람이 산뜻하던 날이었다. 효창공원은 내 친구가 사는 동네여서 이름만 몇 번 들었을 뿐이지 한 번도 직접 찾을 생각은 하지 못한 곳이었다. 여기를 목적지로 삼아 핀을 꽂고 오는 경로를 검색하게 된 경위는 이전에 신청한 어떤 수업에서 비롯한다. 나는 한겨레에서 보내주는 뉴스레터를 구독한다. 뉴스레터는 대개 그 주간에 정치적, 사회적, 또는 문화적으로 이슈가 되는 내용을 엮어 구독자에게 전달해 준다. 이 뉴스레터를 통해 조금은 특별한 수업이 마련되어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수업을 해주시는 선생님은 천리포 수목원에서 근무하는 나무의사, 수업의 주제는 효창공원의 나무와 풀, 꽃이다.
한겨레 본사에서 나무의사 선생님의 이론 수업을 먼저 듣고, 효창공원으로 걸어 올라가 자연물을 이용한 작품을 만든다. 마지막으로 효창공원을 한 바퀴 두르며 공원 내 서식하는 식물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진다. 1교시부터 3교시까지 꽉 채워 준비된 수업 계획서는 읽자마자 꼭 들어보고 싶다는 기대감을 안겨 주었다. 그렇게 신청하게 된 수업이고, 화창한 일요일을 효창 공원에서 보내게 된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꽃과 나무에 더 많은 눈길을 보내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틀린 말 하나 없다. 교복 입었던 때였으면 쌩하니 지나갔을 똑같은 길도 봄볕에 꽃잎이 필랑말랑 망울이 져있으면 저절로 눈길을 보내게 되고, 걸음이 느려진다. 왁자지껄한 도심에서 친구들과 술 마시고 노래방 가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혼자서 흙길을 걸으면서 초록 잎, 싱그러운 풀향을 맡는 게 더 끌릴 때도 있다. 말 많은 사람보다 말 없는 식물이 오히려 위안이 될 때가 있는 건 신기한 일이다. 그렇다고 꽃과 풀무더기에 파묻혀 자연인의 생활을 하고 싶은 건 또 아니다. 다만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온갖 세속적 재미를 보다가, 또 시시콜콜한 근심과 걱정에 찌들어있다 보면 가끔씩 괴성을 지르며 언덕배기로 뛰어올라가 세상의 모든 꽃과 풀 속에 파묻히고픈 욕망에 시달리는 것이다. 아무튼 그런 이상 욕망을 마음 한편에 언제나 품고 살고 있기 때문에 나무의사라는 직업은 참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병원에서 의사가 사람들의 증상을 관찰하고, 아픈 부위를 진찰해 그에 맞는 약물을 처방하거나 치료 방법을 안내하는 것처럼 나무 의사도 똑같은 행위를 식물에게 행한다.
나무의사 선생님과 우리 학생들은 공원을 돌아보면서 무심코 지나칠 법한 곳에서 잠깐씩 멈추어 이 나무나 풀, 꽃이 지니고 있는 또는 있을 법한 이야기 조각을 들려주었다. 내가 조금 놀랐던 건 나무의사는 전문가니까 이런 엄청난 식물전문지식을 알고 있는 게 어쩌면 당연해 보이기도 했는데 내 옆에 바람막이 입고 계신 아저씨가, 또는 뉴발란스 러닝화 신고 계시는 아주머니가 내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 초록잎만 보고도 식물 이름을 줄줄 꿰고 있는 걸 봤을 때다. 반려 식물을 기르거나 식물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식물성애자가 주변에는 없어서 그런지 (물론 우리 아빠는 식집사 시긴 하지만 조금 재질이 다르시다) 옆에서 해박한 식물적 지식을 전파하시는 분들의 모습을 보니 뭔가 멋져 보였다. 내 눈에는 다 그게 그거였는데 말이다. 하긴, 강아지만 해도 말티즈가 있고 푸들이 있고 말티푸가 있으니 식물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식물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에 대한 편견이 있다. 되게 착하고 마음씨도 넓을 것 같다. 이 편견이 탄생한 데에는 합리적 근거가 있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 나쁜 사람들이 (거의) 없다고 하는데 하물며 말도 못 하고 움직이지도 않는 식물을 귀하게 여기고 아끼는 사람들은 말해 무엇하리. 나도 앞으로는 식물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고, 초록 잎사귀만 보고 척하면 척 이름을 외치는 멋쟁이 식물인간이 되고 싶다, 는 바람을 감히 속으로 되뇌어 보았다.
효창 공원의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나무 한 그루가 덩그러니 서있다. 차도로 이어지는 입구 바로 앞이어서 매연에도 노출되어 있고, 시멘트 바닥에 한 줌 흙덩이에 심겨 있어 보기만 해도 갑갑해 보이는 위치에 외롭게 서 있다. 나무 의사 선생님은 이 나무는 겨우 살아 있다고 하셨다. 식물에 문외한인 내게는 이분법적으로 로 살아 있거나 죽어 있을 뿐인데 나무 의사 선생님이 '겨우' 살아 있다고 하시니 식물은 역시 숨 쉬는 존재인 것이 실감되었다. 나무가 뻗친 가지가 댕강 잘려나간 모습을 보니 전문적 지식을 가진 사람이 가지치기한 것으로도 보이지 않다고 하셨는데 그 탓에 그 가지에서는 더 이상 새로운 잎을 틔울 수는 없을 거라고 했다. 게다가 나무 기둥은 노끈으로 칭칭 감겨 형광 노란색의 표지판과 한데 묶여 있었다. 나무는 어차피 움직이지 않는 존재지만 투박한 노끈으로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감겨 있으니 홀로 서 있는 게 아니라 무릎이 꿇려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나무가 효창 공원에 하나는 아닐 것이다. 하나가 아니다 못해 너무 많아 셀 수 없을 지경일 수도 있다.
수업을 듣기 전과 후, 내 마음가짐은 달라졌다. 여전히 식물을 보는 건 즐겁고 산뜻한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길거리 콘크리트 바닥에 심어진 나무를 보면 딱하다. 이제는 모든 푸른 생명을 볼 때마다 제 아무리 푸릇하고 싱그러워도 딱한 마음이 든다. 게다가 최근에 바질을 기르다 추운 바깥에 두어 시간 내놓았더니 모조리 다 죽어버려서 묘한 죄책감까지 든다. 식물은 인간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니 함께 건강하게 상생할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데 그걸 이기적이고 편리한 방법만 쫓는 내가 어떻게 행할 수 있는지 막막하기만 하다. 휴, 갈 길이 멀다. 뭘 해야 하는지, 어떤 방법을 취해야 하는지도 충분히 잘 알고 있는데 일상생활 속에서 꾸준히 행하는 건 영 쉽지 않다. 고꾸라지고, 실수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도 다시 마음을 다잡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어제도 다짐했지만 스타벅스 가서 플라스틱 테이크 아웃 잔을 썼고, 오늘도 다짐했지만 난방도 안 끄고 외출했다. 그래도 내일이 오면 또 다짐을 해야 한다. 효창 공원에 묶여 있는 외딴 나무를 떠올려야지. 그 나무가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본래 수명을 꽉 채워 살아서 죽을 때 죽더라도 모든 잎을 틔우고, 모든 가지를 흔들고선 말없이 산 것처럼 조용히 시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