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여행을 간다는 건 다른 나라를 가기 위해 포르투갈을 거치다는 것도 아니고, 포르투갈을 경유지로 삼겠다는 것도 아니며, 포르투갈을 살포시 내 여행에 끼워주겠다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나의 소중한 한 달을 포르투갈에게 기여하겠다는 뜻이다. 나의 정성 어린 마음을 포르투갈이 알아주고 내가 지내는 한 달 동안 따사로운 햇살과 포근한 바람, 행복한 일만 일어나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그 한 달을 위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필요한 것은 집이다. 의식주, 의과 식은 알아서 할테지만 주는 어떻게 할 것인가. 끊임 없는 고민을 하고 리스트룰 추려 보았다. 지난 대학원 시절 유용하게 썼던 플랫폼을 활용했다. 우리나라의 직방처럼 자취생, 학생, 또는 1인 가구 등이 효율적으로 살 거주지를 찾을 수 있게끔 도와주는 플랫폼이다. 처음에는 나만 여행을 가느냐, 엄마와 언니까지 합세하느냐가 결정되지 않아 집 찾는 것을 미루어 두었다. 그러다 6월에 접어 들어 엄마와 언니까지 동참 의사를 밝히고 티켓 예매를 속행하였다.
아, 그럼 이제 집을 찾아야 한다. 갑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 같았다. 여기도 여름 휴가 시즌을 기다리며 미리 예약과 예매를 하는 것처럼 그 쪽 사람들도 바캉스만을 기다리며 곳곳의 휴양지나 관광지역에서 좋은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기간에 가까워질수록,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그만큼 어려워진다. 마음이 조급해지긴 했지만 그동안 봐왔던 곳에서 추리고 추려 3군데로 줄였다.
첫 번째, 작은 초록 정원이 딸린 집
Entrecampos에 있는 이 집은 굴벤키안 정원에 가까이 있었고, 도심지 안에 편리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한적한 동네여서 여유롭게 동네 마실로도 널찍한 공원 몇 군데를 다닐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었다. 좁지만 기다란 거실과 따로 딸려 있는 주방과 각각 더블베드, 싱글베드가 있는 두 개의 침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가장 큰 특징은 부엌에서 좁은 통로로 이어지는 정원이었다. 이 작은 테라스는 붉은 타일 바닥이 깔려져 있고, 한 쪽에는 기다란 벤치와 테이블이 있었다. 그 위로는 차양막이 덮혀져 있는데 모로 쬐는 햇볕으로 사진 속에서도 볕자락이 붉은 타일 바닥 위로 내리 쬐는 모습이 환상적이었다. 정원은 작지만 그 가운데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자리 잡고 있었다. 집 안에 있으면서도 자연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두 번째, 현대식으로 개조한 집
Anjos에 위치해 이 집 또한 도심 근처 혹은 도심 속에 있다고 표현할 수도 있는데 리스본은 사실 그렇게 큰 도시가 아니어서 웬만한 구역은 다 도심 중심지라고 표현해도 될 법하다. 두 개의 방에 침대가 놓여져 있고, 욕조가 있는 화장실과 난간이 달린 좁은 테라스가 있었다. 포르투갈은 많은 건물들이 테라스를 갖고 있는데 우리나라처럼 널찍한 베란다의 개념보다는 말 그대로 사람이 나가 담배를 피거나 음료를 마실 수 있도록, 또는 잠깐 나가 의자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이 집은 거실에 창문이 길다랗고 크게 나 있어 공용 공간부터 볕이 넓게 드리워져 공간이 밝아 보였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는 데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겠지만 이 정도 너비의 창이라면 실제로도 탁 트여 있을 것만 같았다. 게다가 드물게 에어컨이 설치된 집이어서 여름에 아무리 더워도 쾌적하게 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점도 있었다.
세 번째, 널찍한 거실에 햇살 드는 집
마지막으로 살펴 본 집도 에두아르도 공원 근처 동네에 있는 집이어서 위치는 매우 편리했다. 거실이 넓어 소파와 테이블이나 낮은 수납장 등이 정돈 되어 자리 잡혀 있었고, 그 옆으로 창문이 여러 개 나있었다. 이 집은 거실에서부터 길게 난 복도를 따라 방과 부엌이 잇달아 나왔다. 방의 크기나 모양은 엇비슷해 보였고, 방은 널찍하진 않아도 옷장이나 전신 거울 등 필요한 것들은 다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잠은 방에서 자겠지만 아무래도 생활의 대부분은 공용 공간에서 할 것 같다는 점과 거실에 앉는 소파와 소파 베드, 테이블과 협탁까지 있어도 자리가 남을 만큼의 넉넉한 공간이라는 점이 가장 큰 장점으로 보였다. 대신, 에어컨이 따로 설치 되어 있지는 않아 포르투갈의 올 여름이 얼마나 더울지 미지수기에 그 부분이 걱정으로 다가오기는 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남부 유럽에 속해 있어 여름 더위는 당연히 예상할 수 건데도 많은 건물이 아직도 현대식으로 빌딩 전체를 개조하지 않은 이상 에어컨을 설치해 놓지는 않는다. 본래 유럽의 여름은 메마른 건조함과 불볕 햇살이 특징적이지만 그늘막에 앉아 있으면 서늘한 바람이 불기에 에어컨 같은 인위적 장치의 필요성을 못 느껴서 그럴 수도 있고, 건축법으로 공사가 막연히 오래 걸려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히 기상 이변으로 나타난 이상 기후 징조로 유럽의 여름도 찜통 더위, 폭염 등이 발생하고 있긴 하다.
도심지라고 해도 막상 관광객이 붐비는 동네에서 한 달을 살기에는 피곤하고 지칠 것 같아서 오히려 대학원 다니면서 살았던 동네처럼 한적하고 주변에 공원이나 휴식할 공간이 있는 동네를 찾고 싶었는데 추려낸 집들 모두 적당한 위치에 있어서 오히려 더 고민이 됐다. 가격대도 엇비슷하게 형성돼 있었다. 2500에서 3000유로 사이로 한화 300-400만원 선이었다.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이 왔다. 리스본에서 기다리고 있는 친구가 자꾸 채근을 하는 탓이었다. 아무래도 비행기 표부터 늦게 끊었기 때문에 숙소를 얼른 정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현지에 있는 친구가 바캉스 시즌을 생각하면 이 정도로 컨디션이 좋은 집이 나왔을 때 얼른 예약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장단을 재봤을 때, 모든 조건이 부합하는 장소는 없었다. 고로, 어느 정도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럴 때 만드는 선택이 제일 헷갈린다. 아리까리한 그 지점에 서있게 되기 때문이다.
우린 마지막 집을 한 달 살이 거처로 삼기로 했다. 일단 엄마, 언니, 나까지 생활한다면 공용 공간이 넓어야 한다는 점과 근처에 공원이 널린 한적한 동네라는 점,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점도 한 몫 했다. 어느 면을 보더라도 평균 이상을 하는 것처럼 보였기에 예약을 넣고, 그 당일 바로 결제를 했다. 아, 맞다. 우리 차 렌탈 하기로 했지. 주차 문제에 대해 상의하는 걸 잊었다. 하지만 이미 렌트비를 하루치를 빼고는 완납한 상태. 차 렌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는 다음에 고민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