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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이타임 Mar 30. 2022

치킨집 아들로 산다는 것

 나는 치킨집 아들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아빠가 '월드 치킨'이라는 가게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시 집이랑 가게가 인터폰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치킨 먹으러 와!"라는 엄마의 말이 들리면 신이 나서 달려갔다. 치킨 맛이 어땠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단골손님인 택시기사 아저씨가 철없이 치킨 튀겨달라고 졸랐냐는 잔소리를 했던 게 생각난다.


엄빠는 분주했다. 쉬어야  낮에도 동네에 전단지를 돌렸고 장사를 마치는 시간은  새벽 3시를 넘겼다. 아빠는 나와 시간을 보내지 못해 미안했는지 짬이 나면 오토바이를 태워 천변을 돌다 오곤 했다.


 언제나  없는 구슬땀이 있었으나 '월드 치킨' 1년을 넘기지 못한다.


 성인이 되고 한때 치킨집 아들이었다는 사실이 잊힐 무렵, 아빠는 다시 치킨가게를 시작했다. 친구들과 종종 모이곤 했던 동네 가게를 인수한 것이다. 나름 단골이었던 가게를 아빠가 운영한다는 사실에 혹시나 치킨 맛이 달라지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사실, 월드 치킨처럼 빠른 마감을 하는 건 아닌지 두려운 마음이 컸을지도 모른다. 얼마간의 적응기간이 필요했지만 온 가족의 노력으로 가게는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치킨집 아들로 살아서 아쉬운 점은 월드컵 축구경기를 제대로 챙겨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이브 같은 날에도 열심히 배달을 도와야 한다. 대신 언제든지 치킨을 먹을 수 있다는 강력한 장점이 있다. 어릴 땐 철없이 먹기만 했지만 이젠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엄빠의 뜨거운 노동현장을 지켜보며 세월이 흘러도 뜨거운 땀방울은 그대로구나 생각한다. 치킨집 아들은 그 땀방울을 기억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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