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임용되기 전, 신규교사 연수를 받을 때 장학사님은 말씀하셨다. "교사도 엄연한 전문직이에요." 내심 교사가 되었다는 자부심은 있었지만 스스로 전문직이라고 인정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전문직이라고 하면 한 분야에 숙련된 기술을 가지고 있거나 의사, 약사, 변호사, 회계사처럼 전문지식과 함께 높은 수입을 거둬들이는 직업 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초등교사는 중등교사처럼 한 분야에 깊이가 있지 않다. 국영수사과음미체실(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음악, 미술, 체육, 실과 등등) 여러 분야를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학시절에도 교과서에 등장하는 다양한 내용을 넓고 얕게 배워왔다. 실뜨기도 하고 발레도 하고 계란도 삶았다. 어쩌면 전문가보다는 프로야구에 등장하는 내야수도 하고 외야수도 가능한 ‘올라운드 플레이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10년 가까이 초등학교 교실에 있다 보니 자칭 '장점 찾기 전문가'라고 부르자고 정했다. 사람은 누구나 장점보다는 단점을 쉽게 찾고 지적하기 바쁜데, 교실에서는 반드시 아이들의 장점을 찾아야만 한다. 단점만 바라보았다가는 아이들과 멀어질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교사 스스로가 교실에서 버틸 수 없다. 아무리 못해도 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고 티끌만큼 작은 성공도 온 힘을 다해 칭찬해주어야 한다.
결혼하기 전에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상대방을 바라보고, 결혼 한 뒤에는 한쪽 눈을 감으라는 말이 있다. 교실에서는 둘 다 잘해야 한다. 못하거나 보기 싫은 행동에도 조금은 눈감아주고 그러면서도 장점이 무엇인지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있어야 한다. 도무지 장점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어도 방귀소리도 칭찬해주겠다는 마음으로 발견해야 한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었다. 발표 한 번 하지 않던 유연이가 손을 들기 시작했고, 받아쓰기 0점 행진이던 이한이가 받아쓰기 연습을 해온다. 기차만 가득하던 이준의 그림에 터널과 육교가 등장했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진심을 담아 칭찬해 준다. 내가 먼저 좋은 점을 이야기해주면 아이들도 친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120살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120년의 인생에 나와 마주하는 1년의 인생은 책 한 권의 한 페이지도 안 되는 찰나에 불과하겠지. 자신의 길 위를 걷고 있는 아이들 옆에 등장한 나는 당장은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변화를 응원한다.
나는 장점 찾기 전문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