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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이, 알림장 써야지!"
"다 썼어!"
벌써 알림장을 썼을리가 없는데 이 녀석을 믿을 수 없었다. 거짓말 하지 말라며 알림장을 열어봤다. '아뿔싸!' 정말 알림장을 다 쓴 게 아닌가. 머쓱한 마음에 오늘은 15일이 아니라 16일이라며 날짜를 고치게 했다. 자신을 의심한게 억울했는지 이준이가 눈물을 흘렸다. 자폐가 있어도 다 알고 있다. 선생님이 믿어주지 않아 서운한 마음을 느끼고 있었다.
"이준아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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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지금 몇 시에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질문이다. 본인 스스로 확인하면 충분히 알 수 있는 걸 계속해서 나에게 물어본다. "지금 몇 교시에요?", "무슨 시간이에요?", "화장실 가도 돼요?" 몇 번이고 말해준 것들을 되풀이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다. 그래도 좀 더 친절할 수 있는데.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내가 싫을 때가 있다.
신경질적인 내 모습을 반성...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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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침을 잘 먹지 않는다. 그래서 10시만 되면 배가 조금 고프기 시작한다. 아이들 앞에선 간식을 먹을 수 없으니까 연구실에 와서 몰래 과자를 먹곤 한다. 초코파이를 맛있게 베어물고 있는데 우리 반 아이가 갑자기 연구실 문을 활짝 열었다.
"야! 선생님 초코파이 먹는다!"
"쌤, 치사해요. 혼자 먹으면 어떡해요."
별 수 없이 숨겨둔 마이쮸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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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학교에 가기 싫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나도 직장인이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어마어마한 학부모의 민원이 기다리고 있다거나 감정이 바닥난 날엔 내가 교실을 지키는 것보다 없는 게 아이들에게 더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하는 수 없이 출근을 하고 하나 둘 일을 처리한다. 아이들과 웃고 떠들며 하루를 보낸다. 어느새 집에 갈 시간이다. 내 꿈이 방학만 바라보는 교사가 되지 않는 것이었는데. 해가 갈수록 일 년의 레이스를 완주하기 어렵다.
"더 강인한 내가 되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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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분리수거를 하러 갈 때마다 아이들을 생각한다. 분리수거 교육을 여러차례 했음에도 종이류에 아무거나 구겨넣는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어쩌면 모르는 게 아니라 귀찮아서 그럴 수도 있겠다. 분리수거는 무척 수고스러우니까. 잘 안떨어지는 패트병 라벨을 손톱으로 뜯어내난 게 여간 성가시다.
귀찮은 일을 할 때마다 귀찮은 일을 가르치고 있는 나에게 질문한다. 넌 잘하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