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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by 식이타임

살면서 처음으로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열여섯 살에 집에 불이 난 일이다. 우리 집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불타고 있었다. 내게 남은 건 입고 있는 교복 한 벌과 가방 속 두꺼운 해커스 토익책 한 권이었다. 오늘 당장 잠을 잘 곳이 없다는 것도, 갈아입을 양말과 팬티 한 장 없다는 것도 서러웠다.


내가 우리 집에 불을 지른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서늘해지는 날씨만큼 몸을 움츠리고 다녔다. 어려운 형편이라 한 번 입고 말 교복을 또 구입할 수 없었는데 하는 수 없이 학생회실 마네킹에 전시된 교복을 빌려 입었다. 주섬주섬 마네킹에 있는 교복을 벗기고 내 몸에 맞는지 입어보는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고개를 숙인 나와는 반대로 담임 선생님은 언제나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주셨다. 불이 난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오히려 누군가의 어려움을 헤아릴 수 있는 기회라고. 당시 내 꿈은 검사가 되는 것이었는데 검사가 되기엔 터무니 없는 성적임에도 "넌 반드시 멋진 검사가 될 거야! 정의로운 사람이 될 거야!"라고 확신 있게 말해주셨다.


덕분에 방황하지 않고 공부와도 멀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검사는 되지 못했지만 선생님과 같은 교사가 되었다. 나조차 나를 믿지 못할 때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로 얼마나 큰 격려가 되는지.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비빌 언덕 같은 존재가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열여섯의 나는 선생님을 통해 배웠다.


지금 나는 나의 선생님처럼 '믿어주기'의 달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선생님을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 누군가를 믿어주는 일이 이렇게나 힘들다니!


내가 너무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 선생님을 떠올리며 말한다. 지금은 삐뚤어져 있어도, 시계를 못 읽어도, 곱셈을 못해도 "우리 다윤이는 다 할 수 있을 거야." "소윤이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될거야." "어디에서든 꼭 필요한 사람이 될 거야."


젊은 시절은 마음이 늘 흔들린다. 자신이 싫어질 때도 있다. 내가 가진 가능성을 믿지 못할 때도 있다. 그래도 나를 만나는 아이들만큼은 언제든 다시 용기를 얻고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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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