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직장 사람들 저한테 대체 왜 그러세요 ep.08
입사한 지 1년이 되지 않은 신입사원이 당일 연차를 쓴다는 건 그 당시 회사 분위기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어려운 걸 나는 6개월 차부터 해버렸다. 힘들게 출근한 어느 월요일에는 사무실에 도착해서도 심장 두근거림이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다 두통에, 속까지 메스꺼워졌다. 화장실에서 헛구역질을 몇 번 한 끝에 연차를 내야 할 것 같다고 과장님께 말씀드렸다. 심리적 고통은 신체화가 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전체 부서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본부장님까지 오시는 대규모의 회식이라 메뉴도 평소와는 다른 장어였다. 회식하는 건 상관없지만 부장이랑 같은 공간에 1분 1초라도 있는 것이 싫었다. 최대한 부장 눈에 띄고 싶지 않아 나는 구석에서 조용히 장어를 구우면서 불편한 마음을 소주로 삼키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옆 테이블에 본부장님인 이사님과 그 부장이 앉게 되었다. 부장은 이사님에게 온갖 아부를 떨었고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나는 치를 떨었다.
소주 한 병 정도를 비웠을까. 장어가 똬리를 틀어 타고 말라버리고 있을 때 내 마음도 이미 말라비틀어져 화만 남아 있었다. 술도 좀 먹었겠다, 옆에서 부장이 이사님께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나는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한 번은 묻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억한 심정을 담아 부장한테 물었다.
“부장님! 저를 왜 그렇게 미워, 아니 싫어하세요?”
뜨거운 장어집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어 정적이 흘렀다. 부장은 당황하는 눈치였다.
“내가 언제~~ 다인이를 미워했다는 거야?~~ 나 너 이뻐하는데 왜 그래~~”
“그럼, 저한테 대체 왜. 그. 러. 시. 는. 거예요?”
하며 나는 그동안 쌓였던 울분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그는 깜짝 놀라 본인 두 손을 내 양 볼로 가져가(아니 손 좀 치워주세요)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오해가 있는 거라며 달랬다. 이 상황을 지켜보신 이사님이 한마디 하셨다.
“아니 o부장이 우리 다인이를 괴롭힌 거야? 이거 안 되겠네!”
“아닙니다. 이사님! 다인이가 뭔가 오해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느꼈다면 내가 정말 미안하다 다인아..!”
부장은 이사님께 진짜 내가 오해가 있는 거라며 잘 이야기하겠다고 하고 그 상황을 일단락시켰다. 회식이 끝나고 부서원들이 내 어깨와 등을 토닥이면서 한 마디씩 위로를 해주었다. 부장은 별다른 말은 없었다.
지르고 나니 마음은 가벼워졌지만 다음날 막상 출근하려니 두려웠다. 여느 때와 같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내 일을 하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하던 대로 아침에 출근해서 커피 집기 등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아 오전 업무 스케줄을 정리하고 있었다. 전날 회식의 여파인지 부서원 한 명, 한 명이 아침 출근 인사로 괜찮냐고 걱정을 하며 한 마디씩 덧붙였다.
부서원 1 : “그 부장, 원래 전부터 말이 많았어.”
부서원 2 : “아휴, 사람이 그럼 못 쓰는데!”
부서원 3 : “잘했어! 그 부장 한 번은 터질 줄 알았네, 알았어.”
곧이어 부장이 출근하였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평소와 같이 인사를 하였다.
그런데...
“아이고 김다인 사원님 출근 잘하셨습니까?
저는 누구 때문에 이사님한테 한 소리 듣고 잠을 못 잤는데.
김다인 사원님은 평안하셨나요?
상사 욕먹게 하는 사원님 지금은 기분이 괜찮으신가요?
혹시 내가 이런 말 했다고 아직도 언짢으신가요? 아휴 말 조심해야겠다.”
사람이 한 번에 변하면 죽는다고 하였다. 그 일 이후로 부장은 내게 꼬박꼬박 존대하며 비아냥거렸다. 그리고 그날의 뒤끝을 은근슬쩍 내 잘못인 것 마냥 넘기는 말도 들었다. 아니 부장은 일부러 들리게 말하였다.
“야 내가 그렇게 심하게 했냐?”
“나만 나쁜 새끼 된 것 같잖아”
본인 부하직원에게 자신의 잘못이 아니고 내가 예민하고 과하다는 식으로 말하고 다녔다. 분명히 이사님 앞에서는 사과해 놓고 자기를 이사님과 직원들 앞에서 나쁜 사람 취급했다는 식으로 본인의 억울함을 여기저기 하소연하고 다녔다. 상처는 내가 받았는데 자신이 피해자인 양 굴었다. 며칠 간의 부장의 태도를 보고 있자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결국 나는 입사 9개월 만에 퇴사한다고 말하였다.
9년이 지난 지금 나도 나이를 먹어 그 부장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을 해보았다. 새파랗게 어린 신입이 모두가 있는 앞에서 자기를 왜 미워하냐고 대들었다고 생각하면 뭐, 나름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그 이후 대처 방법이 어른스럽지 못하여 실망스러움이 더 컸다. 추후 나를 따로 불러 내가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했는지 제대로 묻지도 아니 따지지도 않았다. 그냥 본인을 욕먹게 했다는 것만으로 단단히 화가 난 사람으로 행동하였다. 하기야 애초에 따로 불러 이야기를 들을 인성이었다면 그렇게 괴롭히지도 않았겠지.
나 또한 조금 더 괜찮은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부장에게 고민 있다고 따로 면담 신청을 하는 등 좀 더 조용하게 어려움을 토로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얼굴을 볼 때마다 호통을 치는 사람 앞에서 몸이 얼어붙어 당시 따로 대화를 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아마 나는 이게 마지막이다 싶어 회식 자리에서 술의 힘을 빌렸던 게 아니었을까.
조금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도 잠시,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바로 단념하였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라고 넘어갈라 그래도 걸음걸이 소리만 들어도, 얼굴만 봐도 저 사람이 또 나한테 무슨 말을 할지부터 겁을 먹어 미리부터 피해망상에 가득 차 있는 나 자신이 정말 싫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여 위로를 받아 감사했지만, 마음이 많이 지쳐있었다. 입사 3개월, 6개월 차부터 부장 때문에 힘들어서 퇴사한다고 이미 두 차례 말씀드렸고 다시 생각해 보라며 두 번 모두 붙들린 상황이었다. 과정에서 스트레스의 신체화 증상은 더욱 악화되었다.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 그곳에서 나를 빼내는 게 당시에는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아무도 나를 지킬 수 없고 고통을 대신할 수 없었다. 나 자신을 지키는 건 나뿐이었다. 그리고 난 해볼 만큼 다 해보지 않았는가. 마음이 망가진 이상 더 이상의 아쉬움도 미련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