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회사에서 상사와의 갈등으로 9개월 만에 도망치듯 퇴사하였다. 네 번째 회사에선 입사 3개월 만에 마음 터놓고 지낸 동료와 오해가 생겼다. 그 일로다른 직원들 사이에서 은따가 되기도 했다. 불과 1년 남짓 기간 동안 회사에서 대인관계로 일을 겪고 나니 강철 멘털이 되었다고 해야 하나. 이후로 웬만한 일들은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네 번째 직장에서 다퉜던 동료와 화해를 하고 잘 지내는 분위기를 풍기니 다른 사람들과도 잘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겉으로만 풀었지, 속으로는 억한, 서운한 감정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최대한 겉으로는 웃어주고, 맞춰주며 지냈다. 감정을 숨길 줄도 알고 필요에 따라 겉과 속이 달라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내 속을 다 내보이면 약점이 잡힌다는 걸 알게 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 감정적으로 대처할 일이 없었다. 지난날 감정으로 대응했던 일들이 후회되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는지 방법론을 알게 되었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지난날은 잊자고 다짐했다. 열심히 경력을 쌓으면서 하고 있는 일에서 인정받고 정착해 보자며 버티었다.가끔 동료와 다투었던 그날의 일이 떠올라 울기도 했었지만 말이다.
입사 1년 차가 되자 경영지원 부서장이 바뀌면서 회사 내 지각변동이 발생하였다. 새로 오신 부서장과 경영지원부 다른 직원들이 업무 문제로 의견 충돌이 생겼다. 시간이 흐를수록 업무 문제는 감정적인 충돌로 이어져 그들 사이에 오해가 깊어졌고 서로를 싫어하였다. 앞에서는 신경전이 있었고 뒤에서는 험담이 난무하였다. 나는 물 흘러가듯 사람들 말에 동조 아닌 동조하는 척을 하면서 그저 내 할 일에 집중하는 것만이 살길이라며 조용히 일만 하였다.
갈등의 골이 누구 하나 나가야지 끝날 정도로 깊어져 부서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결국 부서에서 나와 직속 상사인 차장님을 제외하고 전부 퇴사하는 대형 사태가 발생하였다. 경영지원부 식구들은 부서장을 제외하고 6명이었는데 무려 4명이 퇴사한 것이었다. 그 안에 나와 다투었던 직원도 있었다. 나는 하나둘씩 퇴사할 때마다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주며 헤어지기 아쉬운 척을 했지만 속으론 쾌재를 불렀다. 마음속에 응어리가 남아 조금이라도 불편했던 사람들이 죄다 나간 셈이었다. 부서 직원들이 다 나가고 보니 나는 그 안에서 자연스레 고참이 되어 있었다. 그 당시 회사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고 갑자기 내 존재가 중요해졌다. 그 와중에 새로 입사한 분들은 내게 한없이 친절하였다. 그해에 나는 승진을 했고 혼자 버티며 고생했다며 연말엔 상여금도 받게 되었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고 하던데 정말로 그러하였다. 버티면 이런 날이 오는구나, 내게도 기회가 오는구나 싶었다. 그동안 참고 버티었던 설움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전에는 누가 나를 싫어하는 낌새라도 보이면 똥은 피하는 게 상책이라며 도망치느라 바빴다. 그렇게 처신하면 당장은 마음이 편하지만 추후엔 스스로가 못나고 참을성 없다고 생각하여 나 자신이 부끄럽고 싫었다. 시간이 흘러 마음에도 맷집이 생긴 건지 무슨 말을 들어도 동요하지 않고 섣불리 감정을 내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회사에서는 그랬다. 누가 내게 감정적으로 대하거나 뭐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디서 개가 짖는구나’로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버리는 스킬이 생겼다. 짖는 개는 짖기만 할 뿐, 물지 않는다는 걸 뼈저리게 알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