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했던 직원들이 전부 나가고 새로운 사람들로 부서가 물갈이가 되면서 불안정하면서도 평온한 나날들이 이어졌다. 가장 오래 다녔던 회사가 1년이었는데 어느새 2년이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신입 때와 비교하면 마인드도 바뀌었다. 더 이상 사람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었다. 예전엔 나는 하소연할 곳만 찾아다녔는데 이제는 다른 직원들의 말을 들어주는 쪽이 되었다. 다른 직원들이 퇴사해서 나만큼 회사에 대해 아는 사람이 몇 없을뿐더러, 직무가 회계여서 법인카드를 관리하다 보면 자연스레 직원들의 고충을 듣는 입장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회사 규모도 2년 사이에 커졌고 나도 조금은 성장해 있는 것 같았다. 업무도 루틴화 되어 월 마감이나 수금 일 같은 특정 날들을 제외하고는 그날그날의 할 일이 정해져 있었다. 매일 같은 곳에서 똑같은 일을 하였고 만나는 사람도 비슷하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오전 일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양치를 한 뒤 오후 일을 막 시작할 참이었다. 옆자리 부장님께서 양치를 하러 잠깐 자리를 비우셨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문득 그분의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모니터와 키보드, 계약서와 경비 관련 서류들, 내가 올린 결재 파일, 매달 반복된 일정으로 빼곡한 달력, 업무 다이어리, 그 위에 올려진 펜과 카시오 계산기, 그 옆엔 전화기와 가습기 등. 내 책상과 비슷하면서도 부장님의 책임만큼 서류들이 더 많이 쌓여 있었다. 그때 부장님이 나와 띠동갑 차이였는데 갑자기 12년 뒤 나의 모습, 내 책상이라고 생각하니 무언가에 머리를 두들겨 맞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과연 이 일을 부장님 나이가 된 12년 이후에도 하고 있을까? 아니 12년이나 할 수나 있을까? 그리고 나는 이 일을 즐기고 있을까? 만족스러워하고 있을까? 과연 내가 원하는 삶일까? 지금 상황에서 이 일만 하고도 나는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처음 물꼬를 튼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 끝없이 이어졌다.
불편했던 직원들이 전부 퇴사하고 물갈이가 되어 새로 입사한 사람들과 잘 지내고 불편한 일도 없으며 업무도 그럭저럭 해나가고 있을 때였다. 그동안 고비를 여럿 넘겨 처음엔 배부른 생각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한번 들었던 의문은 좀처럼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부장님에게 불만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분은 지금까지 내가 만난 상사 중에서 가장 좋으신 분이었다. 내가 지금 회사에서 힘든 일을 겪을 당시에 오셨던 분이라 그런 내 이야기를 경청하여 주시고 조언도 많이 해주셨다. 회계 신입이었던 내가 그래도 2년 넘게 다닐 수 있었던 건 업무를 잘 알려주는 부장님이 계셨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 일을 10년 뒤에도 하고 있을지 말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던 건 그 당시 업무에 대한 결핍 때문이었다. 나는 더 알고 싶고 더 잘하고 싶었던 욕심이 매우 강하였던 것 같다. 현실적으로 경력이 짧으니 실력이 부족한 게 당연지사였다. 현실을 인정하자 실력이 부족하면 빠른 시간 내에 쌓을 수 있는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전문성 있게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이 생각은 몇 개월 동안 이어졌다.
결국 고민의 답을 내렸다. 회계 전문성의 끝은 자격증 취득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그 길로 회사 다니면서 퇴근 시간에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직장인 세무사 학원을 찾았고 상담을 받은 뒤 수강 등록을 하였다. 회계사냐 세무사냐 잠깐 고민을 하였는데 어렸을 때 세무법인에서 아르바이트한 적도 있고 주변에 세무사 공부하는 친구들이 있어 세무사에 대한 내적 친밀감이 있었다. 물론 회계사가 더 어렵다고 느껴 세무사를 도전하는 것도 있고 말이다. 강의료는 내일 배움 카드로 학원비가 공제되어 저렴하였다. 주 3회 월수금 퇴근 후 곧장 교대역에 있는 학원으로 향했다. 나는 스스로를 테스트하고 싶었다. 회사 다니면서 공부할 수 있을 정도의 의지와 체력이 있다면 퇴사하고 합격하는 데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결석 없이 3개월 기초 과정을 완강하였다. 학부 때 전공이었다 보니 이론은 어렵지 않았다. 나는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모아둔 돈과 퇴직금 등을 계산해 보고 계획을 세운 뒤 남편과 상의하였다. 의욕이 다분했던 나를 남편이가 응원해 주기로 하였다. 그렇게 나는 2년 8개월을 다니고 네 번째 회사를 호기롭게 그만두었다.
당차게 시작했던 공부는 5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핑계를 대고 싶진 않으나 그래도 이유를 말하자면 초반 스퍼트는 아주 좋았다. 그런데 기초 개념 반이 끝나고 심화 과정으로 들어갈수록 느낌이 좋지 않았다(싸했다는 표현이 잘 맞다). 하면 할수록 내가 생각한 것보다 시간이 꽤 걸리겠다는 불안함이 들었다. 그 불안감은 점차 압박으로 변했고 열심히는 하지만 이쪽은 내 분야가 아닌 것 같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머리 나쁘다는 걸 이렇게 돌려 말하는 중이다). 하다 보면 어찌어찌 1차 시험은 합격하겠지만 2차 시험은 기나긴 지옥이 될 것 같았다. 게다가 주변에 세무사 준비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학교를 졸업하고도 오랜 시간 동안 2차에서 여러 번 고배를 마셨다. 친구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머지않아 미래 내 모습인 것 같아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당시 결혼 2년 차 신혼이기도 하였다. 퇴근 후 남편이를 홀로 두거나 주말에 같이 놀지 못하는 것도 공부할수록 신경 쓰였다. (공부가 안 되는 걸 이렇게 핑계를 대고 있다) 나는 주로 스터디 카페에서 공부하였고 핸드폰은 끄고 사물함에 넣어두었다. 그때 카카오톡도 지워서(초반 의지는 강하였다) 지인들에게 공부한다고 통보하고 남편이랑만 텔레그램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한 번은 주말 낮에 오전 공부를 끝내고 핸드폰 전원을 켰는데 남편으로부터 장문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연애할 때도 내가 편지를 써달라고 간곡하게 말해야 써주는 사람인데 장문의 내용이라 당황스러웠다. 내용은 그간 내가 공부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의 서운함, 외로움, 설움이 터져 있었다. 그 길로 나는 가방 싸 들고 집으로 돌아와 그이의 고충을 들었다. 나로 인해 희생하는 그이에게 무척 미안했다. 이렇게까지 해서 내가 얻는 행복이 무엇일까에 대해 처음 생각하게 되었다.
외로움도 컸다. 회사 생활하며 사람들과 마음이 맞지 않아 힘들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공부하기 직전 회사에서의 마지막 기억은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다. 사람을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편이어서 고요 속에서 공부만 하고 있으니 이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았다. 친구들과 동료들이 그립기 시작했다.
이유를 꼽으면 많았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안 될 것 같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포기하고자 하는 자기 객관화, 자기 합리화일지도 모르겠다. 그때 내가 느낀 건 내 실력은 계란 수준인데 계란으로 바위를 칠 수도 있겠단 생각이 강하였다. 평소 노력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지만 가능성이 높은 분야에서 만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나라는 사람은 ‘하면 된다’라기보다 ‘되면 한다’라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자격증도 그런 분야 중 하나라고 판단해서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공부하면 할수록 벽에 부딪쳐 마냥 길게 공부할 수만은 없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나는 주변 시선으로부터의 창피, 민망을 무릅쓰고 과감히 포기하였다.좋아하는 남편이를 보며 잘했다고 생각하였고 내 합리화에 위로가 되었다. 나는 취업 지옥에 또다시 뛰어들었다. 그런데 웬걸 갑자기 코로나가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