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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Oct 21. 2024

회사 기안을 상신하는데 문맥이 신경 쓰이더니

Part3. 지금 일을 평생 할 수 있을까? ep.14

회계 사무직을 5년 정도 해보니 그 안에서도 나름 선호하는 일을 찾을 수 있었다. 전산 처리와 같은 딱딱 떨어지는 성격의 일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나는 결재 기안이나 품의서 올리는 일을 더 선호하였다. 언젠가부터 기안을 상신하는데 ‘글’을 신경 써서 올리고 있었다. 처음엔 전임자나 상사의 기안을 그대로 사용하였는데 점차 내가 쓴 문장을 토대로 이전과는 다르게 작성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문장 앞 뒤 주술 관계가 맞는지, 문법이나 맞춤법이 틀리지는 않았는지, 전달하고 싶은 말만 단순 명료하게 적었는지를 과하게 신경 쓰고 있었다.


네 번째 회사를 다니고 있을 때 보고서를 수정하면서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고쳐 써도 쓰는 단어와 문장에 한계가 있었다. 이때 처음 글 쓰는 법을 배워보고 싶었다. 돈이 많이 들 것 같지 않고 취미로도 괜찮아 보였다. 그날 점심시간을 틈타 인터넷 검색창에 ‘글쓰기’를 검색하였다. 몇몇 게시글을 읽던 중 독서 모임을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의 블로그 공지 글을 보게 되었다. 한 달간 작가님을 초빙하여 글쓰기 모임을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출판사뿐만이 아니라 독서 모임을 운영하고 있어 다른 글쓰기 모임보다 진정성이 있어 보였다. 장소는 집과 회사의 중간으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기간도 길지 않고(너무 길면 하다 그만둘 것 같아서) 큰 비용 들이지 않으면서 작가님으로부터 글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나는 바로 신청서를 작성하였다.


일주일에 한 번, 퇴근하고 평일 저녁 글쓰기 모임이 시작됐다. 모임 인원은 작가님까지 포함해서 여섯이었고 대부분 직장인이었다. 매주 소재를 찾아 짧은 글을 즉석에서 쓰고 낭독을 하였다. 모임의 최종 목표는 한 달 안에 한 편의 에세이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글을 써서 작가님께 메일을 보내면 모임에서 수정할 부분을 알려주었다. 그때 합평이라는 걸 처음 하였는데 신기하게도 글 속에서 개개인의 개성이 보였고 글에도 이미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모임 회원 한 명 한 명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몰랐었는데 그들이 쓴 문장 하나하나에서 그 사람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 한 달의 시간만큼은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와 책상에 앉아 글을 수정하고 또 수정하는 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처음 써보는 내 글이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금세 싫증을 내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글을 반복해서 읽는 것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문장이 더 좋아지는지 고민하였고 고칠 때마다 글이 나아지는 것도 신기하였다. 그때 썼던 한 편의 글이 이전 회사에서 겪은 상사와의 갈등을 다룬 내용이었다. 과거를 회상하는 게 힘들면서도 한 문장씩 써 내려갈 때마다 큰 위로를 받았다. 지금 브런치에 연재하고 있는 글도 그 당시 받았던 치유의 영감으로 쓰고 있으니 말이다. 




시험을 그만두고 다섯 번째 회사를 다니고 적응했을 무렵 그때 참여했던 글쓰기 모임이 불현듯 떠올랐다. 시간이 꽤 흘러(2~3년) 아직도 그 모임이 진행되고 있을까 해서 그 출판사 대표의 블로그를 들어가 봤다. 비슷한 형식의 글쓰기 모임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쉬운 마음에 다른 모임이 또 있을까 찾아봤는데 ‘책 쓰기’라는 키워드가 눈에 들어왔다. 모 출판사가 운영하는 책 쓰기 아카데미였다. 출판사의 카페 글을 몇 개 읽어보니 나 같은 일반인들도 원고를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책은 무엇보다 콘셉트가 중요한데 마침 그 콘셉트를 무료 상담을 해준다는 글을 보았다. 무언가의 끌림에 나는 당일 날짜로 상담이 되는지 전화해서 물었고 퇴근 후 방배동으로 향하였다.


책 쓰기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출판사 소장님을 만나 뵈었다. 그는 내가 미리 작성한 인터뷰 지를 찬찬히 읽은 후 몇 가지 질문을 하였다. 특정 주제에 대해 어떤 철학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나만의 개성이 있는지를 추론하는 질문이었다. 나만의 개똥과 같은 철학을 말씀드렸더니 그 주제를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였다. 내가 인터뷰지에 써간 것과는 다른 방향이었지만 소장님께서 나를 심문(?!) 아니 심층상담 끝에 나온 콘셉트였다. 잘 알고 있는 분야여서 이게 원고가 될지 인지하지 못하였는데 듣고 보니 꽤 마음에 들었다. 그분의 컨설팅에 신뢰가 생겼고 더불어 원고를 쓰는 과정도 배우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9주간의 책 쓰기 아카데미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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