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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Oct 27. 2024

6년간 다섯 회사를 다닌 건 포기하지 않은 열정이었어

epilogue

다섯 번째 회사를 퇴사한 이후로 나는 더 이상 회사로 돌아가지 않았다. 지금 이 글을 쓴 시점은 퇴사한 지 4년 차이다. 퇴사한 날이 출간 계약일이니 혹시 전업 작가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책 한 권 냈다고 인생은 바뀌지 않았으며 애초에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글로 먹고산다는 건 극소수이기 때문에 내 실력으로는 말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설사 그 정도 수준이 되려면 얼마나 길고 긴 시간을 버텨내야 하는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글쓰기는 부수적으로 가고 진짜 내 재능과 진로를 찾고 싶어서 퇴사한 것이었다.


출간한 책이 연애 실용서여서 강연 플랫폼 회사에서 연락이 와 연애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걸 계기로 독자들과 SNS와 메일로 상담을 진행했었다. 몇 회 해보고 반응이 괜찮아 이후 책도 홍보할 겸 네이버 지식인에서 연애 상담가로 활동하였다. 나만의 방법론으로 사람들에게 연애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을 주는 상담 일이 재밌었고 피드백도 긍정적이었다. 생각보다 내가 상담에 재능이 있고 ‘잘’하는 걸로 느껴졌다. 내가 가진 걸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게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상담 일 대부분을 글을 쓰면서 진행하여 글쓰기와 상담을 동시에 진행하는 방식도 나와 잘 맞았다. 이러한 경험으로 진로의 큰 틀을 ‘상담’으로 잡았다.


처음엔 상담 심리 분야로 진로를 생각하면서 대학원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상담 심리 외에 동양학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 당시 무지한 내 머릿속엔 서양에는 심리학이, 동양에는 명리학이, 이렇게 양대산맥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스무 살 때부터 진로나 연애 고민으로 나는 사주를 쇼핑하듯이 보러 다녔다. 회사를 다니면서 사람들과 갈등이 있을 때도 이 회사를 퇴사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사주 상담을 받으며 고민을 해소시키려 하였다. 나는 정작 힘들었을 때 심리 상담을 받은 게 아니라 사주로부터 도움 받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 순간 머리에 꽝하듯이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래, 이거다. 사주를 배워보는 거야. 


온라인으로 기초 강의를 들으며 사주명리학에 발을 들이기 시작하였다. 공부하면서 나와 가족, 지인들 사주를 대입하는 과정이 신통방통하였다. 그동안 내가 왜 이렇게 진로 고민을 했는지 조금씩 알게 되어 깊이 빠져들었고 이쪽 일을 해야겠다는 확신이 생기었다. 이후 나는 스승님을 찾아가 그때부터는 웃음기 빼고 직업으로 만들기 위한 공부를 시작하였다. 최근에는 대학원에서 동양학 석사 논문 과정을 마쳤다. 지금은 네이버 블로그 <다인명리학>이라는 온라인 사주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




진로를 찾기 위해 멀쩡한 회사를 퇴사한다고 했을 때 가까운 지인들이 걱정을 많이 해주었다. 너무 무모한 결정 아니냐, (네가 감히) 작가가 되려고 퇴사를 하는 거냐, 찾지 못하고 시간과 돈 낭비일 거다, 수입이 없는데 남편 고생시키는 거 아니냐 등 온갖 걱정 소음들이 난무하였다. 전부 맞는 말이어서 곧이곧대로 무시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때 이상하리만큼 자신감이 있었다. 직장을 다니던 중 책 쓰기 컨설팅을 받고 이후 원고를 쓰고 책을 내는 순간까지 그냥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내가 용기 내어 도전했던 일에서 성과가 나온 것이었다. 만약 제대로 된 진로를 찾지 못한다면 다시 회사로 돌아갈 생각도 하고 있었다.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단 무모함이 마음 편히 진로를 찾을 수 있는 든든한 백이 되어 주었다.


돌이켜 보면 겉으로는 상사, 동료와의 갈등 때문에 회사 생활이 어려운 줄로 알았는데(물론 이 영향도 있지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몰랐던 애로 사항이 더 컸기 때문에 힘들었던 것이었다. 퇴사와 이직을 반복하고 여러 회사를 경험하면서 내 성향, 가치관, 그리고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경계를 알게 되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그리고 퇴사 이후에도 나만의 것을 찾겠다고 도전한 과정들 틈에서 조금씩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앞으로 나아갔다. 어쩌면 6년간 다섯 회사나 다녔던 건 나에게 맞는 진로, 회사를 찾기 위한 열정의 모든 과정이 아니었을까?




그동안 <6년간 다섯 번 퇴사> 브런치북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쓰면서 좋지 않은 기억들 때문에 중간중간 힘들었는데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면서 상처들이 많이 옅어진 것 같습니다. 연재하는 동안 쓰디쓴 지난 10년을 진심으로 마주하였고, 다 써놓고 보니 앞으로 10년을 잘 살아갈 수 있겠단 생각도 들었습니다. 늘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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