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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May 01. 2024

우리의 마지막 <1>

전화

  일주일에 두 번 출근을 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주말까지 포함하면 외부에 반드시 나가야 하는 일정은 이틀뿐이다. 아이의 등하원은 남편과 시터 선생님께서 번갈아가며 맡아주시니 이틀을 제외하고 거의 작업실에서 보낸다. 이전의 직장에서도 풀 재택을 했었고, 그 이전에는 프리랜서로 일했다.


  그러니 회사에서 그런 전화를 받게 될 거라고 예상한 적 없었다.


 우엉이의 행동에서 나이 든 티가 보이기 시작하던 무렵부터 나는 종종 녀석의 마지막에 대한 생각을 했다. 어떻게 보내주면 좋을까. 만약 큰 병이 있다면 수술을 시켜야겠지. 하지만 나이가 너무 많아 수술과 연명치료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까. 그렇다면 차디찬 병원에서 마지막을 맞는 것보다는 익숙한 집에서 포근한 침대 위에서 마지막을 맞게 해야지. 우엉이를 데려올 때부터 녀석이 나보다 먼저 세상을 뜰 것이라는 것 예정되어 있었던 사실이고, 나는 수많은 웹툰과 에세이, 영화 등을 통해 그 이별을 간접 체험했다.


 반려동물의 병수발을 들며 지쳐가는 사람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 또한 그런 시간을 겪을 것이라 생각했다. 마지막 순간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차마 바라보기 힘들었다는 사람들을 보며 세상을 떠나는 우엉이의 모습이 내 눈에 처참하게 보일지라도 꿋꿋하게 곁을 지키리라 다짐했다.


 마음속으로 꽤 많은 예행연습을 해 두었던 것이다. 갑작스러운 이별에 당황해 마지막 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도록.


 많은 상황을 가정하며 준비했지만 내가 생각한 경우의 수에 아예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 있었다.


 내가 녀석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리라는 것.


 집에 있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니 나는 당연히 우엉이의 마지막 순간에 내가 곁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인사를 나눌 시간조차 없이 녀석이 떠날 거라고 가정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오후 한 시경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회사에 있을 때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전화를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여보..."


 어딘가 혼이 나간 목소리였다.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우엉이가 죽었어."

 "뭐?"

 "우엉이가 죽었어."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남편은 그 문장을 되뇌었다. 언뜻 남편의 말이 자음과 모음으로 분해되어 뒤엉킨 것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침까지 내 발치에 와서 몸을 부비던 우엉이었다.


 "우엉이가 죽었어. 잠깐 나갔다가 들어오니까 죽어있었어."


 남편은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숨이 턱 까지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탕비실로 걸어가며 남편에게 물었다.


 "제대로 얘기해. 무슨 소리야."

 "내가 인공호흡을 했는데, 심폐소생술을 했는데, 잠깐 눈을 떠서 울다가 죽었, 죽었어."


 흐느끼는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말이 되는 소리인가. 뭔가 착오가 있었을 것이다.


 우엉이가 죽다니. 잠깐 죽은 듯이 잠든 것을 오해하는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


 "눈을 떴는데 왜 죽어. 울지 말고 똑바로 말해. 정신 차리고 똑바로 말하라고!!"


 나는 남편에게 화를 냈다. 그는 정말로 곧 정신을 잃을 것처럼 울었고, 나는 평소에도 감정적인 남편이 성급하게 단정을 지은 것이라 생각했다.


 "우엉이가 쓰러졌으면 병원에 데려가면 되지, 병원에 전화를 해야지. 여보가 그렇게 울고 있을 게 아니라! 지금 병원 가면 되잖아!"

 "아니야, 죽었어. 죽은 거 같아 여보."

 "영상 통화해, 영상 통화로 우엉이 보여줘."


 나는 남편이 분명히 착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갑작스러운 발작이나 기절, 혼절을 한 것을 죽은 것으로 오해한 것일지도 모르지 않은가. 남편의 말은 두서가 없었다. 우엉이가 바닥에 변을 본 채 팔을 만세 하듯 올리고 죽었다고 말했다. 눈을 잠깐 떴다고 말했다. 그리고 곧장 숨이 끊어졌다고 했다.


 믿을 수 없었다.


 예상해 본 적 없었다.


 핸드폰 화면으로 오열하는 남편의 얼굴이 보였다.


 "우엉이 보여줘!"


 내 다급한 외침에 남편이 카메라를 우엉이 쪽으로 돌렸다. 우엉이는 힘없이 입을 벌린 채 만세를 하고 누워있었다. 화면이 흔들렸다. 무거운 것으로 심장을 누른 듯 압박감이 느껴졌다.


 말문이 막혔다. 그런 자세로 누워있는 우엉이를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닌데 화면 너머의 우엉이가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이 느껴져서였다.


 나는 근처에 있던 의자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남편은 너무 심하게 울고 있었다.


 정말 우엉이가 죽은 걸까.


 나는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우엉이 옆에 있는 건 여보 밖에 없어. 울지 말고 정신 차려. 지금 우엉이 수습할 사람 당신이야. 그러니까 정신 차리고, 우엉이 닦아주고 내가 갈 때까지 기다려."

 "우엉이가... 내가 인공호흡을 했는데도...."

 "정신 차려!! 정신 차리고 우엉이 챙기라고. 나는 지금 거기 없잖아."


 냉정하게도 말했다. 되새겨보면 나는 몹시 화가 나 있었다. 우엉이에게도 남편에게도 그곳에 없는 나에게도, 지금 이 순간 주변에 있는 모든 것에게 화가 나 미칠 것만 같았다.


 전화를 끊고도 나는 건조했다. 오늘 연차를 허락받을 수 있을까, 키우던 고양이가 죽었다고 하면 연차 사유가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장례 업체에 전화를 하고, 프로젝트 매니저에게 연차 허가를 받고, 메마른 기분으로 택시를 불렀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생각했다. 왜 이렇게 안 슬프지?


 탈진할 것 같은 감각은 느껴졌으나 감정은 놀라우리만큼 차분했다. 그저 엄청난 피로감이 느껴질 뿐이었다. 슬픔이라고 말하기 힘들었다. 참 이상하다고 느끼면서 택시에서 내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 앞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남편의 눈은 이미 핏줄이 터져 벌겋게 물들어 있었고, 집에서는 단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비릿한 냄새가 났다. 이런 게 죽음의 냄새구나. 바로 알 수 있었다.


 "우엉이는 어디 있어."


 남편이 비켜서자, 화장실 발매트 위에 엎드려 누운 우엉이가 보였다.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작은 앞발 위에 올려놓은 우엉이.



 우습게도 그때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우엉이는 죽어서도 귀엽구나. 죽어서도 예쁘구나. 하나도 잔인하고 처참하지 않고, 예쁘다.


 슬픔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죽어서도 예쁜 우엉이.


 죽어서까지도 사랑스러운 우엉이.


 나는 우엉이의 앞에 무릎을 꿇고 키를 낮춰 웅크렸다. 내 코와 우엉이의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보드라운 털 위로 한 손을 얹고 가만히 쓰다듬었다.


 "예뻐라...."


 툭, 눈물이 떨어졌다.


 "예뻐라..."


 우엉이 털이 너무 보드라워서, 우엉이의 코가 너무 말랑해서, 우엉이의 꼭 감은 두 눈이 너무 귀여워서, 털 아래로 느껴지는 몸이 아직 너무 따뜻해서 죽음을 사무치게 실감할 수 있었다.


 뼈를 타고 신음 같은 울음이 흘러나왔다.


 "미안해...."


 우리의 마지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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