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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May 15. 2024

우리의 마지막 <2>

장례

시간이 잠시 멈추고 세계가 잠깐 물에 잠겼다. 우리는 한동안 어미를 잃은 짐승처럼 울었다. 이만큼의 눈물이 어디에 숨어 있었던 것일까. 통곡이 멈추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집에 들어설 때 거실에 드리웠던 노을이 어느새 적막한 색으로 변해 주방까지 길게 드리웠다.


장례를 치러야 했다.


회사에서 연락했던 업체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시종 두서없이 늘어놓던 내 말에 장례업체 직원은 할 수 있는 한 공손한 태도를 취하려고 노력했다. 나와 같은 이들을 대한 경험이 많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숙련된 안내가 이어졌다.


 "직접 아이를 데리고 오셔도 좋고 저희가 마련한 차량을 보내드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리가 가까우니 차량이 있으시면 직접 데리고 오는 것을 권해 드립니다."

 "언제 가면 되나요."

 "천천히 오셔도 됩니다. 오시기 전까지 충분히 안아주세요. 운전 조심하시고요."


아이가 태권도 학원에 가 있을 시간이었다. 아이와 장례를 함께 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인 걸까. 어린 나이에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잠시 고민을 했지만 나는 우엉이와의 이별을 잘 추려낸 예쁜 말로 충분히 설명할 자신이 도저히 없었다. 갑자기 사라진 우엉이의 부재를 그럴듯한 거짓말로 덮어둘 자신도 없었다. 죽음을 설명할 말을 배운 적이 없었다, 나는.


녀석이 좋아하던 담요로 아직 온기가 남은 우엉이의 몸을 감싸고 막 낳은 아이를 안듯 안았다. 품에 잘 안기지 않던 녀석이라 이렇게 갓난아이처럼 안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태권도복을 입은 채 겉옷만 걸치고 나온 아이가 내 품에 안긴 우엉이를 보았다. 마지막으로 만나는 우엉이의 모습이 아이의 눈에 흉하지 않았으면 했다. 자꾸 벌어지는 입을 조심스럽게 닫으며 말했다.


"우엉이가 고양이별로 떠났어."


아이는 동그란 눈으로 잠시 나와 담요 포대기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응, 알아. 관장님이 말해줬어. 그런데 엄마 울었어?"


나는 아이의 덤덤함에 조금 놀랐다. 어설프게 웃어주고 차에 탄 나는 우엉이를 힘주어 안았다. 조금씩 비릿한 냄새가 올라왔다. 아이는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고 얼굴을 찌푸렸다. 6살 난 아이는 활자가 아닌 죽음을 아직 실감하지 못했다. 아무리 그리워도 다시는 녀석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종종 사무치게 그리운 이 감촉을 다시는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아이는 너무 어렸다.


"엄마 우엉이 가지 말라고 하면 안 돼?"

"우엉이는 벌써 고양이 별로 갔어. 거기에는 고양이친구들이 아주 많아서 우엉이는 심심할 새도 없이 매일매일 신나게 뛰어놀 거야."

"그런데 엄마..."

"응, 왜?"

"우엉이가 자꾸 똥 아무 데나 싸서 친구들이 싫어하면 어떡해? 다른 고양이들이 우엉이 냄새난다고 안 놀아주면 어떡해?"


우엉이는 장이 좋지 않아 다른 고양이들보다 변 냄새가 지독했고, 나이가 들고는 화장실을 자주 가리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우리를 떠난 우엉이가 친구들에게 환대받지 못할까 봐 아이는 정말로 걱정스러운 듯했다.

"아니야. 거기에서 우엉이는 설사도 안 하고 아프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을 거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정말이지?"

"응. 정말이지."


아이는 다행이라는 듯 창밖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 잡은 장례식장에서 도착해 염을 하고 수의를 입은 우엉이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왜일까. 나도 너에게 잘해준 일이 하나도 없었던 건 아니었을 텐데 이별의 순간에 떠오르는 말은 온통 미안하다는 말뿐이라서. 먼 길을 떠나는 녀석에게 축복의 말을 건네고 싶은데 입 밖으로 나오는 건 모두 철 지난 후회뿐이라서 그게 다시 나를 미안하게, 서럽게 만들었다.



화장을 하는 동안 편지를 썼다. 노란 메모지에도 미안하다는 말이 전부였다. 먼저 아이들을 떠나보낸 사람들이 남기고 간 편지들이 벽에 가득했다. 모두, 미안하다는 말 뿐이었다.


우리는 무엇이 그렇게 미안한 것일까.


메모지를 보다 말고 엎드려 통곡을 했다. 사실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이가 며칠 뒤에 말을 해주어서 알았다. 엄마 그날 사랑반 아기들처럼 엉엉 울었잖아, 하고.



"다들 미안해하지 마세요. 아이들이 원하지 않을 거야."


누군가 다정한 글을 남겨놓았다. 위로가 되었다. 아이는 민트색 메모지에 빨간 볼펜으로 '사랑해'라는 글자를 써 벽에 붙였다.



우엉이는 작은 유골함에 담겨 내 품으로 돌아왔다. 그날의 기억은 그것으로 끝이다. 어딘가 드문드문 잘려나간 것처럼 기억이 완전하지 않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비어있는 우엉이의 밥그릇을 보고 겨우 멈춘 울음이 터졌고 온몸이 아팠다는 것 밖에는, 삼 일간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는 것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들이 이어졌다. 직업이 없었다면, 내가 한 아이의 엄마가 아니었다면, 할 수 있는 만큼 오랫동안 잠을 자고 싶었다. 하지만 꾸역꾸역 일은 해야 했고, 원망스러울 만큼 눈부신 봄은 기어코 겨울을 밀어내며 찾아오고 있었다.


우엉이를 떠나보내야 했다.


그전에, 조금 더 선명하게 너를 남기는 방법이 있다면.

시간에 따라 서서히 옅어질 이 기억들을 어딘가 박제해 둘 수 있다면.


충분히 울었다는 생각이 들던 어느 날, 나는 브런치에 접속했다. 우엉이를 위한 글을, 아니 너를 보낸 나를 위한 글을 써야지.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하리라.


「바야흐로, 여름이었다.」


나는 우엉이를 처음 만났던 그날로 돌아갔다. 눈부신 태양이 내리쬐고 청춘의 한가운데에서 두려울 것이 없었던 스물다섯의 그날로.


다정한 호박색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네가 존재하던 그 시간으로.


우리 가장 아름다웠던 어린 날의 여름으로.


다정했던 너를 애도하기 위해.

너를 잃은 나를 위로하기 위해.


우리 함께였던 선물 같던 시간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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