삵과 너구리
지금까지의 흔적은 둘 중 한 종이 아니라,
두 종 모두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리고 그 둘이 같은 장소에 배설을 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을 넘는다.
이제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은 이거다:
소요산은 삵과 너구리
모두에게 적합한 서식지인가?
이를 확인하기 위해,
나는 세 가지 측면에서 소요산을 분석하기로 했다:
1. 지형적 조건
2. 생태적 다양성(먹이·은신처·물)
3. 공식 기록 및 비공식 목격 사례들
소요산은 동두천시 북단에 위치한 해발 587m의 중저산성 산지다. 정상은 평탄한 바위지대이고, 아래로 갈수록 계곡, 암벽, 혼효림이 밀도 있게 형성되어 있다.
✅ 암반 지대 + 깊은 그늘 + 다층적 수풀
→ 삵이 낮에 은신하기에 매우 유리한 조건
✅ 사람 통행이 적은 구간, 비가 오면 통제되는 야생 구역 → 사실상의 야생 보호지대
또한 인접한 마차산, 왕방산, 포천 연계 산줄기까지 고려하면, 삵이 단일 산이 아니라 넓은 활동권을 돌며 살아가는 데 적합한 거점 중 하나가 된다.
너구리의 경우는 더 유리하다.
적응력이 매우 강하고, 중저산지부터 농경지 인접 구간까지 폭넓게 서식한다. 실제 중랑천변으로 내려오는 일도 잦고, 나도 직접 목격한 적이 있다. 생각보다 귀엽지 않고, 짐승의 육체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동물이다.
(1) 먹이
삵: 설치류, 작은 조류, 때때로 열매
소요산엔 들쥐·청설모·꿩·개구리 등 풍부
가을엔 산딸기, 머루 등 열매류도 많음
(2) 물
원효폭포·청량폭포·옥류폭포·선녀폭포·선녀탕 등
계곡 수계가 전체 산지에 퍼져 있음
(3) 은신처
큰 바위 그늘, 나무뿌리 주변, 접근 어려운 경사면 등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지형적 깊이 존재
너구리는 말할 것도 없다.
먹이는 더 다양하게 섭취하고, 은신처 선택 폭도 더 넓다.
✅ 결론: 삵도 생존 가능한 지역이다.
단, 개체 수는 낮고 단속적, 경계적 영역 활용 가능성이 높다.
소요산 자체에서 삵을 명확히 포착한 공식 보고서는 적지만, 간접 사례 다수:
2022년 포천 무인센서에 삵 포착
연천 민통선, 철원, 가평 등지에서 삵 잇단 목격
동두천 개발계획 보고서에 삵·수달 서식 고려 항목
2019년 이후 블로그·탐방기에서 “삵 출몰” 추정 보고 다수
"소요산엔 담비와 삵도 출몰한다고 하던데요”
일부 야간 배설 흔적, 고양잇과 발자국 사진 등장
* 2023년 환경부 발표:
수도권 동북부 산지에서 삵 분포가 서서히 확대 중
→ 포천–동두천–연천–철원 연결축 한복판에 위치한 소요산은 핵심 통과 축
지형, 먹이, 물, 사람 밀도, 인접 산지 연결성—모든 조건은 삵이 실제 서식하거나, 통과하거나, 일부 영역화할 수 있는 충분한 환경이다.
- 너구리는 말할 것도 없이 상시 거주 가능성
- 삵은 부분적 거주 또는 순환 활동 영역 가능성
우리는 단순히 똥 하나에서 시작했지만,
이제 이 산을 하나의 활동 지도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장소는,
그 지도 위에서 하나의 흔적이 아니라 하나의 좌표다.
다음 장에선, 이 흔적에 이름을 붙이는 문제로 들어간다. 그건 단순한 작명 행위가 아니라,
기호를 부여하는 의미의 작용이다.
현장에서 발견된 배설물은 육안으로도 두 가지 색과 질감으로 구분되었다.
이제 우리는 그 배설물이 어떤 동물의 것인지에 대한 형태학적 비교 분석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해당 장소가 단지 똥을 싸고 간 곳이 아니라,
삵과 너구리가 모두 접근 가능한
반야생–야생 전이 구간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 배설물들은 단순한 배설의 결과물이 아니라,
하나의 해석 가능한 기호이며,
그 자체로 생태적 메시지였다.
최근 본 다큐 중에 가장 아름다우며 살 떨리는
한국 삵에 대한 EBS다큐(약 15분)
삵의 서식가능성에 대한 상세 분석보고서는 아래 링크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