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들,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저러는지 모르겠어.”
MBK에 대한 솔직한 고백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먼저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저는 MBK의 홈플러스 투자건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바는 없습니다. 다만 맥쿼리 재직 시절, MBK를 상대로 M&A 거래 협상을 한 적이 있고, 외국계 헤드헌터로부터 MBK 이직 제안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물론 조건이 맥쿼리보다 나빴기에 만나보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이 제가 MBK와 관련된 전부이며, 홈플러스 투자건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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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료들이 하던 말
MBK의 홈플러스 투자가 진행되던 당시, 친하게 지내던 투자 운용역들이 식사 시간에 이런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MBK가 도저히 valuation이 나오지 않는 가격에 홈플러스를 질렀던데,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저러는지 모르겠어.”
네, 비싸게 산 것 같더군요. 인수금융을 과도하게 일으켜서 감당하기 어려운 가격에 지른 것 처럼 보입니다. 어쩌면 홈플러스 사태는 이미 예견된 결과였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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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럼 왜 비싼 줄 알면서도 샀을까?
지금부터는 저의 가설적 추론입니다. 찰스 퍼스가 말한 제3의 추론 방식, 귀추법(abduction)을 빌려, 『장미의 이름』의 윌리엄 수도사처럼 추리해보겠습니다.
1️⃣ 시간 압박의 함정 ⏰
PE(사모펀드)는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약정받으면서, 정해진 기간 내에 이를 집행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투자 약정일로부터 3년 이내에 자금을 모두 집행하지 못하면, 이후에는 더 이상 자금을 요청할 수 없습니다. 이른바 ‘캐피털 콜(capital call) 기간’이죠.
2️⃣ 절박해진 운용역들
약정 기간이 끝나가는데도 집행 실적이 부족하다면, 운용역들은 조급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때 그들은 이런 판단을 하게 됩니다:
<조금 비싸게라도 매물을 사는 것 vs 적당한 가격의 좋은 매물을 기다리다 놓쳐버리는 것>
이 상황에서 전자를 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투자가 집행돼야 운용보수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단기적으로는 무조건 집행하는 것이 이익이니까요.
3️⃣ 구조적 유혹
투자를 집행해야, 해당 투자에 기반한 운용보수가 발생합니다. 약정 기간 내 투자를 못 하면 펀드는 더 이상 운용 수익을 창출할 수 없습니다.
또한 펀드의 약정금 소진율이 투자자가 신규 운용사를 채택할때 KPI로 쓰입니다. 그래서 운용보수만 못 받는게 아니라, 신규 펀드레이징 할 때도 문제가 발생합니다.
더 큰 문제는, PE의 투자 사이클(5~10년)이 길다는 점입니다. 운용역들은 그 사이 다른 회사로 이직할 수도 있습니다. 투자만 집행해놓고 엑시트 전 다른 곳으로 이직해버리면, 설령 그 투자가 실패하더라도 본인은 아무 책임 없이 경력을 이어갈 수 있게 되는 구조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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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셀러스 마켓의 덫
2005년 이후 PE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PE 간 경쟁이 심화되고 완전한 셀러스 마켓이 형성되었습니다.
사려는 사람은 많고, 팔 물건은 적은 상황.
이때 등장한 게 바로 투자은행(IB)입니다. Sell사이드 IB의 역할은 매각 가격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이른바 ‘프로그레시브 딜’ – A에 보여주고, 다시 B에게 넘기고, “여기서 이만큼 썼다더라”고 하며 오가며 가격을 부추깁니다.
누가 더 절실할까요?
당연히, 투자 약정 기간이 끝나가는 펀드 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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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MBK의 계산착오
MBK는 아마도 이렇게 판단했을 겁니다:
“우리가 이렇게 급했던 것처럼,
우리가 홈플러스를 매각할 시점에도 분명 급한 펀드들이 있을 거야. sell 사이드 마켓은 유지될 것이고, 우리는 비슷한 방식으로 매각할 수 있을 거야.”
또한 홈플러스가 보유한 부동산 가치가 인수금융 규모를 상회할 것이라 보고, “부동산만 팔아도 빚은 갚을 수 있어.” 라고 계산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가정이 틀렸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사태가 벌어진 겁니다.
(당시 홈플러스를 인수했던 MBK펀드의 약정기간이 끝나가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합리적인 가설적 추리, 귀추법의 적용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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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 구체적 대안들
대안 1: 말기 투자자 개입권
현재 LP(투자자)는 투자 실행에 관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약정 기간 만료 1년 전부터는 제한적 관여권을 부여하는 것이 어떨까요? 예컨대,
- 일정 금액 이상 투자건에 대해 LP의 사전 승인 필요
- LP 대표로 구성된 투자위원회에 리스크 검토 권한 부여
- “정말 이 가격에 사야 하나요?”라고 질문할 권리의 제도화
이처럼, 말기에는 견제와 균형이 필요합니다.
LP들은 국민의 자산을 운용하는 공적 대리인이니까요.
대안 2: 단계별 투자 승인 프로세스
약정 기간 잔여별 승인 방식
- 2년 이상: 기존 절차 유지
- 1년 이내: LP 자문위원회 의견 청취 의무화
- 6개월 이내: LP 과반수 사전 동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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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불편한 거울
그럼 우리는 다를까요?
만약 내가 그 펀드의 운용역이었다면?
투자 마감이 임박한 상황에서 좋은 딜이 없었다면?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처럼, 우리는 그 순간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하지 않았을까요?
그렇기에, 개인의 윤리에만 의존할 수 없습니다.
시스템으로 막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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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제2의 홈플러스를 막을 수 있을까?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투명성과 견제 장치입니다.
LP들은 “우리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알 권리가 있으며, 특히 말기 상황에서는 더욱 신중한 의사결정이 요구됩니다.
완벽한 해결책은 없을지라도,
“몰랐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제도 설계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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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그리고 우리는 다시 묻게 됩니다
과연, 우리 금융 시스템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그리고, 어떤 설계를 통해 이러한 사태를 예방할 수 있을까요?
그 답을 찾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아닐까요?
2화 부터는 본격적으로 홈플러스 투자구조 해체작업에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