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산고, 독일 국민에게 고함, 민족-상상된 공동체, 진정한 잉글랜드인
서쪽 하늘에서 흘러온 물이 그의 발을 씻어 내리고
아침저녁으로 구름과 노을을 들이마시고 내뿜네
西來天壍濯其足,雲霞日夕吞吐乎其胸
(여산고 중 여산을 의인화하여 표현한 부분)
[전문]
여산은 높도다 아 얼마나 높은가
이백 오십 리의 울창한 숲이 둥지를 틀고 있으며
이천 삼 백 척의 높이까지 가파른 봉우리가 솟아 올라가는 곳
바로 부천원(敷淺原, 여산 일대의 옛 말)을 일컫는다
어찌 작은 언덕들이 감히 여산과 자웅을 겨루겠는가
서쪽 하늘에서 흘러온 물이 그의 발을 씻어 내리고
아침저녁으로 구름과 노을을 들이마시고 내뿜네
휘도는 절벽과 겹겹의 봉우리들은 귀신의 손이 갈라놓은 듯하고,
협곡의 길은 천 길이나 뻗어 홍몽(鴻蒙, 천지개벽)을 열었도다
폭포는 소리 내며 끝없이 쏟아지고
천둥과 번개가 땅을 울려 귀가 멀어지려 하도다
때로 그 사이에 낙엽이 떨어져
곧장 팽려호(*)로 흘러가 붉게 서리 내린 듯 물든다
(* 중국 최대의 담수호인 지금의 포양호)
황금빛 기름과 옥빛 물(뛰어난 인재)은 찾을 수 없고,
돌무더기 숲은 어둡고 깊어 푸른 곰이라 불리도다
태양이 비치는 곳에는 오로봉 굳게 서 있으니
혹자는 별의 정기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라 하도다
(중략: 스승 진관(陳寬)에 대한 내용)
여산의 높이는 오를 수 없도다
구름과 안개 위에 있고, 바람과 비의 관문이로다
위로는 날아오르는 폭포가 있고, 아래로는 깊은 못이 있도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푸르고, 원숭이와 새들은 한가롭도다
나는 이를 따라 꿈속에서 그 사이를 노닐도다
깨어나 사방을 둘러보니 마음이 허전하도다
어떻게 하면 신선을 만나 날개를 빌려,
날아가고 날아와 그대와 함께 머물리오
피히테가 이런 발언을 한 배경은 한마디로 당시 '정체성 없이 흩어진 독일 지역을 하나의 ‘국가’로 묶을 수 있는 개념'은 '언어'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민족국가 개념을 교육하고, 국민들을 단결시켜 현재 처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도구’가 언어였다.
그의 말은 독일의 특수한 역사적 배경을 넘어 일반적 의미에서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그의 표현들을 한번 살펴보자.
언어는 민족의 범위를 규정한다. 민족이라는 구별되는 공동체가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의 정신에 역사적으로 새겨진 “내적경계” 때문인며, 이 ‘내적경계’의 표지가 ‘언어’이다.
기호화 작용을 통해 “표시와 상징의 흐름”을 공유하는 언어 공동체들은 정신 형성을 공유한다. 이는 미래의 공동 목적을 설정할 수 있는 기반이 되며, 이러한 ‘목적의 공유’가 공동체의 결속을 만든다.
‘민족’이란 이러한 경험의 시공간적 구체성과 자기 형성력을 토대로 설정되는 공동체성의 범주이다.
피히테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는 독일 낭만주의 화가로서 민족주의를 적극 지지하며 고취시키는 그림들을 다수 그렸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는 자연의 숭고함과 함께 독일 민족주의를 고취시키는 대표작 중 하나이다.
30년 전쟁(1518-1648) 이후 독일은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약 2세기는 뒤떨어진 상태였다. 바이에른에서는 약 50%, 팔츠에서는 약 70~80퍼센트의 인구가 감소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용병들이 휩쓸고 간 자리는 메뚜기떼 보다 더했다고 한다. 무덤까지 파헤쳐가며 약탈을 했다고 전해지니...
영국이 해양 국가로 도약하고, 영국과 프랑스에서 계몽주의가 꽃을 피우며 이성을 통하여 해방된 인간을 추구하는 동안, 독일인들은 개인이 바꿀 수 없는 끔찍한 현실 속에서 고통받고 있었다.
한마디로 17~18세기 독일은 유럽의 주변국들에 비해 모든 부분에서 “뒤처진 촌구석”이었다.
피히테 시대의 독일은 아직 통일된 민족국가가 아니었다. 19세기 초까지 독일 지역은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라인연방국 등 41개의 분리된 영방국들과 무수한 영지, 자유도시, 교회영지 등을 포한한 넓은 독일어 통용 지역을 의미했고, 이 지역들마저도 내부적으로는 종교, 행정, 법, 재정적 필요에 따라 분리되어 있었다.
피히테는 프랑스혁명의 진보사상이 유럽 전체에 파급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으나, 나폴레옹의 출현은 이를 무산시켰다. 1806년 나폴레옹에게 프로이센은 무참히 패배하였고, 1807년 6월 14일 맺은 강화조약으로 인해 프로이센은 프랑스의 속국과 다름없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피히테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독일 민족의식을 발전시키기 위한 민족의 범위 규정방법을 ‘언어’에서 찾았다. ‘독일 국민에게 고함’은 “독일 민족주의에 대한 최초의 선언”이었다.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 책으로 출판된 이후 19세기 내내 독일인들은 민족주의에 고취되어 이 책을 애독했으며, 독일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1918년 이후 되살아나 다시 한번 독일인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그리고 1918년 이후 독일에서 다시금 추동된 민족주의는 히틀러와 2차 세계대전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국가라고 알고 있는 'Nation'은 원래 민족을 의미하는 용어다. 그래서 민족국가가 Nation-State이다. 우리는 일부 외부로부터 유입은 있지만 대규모 유입 없이 오랜 기간 단일 민족으로 정체성을 유지해 왔고, 현재 구분된 국가들 밖에 볼 수 없기 때문에, 민족 정체성이 약한 17, 18세기 유럽대륙, 특히 독일의 상황을 상상하기 어렵다.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Richard O'Gorman Anderson, 1936-2015)의 ‘상상된 공동체-민족주의(Nationalism)의 기원과 보급에 대한 고찰’에 따르면, 민족은 '구성원들이 서로 알지 못하지만 각자의 마음속에 공동체에 대한 이미지가 존재하는 상상된(imagined) 정치적 공동체'이다.
인쇄술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언어를 활자화할 수 없었기 때문에 민족이라는 개념의 형성이 어려웠다. 그러나 인쇄술과 인쇄 자본주의(print capitalism)가 급격히 발달하면서 유럽은 출판물을 통해 지방의 방언들을 통합할 물리적인 토대를 마련했다.
그리고 언어학을 통해 언어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는 틀이 제공됨으로써 사전 편찬과 언어 연구가 발전했다. 마지막으로 사전편찬학을 통해 언어학에서 정해진 틀 안으로 언어를 정리하고 표준화함으로써 언어 공동체의 경계를 명확히 했다. 이러한 과정들이 결합되어 결국 ‘민족(nation)’이라는 개념이 확립되었으며, 이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하나의 이미지로 형상화되어 무의식적인 공동체 개념이 탄생하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은 왕조주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합스부르크가문, 호엔촐레른 가문, 로마노프 가문, 오스만 가문이 모두 몰락하였다. 그 빈자리는 민족들이 대체하였고, 우리가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으로 부르는 민족들의 연맹이 탄생하였다. 이때부터 정당성을 가진 국제 규범은 ‘민족국가(nation state)’가 되었다.
<로빈슨 크루소>의 저자 대니얼 디포(Daniel Defoe 1659-1731)의 시 '진정한 잉글랜드인(The true-born Englishman)' 중에 잉글랜드인의 순수한 혈통을 풍자한 부분을 살펴보자. 이 시는 18세기 초 잉글랜드에서 큰 인기를 끌어, 디포의 생애 동안 22개 판본에 약 8만 부가 출판되었다고 한다. 디포를 단숨에 유명인으로 만든 작품이다. [원문, 설명]
그리하여 온갖 인종들이 섞이고 또 섞여 저 혼종적인 것. 잉글랜드인이 탄생했다네
열렬한 강간과 길길이 뛰는 욕정 속에 분칠한 브리튼인과 스코트인이 생식하였고-
그렇게 태어난 후손들은 재빨리 굴종하는 법을 익혀
암송아지들에게 씌운 멍에를 로마의 쟁기에 매었는데-
그곳에서 혼혈의 잡종이 나왔지.
이름도. 민족도, 말도, 명성도 없이.
잉글랜드인의 뜨거운 핏줄에는
색슨인과 데인인의 피가 섞여 활기차게 흘렀다지
그동안 번식력이 왕성한 그 딸들은, 그들의 부모마냥
문란한 욕정으로 모든 민족을 받아들였네.
이 메스꺼운 피가 담은 것이 바로
알맞게 추출된 잉글랜드인의 피라네...
참고문헌
- 고대사의 비교언어학적 연구, 강길운, 한국문화사, 2011
- 비교언어학적 어원사전, 강길운, 한국문화사, 2010
- 한국어 계통론, 강길운, 한국문화사, 2012
- 독일국민에게 고함, J. G. 피히테, 황문수 옮김, 범우사, 1998
- 문화를 넘어서, 에드워드 홀, 최효선 역, 한길사, 2000
- 상상된 공동체 - 민족주의의 기원과 보급에 대한 고찰, 베네딕트 앤더슨, 서지원 옮김, 도서출판 길, 2018
- 생각의 지도, 리처드 니스벳, 최인철 옮김, 김영사, 2003
- 위스키 지식사전, 한스 오프링가, 임지연 옮김, (주)도서출판 미래지식, 2022
- 인도철학사, 길희성, 도서출판 동연, 2022
- 한몽사전, 몽골국립대학교 한국학과, 2012
- 고맥락에서 저맥락으로: 두 권의 채식주의자, 이강선, 겨레어문학 제57집, 2016
- 귀양 모티프의 한·중 고전 시가 비교 연구, 이염, 한국시가연구 제48집, 2019
- 기본적 귀인오류와 대응편향의 검증에서 태도귀인 패러다임의 방법론적 오류로 인한 문제점: 태도 판단의 편향된 응답과 낮은 확신, 김태익, 박선웅, 한국심리학회지 Vol. 32 No. 4, 2018
- 다른 언어와의 비교를 통한 한국어 동철대립어 연구, 왕사우, 국어국문학 제185호, 2018
- 디포의 이상 - 개신교 국가, 가정 그리고 잉글랜드의 번영, 김성룡, 장신논단 Vol. 50 No. 3, 2018
- 민족주의 교육 성립에 관한 연구-독일의 사례 피히테의 '독일 국민에게 고함'을 중심으로, 송민규, 신창호, 한국교육학연구 제26권 제2호, 2020
- 변화하는 형사재판 환경에서의 형사증거법의 역할과 과제: 사실 인정자의 편견을 배제하기 위한 형사증거법상 제언, 이성기, 법과 정책연구 통권 36호, 2014
- 성격증거의 허용성에 관한 연구 - 비교법적 고찰을 통한 성격증거법칙의 도입과 허용성의 검토를 중심으로 -, 권영법, 법조 통권 679호, 2013
- 세계시민주의 민족주의, 언어 – 헤르더(J. G. Herder)와 피히테(J. G. Fichte), 임금희, 철학사상문화 제20호, 2015
- 소식의 선과 개오에 대한 문헌고찰, 유지원, 중국학논총 제29집, 2010
- 심주의(沈周, 1427-1509)의 여산고도(廬山高圖) 연구, 송창묵, 서울대학교, 2024
- 영미 상속법상 부동산과 동산의 구별: 연혁과 현황을 중심으로, 박세민, 경북대학교 법학연구원 법학논고 제84집, 2024
- 중국 태산과 여산의 유교문화, 김지영, 남도문화연구 제27집, 2014
- 프랑스 민사소송에서의 증거법에 관한 연구, 안문희, 사법정책연구원, 2017
- 프랑스 형사 증거법상 증거사용의 허용과 배제, 김택수, 비교형사법연구 제26권 제1호, 2024
- 피고인의 범행 기타 행위에 대한 증거의 사용제한에 관한 커먼로 국가 입법례 비교, 김호기, 형사정책연구 제25권 제4호, 2014
- 피고인의 성격증거(Character Evidence)가 사실인정에 미치는 영향, 고민조, 박주용, 한국심리학회지 vol.10, no.3, 2019
- 하이데거의 존재사유에서 언어의 문제, 문동규, 범한철학 제25집, 2002
- 형사절차에 있어 성격증거의 편향성과 증명력-미국 증거법의 논의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 강우예, 비교형사법연구 제23권 제4호, 2022
- ‘Ch(T)igin’ or ‘Chinggis’, Ulziibayar Sodnom, the Kalmyk Scientific Center of the Russian Academy of Sciences, 2018
- Demystifying Source Credibility (SC) in Social Sciences: An Inescapable Construct towards
Effective Communications, Egede Dominion Dominic, Mastura Mahamed, Inyama Victor Uwadiegwu, International journal of academic research in Business & Social Sciences vol 13, issue 12, 2023
- Ethos, Pathos, and Logos: The Benefits of Aristotelian Rhetoric in the Courtroom, Krista C. McCormack, Washington University Jurisprudence Review Volume 7 Issue 1, 2014
- Source Credibility: A Philosophical Analysis, Bonachristus Umeogu, Open Journal of Philosophy Vol.2, No.2, 2012
- Taking a Stand on Taking the Stand: The Effect of a Prior Criminal Record on the Decision to Testify and On Trial Outcomes, Theodore Eisenberg, Valerie P. Hans, CORNELL LAW REVIEW Vol. 94, 2009
- The Effect of A Prior Criminal Record on Juror Decision Making, Emily Haynes, Theses and
Dissertations. 5303, 2023
- The Fundamental Fundamental Attribution Error: Correspondence Bias in Individualist and Collectivist Cultures, Douglas S. Krull, Michelle Hui-Min Loy, Jennifer Lin, Ching-Fu Wang, Suhong Chen, and Xudong Zhao,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25(10), 1999
- The routledge dictionary of latin quotations, Jon R. Stone, Routledge New York and London,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