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아이
2부 나는 누구인가
<섬세한 아이>
섬세한 아이였다. 사소한 것에도 행복과 사랑을 느끼며 금방 감정적으로 충만해졌으니까. 그럼에도 외로움에 밤마다 울었다. 부모님이 주는 사랑을 받았지만 받지 못했다고 느꼈으니까.
나는 둘째로 태어났다. 첫째는 어릴 적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자랐다. 그땐 잘생긴 외모에, 영재를 시킬 정도의 머리와 자연스럽게 따라온 사교성, 그리고 운동까지 전부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시선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시선도 첫째를 향했다. 덕분에 나는 적당한 자유를 얻었지만, 첫째에겐 자연스럽던 그 시선과 관심이 내겐 너무 비쌌다.
잘나려면 압도적으로 잘나라는 말이 있다. 질투조차 하지 못하게. 나는 그런 첫째에게 질투조차 하지 못하고 동경했다. 나의 시선도 첫째를 향했다.
첫째가 하는 건 모두 좋아 보였다. 첫째는 부모님의 기대였고, 일상에 주어진 많은 선택에 있어 부모님의 고민이 늘 함께했다. 그게 참 부러웠다.
나의 선택에도 첫째에게 주는 만큼의 무게로 같이 고민했으면 좋겠는데, 내게 주어진 첫 번째 고민은 부모님에겐 두 번째 선택이었다. 주로 많은 생각보다 첫째가 했던 길을 따라갔다.
하지만 마냥 부러웠던 건 아니다. 어차피 내 부모님이나 첫째의 부모님이나 마찬가지였다. 첫째도 감정적으로 의존하진 못했을 거다. 오히려 관심과 함께 기대와 부담의 무게도 함께 견뎌야 했겠지.
첫째였던 엄마는 늘 그 설움을 알고 있다며 더 챙겼다. 책임과 부담의 무게를 줄여줄 수도 있었겠지만, 나의 엄마는 희생이란 이름 뒤 기대에 무게를 더 실었다.
이제 와 생각하는 건 엄마가 첫째를 챙기는 모습은 과거의 자신을 챙기는 행동이었을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학교에 다녀오면 책가방을 내려놓고, 주방에서 설거지하는 엄마 옆으로 가 오늘 하루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얘기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나를 귀찮아했다. 늘 생기는 고민거리는 엄마에게 늘 별일이 아닌 일이었다.
알아서 하는 사람이 되었다. 내 감정, 내 욕구는 그들에게 늘 피곤한 짐이었다. 부모님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는 눈이 좋지 않다. 우리 집에서 나만 눈이 안 좋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눈이 안 좋은 나를 먼저 생각해 낸 적이 없다. 또 나는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가족들은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저녁 식사에 매운 음식을 보면 서운함을 느꼈다. 미리 덜어두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을 텐데.
엄마는 남에게 배려하며 내게 배려를 가르쳤다. 그러면서 정작 나는 왜 챙겨주지 않았을까. 남의 고통에는 쉽게 눈물을 흘려주면서 나의 외로움엔 무심했다. 엄마에게 나는 누구일까. 그 모순이 의문이 되어 남아있다.
이런 사소한 일상에 무심히 반복되는 행동이 나를 서럽게 하고, 존중받지 못한 감정이 들어 매일 울었다. 감정적으로 의존할 곳이 없었다. 존중받고 싶었다.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바쁘다며 미뤄둔 것들은 큰 이자가 되어 내 마음에 쌓였다.
첫째의 똑똑함에 생각의 물음은 늘 첫째를 향했고, 나의 영혼에서 자라나는 생각은 궁금해하지 않았다. 작은 관심이라도 받아 볼까 애썼던 마음과 행동들이 있었다.
첫째와는 다른 성향이 더 두드러졌다. 정답을 말하기보다 엉뚱한 생각을 답했으며, 진지함보다 유머를 택했고, 내게 신경 써주길 바라는 마음보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했다. 이해받기보다 이해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때 나의 생존 방식이었다.
그렇게 나는 의존하기보다 홀로 선택하며, 사랑에는 자격이 따른다고 생각했다. 사랑받을 수 있는 이상적인 내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잦은 바람에 뿌리는 쉽게 흔들렸으며, 불안을 스스로 다루기 위해 강해져야 했다.
흔들리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