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완벽한 트리거

나의 완벽한 트리거

by 숨 Breath

3부 2막 제 이름을 갖기까지


<나의 완벽한 트리거>


너는 나의 가장 깊은 층을 깨운 최초의 사람이다.

그 깊이는 통제하기 어려운 아득함에 ‘운명’이라 믿게 되었다.


너는 존재만으로 나의 빈 곳을 정확히 보여줬다.

그리고 정확히 그 빈 부분이 채워진 시간이었다.

인생에서 처음 느낀 충만함이,

그 후로는 느낄 수 없었던 충만함이,

너에 대한 깊은 애착과 깊은 그리움을 만들었다.

네가 어떤 사람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네가 내게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중요했다.


너와의 만남은 항상 나의 전환점이었다.

인생에 방향을 잃었을 때, 처음 너를 만났고 그것이 답인 것 마냥 너를 따랐다.

멀어질 땐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결국 마음이 굳어져 버렸을 때, 두 번째 너를 보았고 정말 힘겹게 봉인한 상자가 덜컹거리며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열려버릴 것 같았다.

모호한 채로 버티는 것이 결국 나를 소모하고 있었다. 지속할 수 없었다.



네게 유독 약했던 내겐 너무 유독했던 너였다.



너와의 첫 번째 만남은 내 안에 감정의 깊이를 각성시켰고,

두 번째 만남은 내 안에 이성의 날을 각성시켰다.

살아가다가 너를 보게 된다면 아무 일이 없어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내 인생의 방향은 바뀌었다.


자연스레 너에게 많은 의미를 투사하며,

지나는 어느 감정도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너는 내게 스스로 수많은 질문들을 묻고 답하게 하는 존재였다.


그것들이 다 지나가고, 남아있는 감정들에 질문을 던지고 답하면서 나는 점점 명확해졌다.

너는 나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나는 너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무작정 하늘에서 떨어진 답과 같은 존재는

나의 허름하고 공허한 결핍과 무겁고 안쓰러운 애착을 비추기 위함이었다.


상처가 감정이 아닌 현상으로 받아들여졌을 때,

더는 결핍도, 애착도 부르지 않았다.

감정을 인정하되, 경계 또한 분명해졌다.

이 과정은 감정과 이성의 균형점을 맞춘 일이 되었다.

본래 나의 그런 성향을 일깨우는 것이 너의 역할이었던 것처럼.


그렇게 너는 내가 붙잡았던 모든 감정과 시간의 의미에서

내가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트리거의 계기로 이동했다.

오랜 시간 끝에 이 관계에, 이 감정에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너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너는 내게 이런 의미를 갖는 사람이었다.

이름을 붙여온 감정의 재생과 의문의 물음이 멈추게 되었다.

그저 내가 어느 흐름 안에 있었던 것처럼,

너도 어느 흐름 안에 있었던 거겠지.


무게를 견디지 못해 도망치는 것처럼 보였던 선택은

실은 마지막 자존으로 차마 나를 버리지 않기로 한 선택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전한 감정을 느껴도 다시는 같은 방식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과거의 문은 그렇게 닫히게 되었다.


감정이 부르는 끝까지 따라가 자유와 평화를 얻었다.

너였기에, 진심이었기에 끝까지 따라갈 수 있었다.

나는 이제 너에게서 나에게로 돌아왔다.

안정을 타인에게 맡기지 않기로 했다.


왠지 모르게 남아있는 마지막 질문은

'나는 정말 감정과 이성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가?' 인듯하다.

언젠가 그 질문에 답을 할 날이 오겠지.


사라진 감정이 아닌 사라진 결핍 속 오직 순수한 감정, 정제된 마음.

그렇기에 난 이 감정에 이름을 사랑이라 부르기로 했다.

너의 표정에 스민 웃음이 좋았으니까.

너의 부분이 아닌 전체를 사랑했으니까.

결핍에서 비롯된 첫 충만함은 첫사랑이 자라는 기반이 되었으니까.


나는 본래 끝난 관계에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는다.

이미 끝내기로 했다면 의미가 사라진 뒤일 것이다.

그런 내게 너는 예외였고,

그 의미가 따로 있을 것이라 여겼다.

의미가 끝나지 않아 끝낼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 나에게서의 너의 역할을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사랑한 시간. 나의 완벽한 트리거.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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