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언어로 짓다 2부 | 프롤로그
그를 처음 본 건,
오후의 햇살이
길게 골목을 덮고 있던 날이었다.
어깨 너머로 빛이 흘러내리는 자리,
그는 어딘가 멈춰 있었다.
바람조차 조용히 머무는 그곳-
이상하게도,
그가 서 있는 공간만 공기가 달랐다.
일렁였다.
묘하게, 느리게.
검은 셔츠 깃이 바람에 살짝 젖혀졌고
빛을 받은 눈동자는
놀랍도록 고요했으며
희미하게 웃고 있는 입술엔
어떤 감정도 걸려 있지 않았다.
잘생겼다는 말로는 모자랐다.
무언가 ‘단정하게 정리된 폭풍’ 같았다.
지나치게 정제된 인상이면서도,
단 한 곳-
턱선 아래 어둠처럼 깃든 날카로움이 있었다.
걸음은 조용했고,
어깨는 넓고 반듯했으며,
단추를 두 개쯤 풀어젖힌 셔츠 아래로
단단한 선이 스쳐 보였다.
눈빛은,
정면보다 옆모습에서 더 선명히 읽혔다.
어딘가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무엇을 ‘보고 있다’는 확신을 주는 시선이었다.
그는 웃지 않았지만
웃지 않아서 더 궁금해지는 사람이었다.
대화를 쉽게 꺼내는 법도 몰랐고
가볍게 시선을 돌리는 일도 없었다.
모든 게 침묵처럼 단단하게 정리된 사람.
그리고, 그 침묵 안에서-
유일하게 시선이 멈춘 곳이 있었다.
그 여자였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차갑다’고 말했지만,
그 눈이 머무는 순간만큼은
이상하게도 따뜻했다.
그녀가 있는 쪽으로만
그의 발끝이 자주 향했고,
그녀가 잠시 웃으면
그의 눈빛도, 아주 조금-
늦게, 따라 미소 지었다.
정작 그녀는
그를 알아차리지 못한 듯 보였지만.
그는 모든 걸 아는 사람처럼,
그러나 그녀 앞에서는
모르는 사람처럼 조용히 서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둘 사이에는
이유 없이 피어나는 틈이 있었다.
말이 없는데도
무언가 흐르고 있었다.
분명히, 조용히.
이건,
그 틈 사이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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