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 박물관
킹크로스역 근처로 숙소를 옮기고 난 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같은 방 동생들은 몇 살 많은 나를 큰형이라며 대접해 줬고, 때로는 의지 했다.
승현이는 가끔 스텝의 본분을 잊고 게스트 받는 것도 잊어버린 채 나와 시간을 보내다 사장님께 혼났다.
저녁에 게스트하우스는 북적였다.
대학을 휴학하고 친구와 여행온 게스트, 군대 가기 전 여행온 게스트, 취업에 매번 실패해 기분전환 겸 여행을 왔다는 게스트까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내 여행만큼 재미있었다.
각자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은 준비해 온 저녁거리를 나누며 오늘 자신이 했던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좋은 장소나 맛있는 음식들에 대한 팁을 얻게 되면 다음날 계획에 참고하기도 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선 다른 게스트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저녁식사 후 술자리를 금지했지만 내가 머무는 동안 종종 게스트들끼리 술자리를 가졌다.
승현이가 곤란해질 시간이 된 것 같으면 내가 게스트들을 방으로 올려 보내고 자리를 마무리 했다.
바이올렛문을 지나면 게스트들의 신발이 어지럽게 놓여있는 현관이 나온다.
현관 바로 앞, 계단이 가파르게 이어져 있다.
캐리어를 힘들게 가지고 올라오는 여성 게스트들을 승현이나 부엌에 있던 게스트들이 도와주었다.
내 방은 계단이 끝나는 바로 옆에 있었다.
방안엔 침대가 3개.
창가 쪽은 내가, 벽 쪽은 22살 인호, 그리고 게스트가 떠나고 남는 곳은 승현이가 사용했다.
22살 인호는 영국 축구 클럽팀, 첼시의 오랜 팬이다.
축구 유니폼은 물론이고 축구경기 때 펼칠 태극기까지 가져온 축구 광팬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태극기와 유니폼에 사인을 받아가는 게 목표라고 했다.
여행하는 일주일 내내 축구 경기만 3개를 예약했다고 한다.
한국에선 손흥민 덕분에 축구를 몰라도 토트넘이라는 축구팀을 아는 사람이 많아진 것에 대해 인호는 항상 흥분했다.
첼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버풀등 구단 역사가 오래된 축구팀들은 팬의 역사도 길어, 한국인일지라도 서로 지역감정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모든 운동은 직접 하는 걸 좋아하지, 경기를 보는 취미는 없었다.
인호는 축구 클럽팀의 역사를 말해주었다.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계속 듣게 되었다.
평소 조용한 인호는 축구 이야기만 나오면 이렇게 열정적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명확히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인호가 부러웠다.
인호가 하는 여행이 부러웠다.
나는 아직 그걸 찾지 못했다.
다음에 영국에 다시 오게 되면 좋아하는 축구팀 하나는 정해서 여행을 즐기자고 생각했다.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딱히 계획이 없었던 오늘, 핸드폰 알람을 전부 꺼놓고 늦잠을 잤다.
부엌으로 가보니 승현이가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승현이는 게스트하우스 스텝일과 운동으로도 에너지가 남았는지 운동에 필요한 식품을 파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
카메라를 조금 만질 줄 아는 나는 승현이가 홈페이지에 올릴 제품사진 찍는 것을 도와주었다.
승현이와 인사하고 나도 책 한 권을 꺼내 맞은편에 앉았다.
방에서 자고 있던 인호도 나와 인사했다.
"형 오늘 계획 없으세요?"
인호가 물었다.
"응. 오늘 딱히 계획이 없어. 오늘 비도 많이 오고."
"그럼 혹시 대영박물관 같이 가실래요? 거긴 실내라 괜찮을 것 같은데."
여행 전 대영박물관을 갈지 말지에 대해 고민했었다.
영국에서 다른 나라 문화재나 유물을 보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까?
무엇보다 대영박물관을 가면 납득이 안 되는 제국주의 시절 만행을 인정하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금 고민하는 게 보였는지 인호가 다시 말했다.
"형! 같이 가요! 끝나면 토트넘이라는 BAR에 갈 건데, 오늘 토트넘 경기를 그 BAR에서 볼 거예요!"
내가 느끼는 불편함이 정말 맞는 것인지, 아니면 제국주의 시절 영국에 압도라도 될것인지 직접 가서 느껴보기로 했다.
대영박물관에 도착했다.
같이 관람하는 인호의 시간을 망칠까 염려되어 부정적인 감정은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입구에서 안내 책자를 받았다.
안내 책자에 그려져 있는 약도를 보니 하루동안 전부 돌아볼 수 없을 만큼 규모가 굉장했다.
박물관은 지리적, 문명권 그리고 시대나 테마 중심으로 구분되어 있다.
그중에서 관광객들이나 투어 프로그램을 듣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머물러 있는 곳은 고대 이집트관이다.
나는 고대 그리스, 로마관에 관심 있었다.
대영박물관에는 파르테논의 지붕을 장식하는 대리석 조각이 통째로 전시되어 있다.
영국은 이 대리석 조각을 엘긴 마블(Elgin Marbles)이라 부른다.
19세기 초 영국의 외교관 엘긴이 오스만 제국의 허가를 받아, 조각들을 절단해 영국으로 가져갔기 때문이다. (이때 절단하거나 반출한 유물 수는 약 250여 점이다.)
문제는 오스만 제국의 허가 범위가 단순한 모사였는지, 절취까지 포함이었는지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이에 그리스는 엘긴이 받은 허가는 오스만 제국 점령 당시 발급된 불법 문서이며, 식민지 상황에서의 약탈행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영국은 '당시' 합법적으로 허가를 받았고, 영국 의회 승인으로 소유권이 정당화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본인들의 기술로 인해 유물의 보존 상태가 훌륭하고 많은 관광객이 접근 가능한 환경에서 잘 관리되고 있다며 반환을 거절하고 있다.
그리스의 배우이자 그리스 문화부 장관을 지낸 멜리나 메르쿠리는 "엘긴마블이 아니라 파르테논 마블이다" "파르테논의 조각은 단순한 돌이 아니라, 조국의 영혼이다."라고 주장하며 영국에 반환을 요구했다.
현재 대영박물관은 유물의 반환보다 '일시적 대여'나 '공동전시'방식으로 협의를 늘리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과거에는 단순히 작품이나 유물을 전시하는 데 그쳤다면, 최근엔 어떻게 수집되었는지, 식민주의시절 나라와의 연관성 같은 맥락을 드러내려 노력 중이다.
그것들을 노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유물 반환을 가능하게 할 법률 개정 요구나 윤리적 차원에서의 역사적 책임을 증명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카리아티드는 단순한 조각상이 아니다. 에레크테이온 신전을 받치는 기둥이다.
카리아티드는 대영 박물관에 1개, 나머지 5개는 그리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있다.
카리아티드는 '어디에' 있어야 의미를 갖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