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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서 피어난 부추꽃

여행일기

by 배심온

타들어간다는 말이 실감 나는 여름이었다. 더구나 비까지 자주 내려 살아남을 채소가 없을 듯했다.


야채나 과일값이 너무나 비싸서 양도 조금씩만, 종류도 몇 가지만으로 줄여서 장을 본다. 올여름에는 수박을 사 먹지 않았다.


초여름부터 나기 시작하는 살구랑, 자두. 낑깡이랑 복숭아는 그것으로 식사를 때울 정도로 좋아하는 과일이다. 그렇지만 올여름에는 내 장바구니에 거의 담기지 않았다.


과일에 당분이 많다는 사실과 나이 들수록 단백질을 먹어야 한다는 조언들, 그리고 이제 스스로 나의 일상을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들이 강박처럼 자리 잡으면서 자주 먹지않던 고기를 찾아서 먹게 되었다. 거기에는 비싸진 과일값도 한몫 한 셈이다.


그것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값싸고 맛있는 소고기를 스테이크로 구워 먹던 기억에 푸줏간을 들리지만, 소고기를 그렇게 자주 사 먹을 수는 없는 일이다. 소고기는 민생지원금으로 두 차례 푸짐하게 사 먹는 것으로 끝냈다. 돼지고기도 몇 번 시도하는데 그쳤다.


아침마다 오이와 양파, 부추를 겉절이 하듯이 무쳐서 식탁에 놓는다.


부추도 크게 한 다발짜리가 있고, 유기농이라고 몇 가닥 안 되는 묶음이 있다. 마트의 야채칸 앞에서도 늘 망설인다. 많은걸 사서 오래 먹을 건지, 좋은걸 사서 아껴서 먹을 건지.


한 다발 짜린 양이 너무 많아서 못다 먹고 버리는 게 더 많을 것 같아서 작은 비닐팩의 부추를 장바구니에 담는다. 그리고 한여름 아침 식단으로 자주 등장했다.


하루는 또 시작되고, 아침식사 준비를 위해 냉장고를 열고 부추를 꺼낸다.


거기에 부추꽃이 피어있었다.


냉장고 안에서도 꽃을 피워내다니, 신선한 감동이 밀려온다. 자세히 들여다보며 사진을 찍어둔다.


다정한 하루가 시작된다.


2025. 9. 15.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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