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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세로를 아시나요?

여행일기

by 배심온

2023년 3월 광장동 도로에 얼룩말이 출몰하여 뉴스가 된 적이 있다. 그는 인근 어린이대공원에서 탈출한 두 살배기 얼룩말 세로다.


다행히 세로는 별 불상사 없이 구조되어 다시 제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 1년 넘게 안정을 취하고, 집도 새로 고치느라 일반인들은 세로를 볼 수 없었다.


그의 사연은 구구하다.


새로의 엄마 아빠는 멀리 아프리카에서 왔고, 세로는 한국에서 태어났다. 단란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세로가 두 살 때, 아빠와 엄마 모두를 6개월 사이로 잃고 말았다. 그 후부터 세로는 힘든 시간을 보냈을 거다. 방사장에서 혼자 지내야 하니 얼마나 쓸쓸했을까. 더구나 성체가 된 세로는 발정기도 있었을 테니, 행동의 변화가 예측되는 바다.


탈출하기 전 세로가 먹이를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사육사 누나에게 장난을 걸기도 하면서 홍당무를 받아 와작와작 씹어먹는 모습이 귀엽기만 했다. 바닥에 누워 모레에 몸을 비비는 평온한 모습이었다.


세로가 사춘기에 접어들었다는 말은 엄청나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든다. 세로의 성정이 난폭할 거라는 추축을 하게 한다.


반항, 일탈, 가출


그러나 세로에게는 학업 스트레스나 미래에 대한 비전을 만들어야 하는 청소년 스트레스가 없다. 단지 성체로 성장해 가는 동물일 뿐이다.


방사장 문이 열려있거나 높이 뛰기를 해 담장을 넘을 수 있으면 세로는 방사장을 벗어나는 거다. 세로가 어린이대공원의 방사장을 본인의 집으로 알고, 외출을 자제하기를 기대하는 게 오히려 무리가 아닐까.


세로는 원래 무리를 지어 초원을 달리던 녀석이다. 본능적으로 동물원 밖을 그리워하지 않았겠는가.


이웃과의 문제가 있었나 보다.

울타리를 함께 쓰는 캥거루 가족에게 아는 척을 하고 장난을 걸기도 했지만, 캥거루 가족의 공격적인 대응에 세로는 또 힘들었나 보다.


우리는 초원의 동물을 우리에 가둬놓고, 구경하고 지켜보면서 추측하고 가늠할 뿐이다.


세로의 방사장은 보수와 단장을 마치고 새롭게 방문객을 맞게 되었다. 담장은 이중으로 높아지고 마당에는 이것저것 놀잇감이 많이 생겼다. 무엇보다 세로는 여자친구와 함께였다.


그녀는 광주 아치 동물원에서 세로 곁으로 이주를 한 코코다. 그녀는 6개월도 채 머물지 못하고 폐사했다.


다시 세로의 동반자로 당나귀를 들였다.


말과 얼룩말과 당나귀 ᆢᆢ


사실 얼룩말은 말보다는 당나귀에 더 가까운 사이라고 한다.

2013년 피렌체에서 수컷 얼룩말과 암컷 당나귀 사이에서 입포(Ippo)라는 변종이 태어나 화제가 되었고,. 2016년에는 중국에서 암컷 얼룩말과 수컷 당나귀 사이에서 zedonk 또는 zonkey라는 변종이 탄생하여 또 한 번 뉴스가 되었다.


의도적인 일은 아니고, 흔한 일도 아니지만, 이렇게 얼룩말과 당나귀 사이에서 태어난 새로운 생명체의 모습은 낯설 수밖에 없다. 우리가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상관없이 존재하게 된 이들의 모습은 생소하고 애매하다. 다리는 양말을 신은 듯 가로줄무늬가 선명하고, 몸통에도 띄엄띄엄 줄무늬가 있다가 없다가, 생기다 만 듯하다.


세로의 친구가 될만한 얼룩말을 구할 수 없어서 당나귀를 선택했을 거라 생각된다. 문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세로가 당나귀를 괴롭혀서 당분간 둘을 떼어놓기로 했단다. 세로를 거세한 후 다시 합가를 시키는 방법을 고민 중이란다.


세로의 잔혹한 시간이다.


그를 초원으로 돌려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동물원을 없애야 하지 않겠는가.


2025. 7. 6.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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