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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술

시칠리아 여행

by 배심온

둘 만의 여행에서도 가끔 자유시간이 필요하다.


오늘 동료는 마시모 극장 투어를 하고, 나는 귀하디 귀한 자유시간 40분을 얻는다.

극장 카페에서 동료를 기다리기로 하고, 에스프레소 한잔을 시킨다. 직원은 왜 한잔만 시키느냐, 너는 안 먹고 얘만 혼자 마셔서 되겠느냐며 동료를 걱정한다. 유쾌한 참견이고 애정 넘치는 염려고 여유로운 유머다.


음악 교사 출신의 동료는 팔레르모의 마시모 극장 투어를 혼자 하고, 대신 나는 몬레알레 대성당의 수도원 정원을 혼자서 걸었다.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며 함께 또 같이 일정을 소화하는 게 서로의 여행에 도움이 된다.


마!

딸이 힘주어 엄마를 부르면 나는 긴장한다.


"엄마, 그런 말 하면 안 돼."

"엄마, 그렇게 하면 안 돼."


사사건건 나는 딸들의 지적을 받으며 못된 나의 행동과 말버릇을 새롭게 고쳐나가고 있다. 가끔 버릇없이 엄마를 닦달한다 싶기도 하지만, 그들이 느끼는 거면 문제가 있다는 거고, 문제가 있으면 고쳐야 하는 것이기에 나는 기꺼이 아이들의 가르침을 따른다.


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어떻게 남의 마음을 해칠 수 있는지를 딸들에게 배우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자식이니 그들의 말에 따를 수밖에.


그런데 진심으로 잘못되었다는 인식이 없으면 그 말버릇과 행동거지는 바뀌지 않으니 결국 나의 생각을 바꿔야 변화가 가능해진다. 나는 아이들을 통해 새로운 교육을 받는 셈이다.


독수리는 40년을 산 후 자신의 모든 발톱과 부리와 날개를 다 뽑아내고, 새로 돋아나는 것으로 나머지 생을 산다고 하는데, 나도 이제 환갑을 넘었으니 새로운 배움이 필요한 때다. 우리 딸들이 그 가르침을 주고 있으니 고맙고 감사할 일이다.


여행은 새로운 배움을 내면화할 수 있는 좋은 시간들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여행을 할 때,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해서는 안 되는 행동들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매일매일 느끼고 있다.


불확실한 것에 대해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는다. 이미 지난 일에 대해서는 되뇌지 않는다. 의견이 다를 때는 두말하지 않고 상대의 의견을 따른다. 상대의 취향을 존중한다.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는다. 지적, 평가, 비교, 충고는 가능한 삼간다 등등.


이렇게까지 예민하게 신경 쓰다 보면 여행이 피곤해질 수도 있는데, 또 그렇지만은 않다는 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신기하고 다행스럽다.

저녁이 되면 같이 장을 봐서 식사준비를 함께하고, 상대의 인기척을 위안 삼아 하룻밤 잠을 청한다. 혼자였으면 무서웠을 낯선 집에서 누군가가 있다는 안도감으로 편안한 잠을 청할 수 있으니, 낮동안 거슬렸던 순간들은 또 슬며시 사그라진다.


10년 전이라면 화를 냈을 법도 한 상황이 별일 없이 용납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조금은 더 너그러워진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좀 더 능청스러워지고, 조금 더 무신경해지고, 무엇보다도 뭐든 금방 잊어버리는 건망증이 큰 역할을 하는 것도 같다. 우리 나이도 이제 60이 넘었으니.


시칠리아의 팔레르모 숙소는 팔라체 거리 전통시장 안에 있어서 집에서도 시장 사람들 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 닷새째 아침저녁으로 드나들다 보니 골목입구의 가게 점원들과는 일부러 불러 세워 인사를 나눈다. 아침 일찍 장사를 시작하여 오후 네다섯 시에는 좌판을 거둬들인다. 목이 쉬도록 소리치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우리 이웃과 다를 바 없다.


옆 테이블 음식에 손이 갈까 염려될 만큼 가까이 가까이 붙어 앉아서, 먹물 파스타와 홍합찜. 그리고 아란치니로 점심을 해결하고, 잠시 숙소에 들어와 휴식을 취한다.


시장 사람들 장사하는 소리와 동네 아줌마들 떠드는 소리가 경쾌하다. 아마도 욕지거리도, 아이를 닦달하는 잔소리도, 서로를 탓하는 부부의 다툼도 그 소리 안에 담겨있을 것이다.


언어가 내용 없이 소리로만 내 감각에 와닿는다. 편안하다.


2025.3.14 오후 4 : 30

오호, 퇴근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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