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
"왜 화를 내고 그래요?"
이런 말을 들었던 장면이 생각난다.
그때 나의 대답은
"저 화내는 게 아니고 말하는 거거든요" 또는
"화가 많이 나네요"였다.
전자는 굳이 화를 내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변명을 한 경우다. 후자는 정말 화가 나서 불합리한 점을 따지고 든 것이다. 아무튼 화를 낸 것이다.
자기감정을 드러내고, 화를 내는 것은 미성숙한 행동이다. 누군가는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고 했는데, 화를 내면 지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왜 선생님들은 화를 안내요?"라고 따진 적도 있다. 그 뒤에 따라온 말은 "그러니까 그가 그런 행동을 계속하는 거예요. 아무도 화를 안 내니"였다.
본인이 화를 낸 것을 정당화할 뿐 아니라 같이 화를 내라고 강요까지 한 것이다.
그럴 수 있다. 불합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게 현실이니. 그러나 나 자신에게 되묻는다. 과연 분노해야 할 일에 분노하였냐고. 늘 사소한 일에만 그러했던 건 아닌지.
그리고 왜 나는 화를 자주 내는 사람이 되었는지를 묻는다. 솔직히 나이 육십에 엄마 탓을 하고 싶다. 나는 그렇게 태어났거나, 그렇게 키워진 거라고.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수녀님의 강의로 듣는 성경 중 요나기에 나오는 말이다.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을 지내고 세상 밖으로 뱉어진 요나 이야기는 모처럼 나의 관심을 끈다.
뙤약볕을 가려주던 아주까리가 하루 만에 시들자 화를 내는 요나에게 "아주까리 때문에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라고 하느님은 묻는다. 그리고 아주까리 하나는 동정하면서 십이만 명의 이방인은 동정하지 않는 요나를 꾸짖는다.
불쑥 화가 나면 나에게 물어야 할 말이다. 사소한 것에 분노하는 나에게 묻는다.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2025. 10.21. 새벽 낙산호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