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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와 핸드폰

여행일기

by 배심온

목마른 여름을 버텨냈는데, 지금 24일째 비가 내리고 있다. 강릉에.

창밖의 들판은 황금색이지만, 그 속은 어떨지 ᆢᆢ


TV 화면을 통해 그 속을 들여다본다. 다 여문 벼알곡에는 싹이 돋아나 있고, 배추는 녹아내렸다. 수확이 불가능하다.


이 지점에서 점심 메뉴로 배추를 넣은 홍합 칼국수가 좋겠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타인은 남이다.


하늘이네 장칼국수집은 동네 맛집이다. 따뜻한 장판 위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주인장이 끓여주시는 장칼국수를 먹다 보면 어릴 적 외갓집에 온 기분이 든다.


집 장칼국수는 된장과 멸치가루, 콩나물이 들어간 게 특이하다. 양도 푸짐하여 배불리 먹을 수 있다.


특이한 점은 또 있다.

음식을 남기면 벌금을 내야 하기에, 밥통의 밥은 칼국수를 다 먹은 후에 담아 가도록 큰 글씨로 공지하고 있다.


식사 중 핸드폰 사용도 금물이다. 밖에서 대기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고 하는데, 음식에 집중하기를 원하는 주인장의 바람이 반영된 조치라고 생각된다. 밥상을 차리는 사람은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다. 정성껏 차린 음식을 앞에 놓고 핸드폰 하는 걸 보면 심기가 불편해진다.


작고 허름한 식당 한켠에는 감사패가 놓여있다. 이곳에 온 사람들은 배불리 먹기를 원한다는 주인장은 저렴한 칼국수 값에서 또 일부를 떼어 기부를 하고 있다.


7시에 마지막 주문을 받고 칼국수를 낸 후, 주인장은 주방과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 앉는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맥주 한 병을 꺼내 귤 몇 알을 안주 삼아 주방에서의 갈증을 달랜다.


그가 주방에서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그리고 자신의 일에 얼마나 큰 자부심을 느끼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런 만큼 이 작은 식당은 그의 왕국이다.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지적을 당한다. 중년의 신사분에게도 가차 없이 핸드폰을 하지 말라는 경고가 날아든다.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는데,

핸드폰 하는 게 누구한테 피해를 주느냐.

핸드폰 한다고 식사시간이 얼마나 더 걸린다고.


기분이 상한 손님은 젓가락을 내려놓은 채 주인장에게 항변해 보지만, 주인은 자신의 규칙을 철회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


국가가 나서든지 해야겠다.

어린아이에게는 핸드폰을 금지시키고, 식사 중에는 핸드폰을 집어넣으라고.


식탁 위의 평화를 위하여


2025.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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