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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여행의 맛

여행일기

by 배심온

여행 중에는 더 잘 먹고, 더 잘 잔다.


많이 움직이니까 많이 먹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고, 여행 중에 아프면 안 된다는 자기 보호본능 때문 일수도 있다. 여럿이 같이 먹으면 더 맛있기도 하다. 든든히 먹고 많이 움직였으니 밤이 되면 잠도 잘 온다.


비단 이런 이유 만은 아니다. 이탈리아에는 질 좋은 식자재가 넘쳐나서 요리에 별 흥미가 없던 사람도 부엌에 들어가게 된다. 과일과 야채는 종류도 다양하고, 크고 신선한 데다가 가격까지 싸니, 그야말로 안 먹으면 손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소고기는 돼지고기 보다도 싸고, 냄새도 없고 부드럽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우선 물이 필요하니 가까운 마트부터 검색하여 장을 보러 나선다. 길게는 8일까지도 한 숙소에 머물다 보면, 장 보는 양도 많아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장보기에 동참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점심도 도시락을 싸게 된다. 외식을 하면 주로 파스타나 피자 또는 샐러드, 라자냐 정도인데, 장기 여행자가 매번 특별한 것을 사 먹을 수도 없고, 자릿세까지 붙는 가격도 만만치 않으니 도시락이 낫겠다는 결론에 이른다.


도시락의 메뉴는 그때그때 다르다. 삶은 계란과 사과는 필수고, 빵은 삶은 감자로 대체되기도 하고, 홍당무와 오이가 등장하기도 한다. 가끔은 참치를 고추장에 볶아서 빵이나 감자에 곁들여 먹기도 하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우리가 준비한 도시락이 맛있었던 건 그걸 먹은 장소 때문이기도 하다. 가능한 사람들의 왕래가 적으면서도 멋진 전망을 확보하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그늘에 앉아 도시락을 먹는 것이다.


튀니지 두가의 바람과 장미정원, 아그리젠토, 빌라데스빌, 피사의 잔디밭, 친퀘테레 바닷가, 폼페이 유적지, 보르게세 미술관 정원, 시에나 캄포광장, 심지어는 트레비 분수까지. 이런 명소를 즐기며 도시락을 먹었으니, 맛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는 트레비 분수 광장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곳에 작은 성당이 있다. 계단 몇 개만 올라서면 네 명이 충분히 앉을 만한 공간을 찾을 수 있고, 이미 몇몇 사람들이 그곳에서 샌드위치니 젤라토를 즐기고 있다. 잘못 들어왔다는 듯 빠져나가기 바쁜 인파들을 바라보며, 트레비 분수를 즐기면서 여유 있는 식사를 하는 것이다. 후식으로 어느 집 젤라토를 먹을까 검색해 본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20년 전 아이들과 함께 사 먹었던 가게의 젤라토가 맛있을지, 왼쪽 편 베네통 매장 옆집 젤라토가 맛있을지 즐거운 고민을 한다.


복잡함 속에서도 틈새를 찾고, 우리 만의 리듬으로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게 자유여행의 맛이다.


트레비 분수는 판테온과 나보나 광장으로 이어진다.


2025. 5. 29 오전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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