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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종군길

여행일기

by 배심온

존경하는 사람이 생겼다. 이순신이 그다.

하동과 구례 여행길에 보게 된 ‘백의종군길’이라는 표시 덕분이다. 구례군 토지면 운조루길 주변 어디론가를 걸어서 도원수 권율을 찾아갔을 거라는 상상을 하는 순간, 그를 다시 알고 싶어졌다.


백의종군에 대한 설명을 인용한다.

‘1597년 2월 26일 한산도에서 체포되어 3월 4일 한성 의금부에 투옥된 이순신은 28일간의 옥살이 후 4월 1일에 풀려난다. 이후 초계(경남 합천 율곡)에 있는 도원수 권율의 진영에서 백의종군을 하게 된다. 이순신의 백의종군은 4월 1일부터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는 8월 3일까지 120일 동안 조선의 운명을 걱정하며 조선 수군 재건계획을 세워 칠천량해전의 패배를 딛고 조선의 운명을 바꿀 명량대첩으로 이어진다.’


광화문 광장에 우뚝 서 있는 그의 동상을 보면서도, 수많은 아이들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그를 꼽아도, 그의 일생의 연보를 보고도 이런 마음의 흔들림은 없었다. 위대한 위인이니까 그려려니 당연시했었다. 그가 백의종군했던 길 위에 서서야 나는 비로소 인간 이순신이 궁금해진 것이다.


옥살이로 몸과 마음을 다치고, 모친상까지 맞게 되고 모든 지위를 빼앗기고도 다시 전장으로 나아가는 그의 모습. 터덜터덜 걸었을까,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을까, 굴욕감은 없었을까. 나라를 구할 수는 있다고 자신한 걸까, 옷가지와 신발은 어떤 차림이었을까.


역사적인 고증을 거쳐 ‘백의종군길’을 만들 생각을 한 사람들에게 칭찬을 보내고 싶다.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도까지 각 지역 관계자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했을 과정을 생각하면 흐뭇해진다. 그 길을 걸으면서 사람들은 위인전으로는 전달되지 못할 것들을 몸으로 느낄 수 있을 거다. 나는 전직 교사로서 직업의식이 발동하는지, 학생들에게 좋은 체험 프로그램이 될 거라는 흥분과 함께, 어느새 이순신 장군에게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질문지를 만들고 있다.


그는 적국인 일본도 인정하고, 세계 해전사에도 기록되는 훌륭한 해군 제독이다. 장수로서의 능력뿐만 아니라 목민관으로서의 청렴함, 자식과 조카들을 돌보는 부모로서의 따뜻함도 함께 가졌다. 류성룡은 이순신의 외모가 장수로서 위엄 있는 모습이 아니라 글을 읽는 단아한 선비 같다고 평했다고 한다. 아마도 문무를 겸비한 사람인 듯하다. 그의 이동 경로를 세세히 알 수 있고,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들여다볼 수 있는 건 그의 메모 습관 때문이다. <난중일기>가 있으니, 백의종군길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고, 그의 메모 덕분에 우리는 장군 이순신뿐만 아니라 인간 이순신도 알 수 있다.


하동과 구례 여행 끝에 지인으로부터 ‘인문열차버스’라는 프로그램을 소개받고, 충청권에 지원을 했다. 지원서를 제출한 지 일주일 만에 선정되었다는 문자를 오늘 받았다. 충청권 인문버스의 주요 프로그램에는 ‘인간 이순신의 삶’ 주제 인문강연과 현충사 탐방이 있었고 나는 지원서에 ‘백의종군길’ 이야기를 썼다. 그것이 내가 선정된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아산을 비롯한 충청도에서 이순신의 흔적을 따라가 볼 참이다.


길은 길로 이어지고 새로운 길을 연다.

2025.12.7.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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