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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과 주문진 사이

여행일기

by 배심온

양미리는 작지만 뱀장어를 닮았다.


특이하게도 새끼에 꿰어서 말린다. 한꺼번에 많이 잡히고, 생긴 게 가늘고 길어서 새끼에 꿰어서 말리고 유통시키는 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일 거라 생각된다. 손가락 한두 개 정도의 굵기에 손바닥 한 뼘 반 정도의 길이로 그 맛은 기름기가 없고 담백하다.


꽁치는 등 푸른 생선으로 고등어와 비슷한 모양과 색상을 띠지만 훨씬 가늘고 주둥이와 꼬리가 뾰족하게 생겼다. 맛도 고등어와 비슷하지만 덜 비리고 고소하다.


양미리는 몸통이 가늘고 길어서 고니나 알이 몸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걸 먹지 않는다면 사실 양미리는 먹을게 별로 없다. 양미리의 고니는 다른 생선보다 훨씬 부드럽고 깨끗한 단맛이 난다.


많은 생선 중 양미리와 꽁치를 비교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비슷한가? 헷갈리나?


지금은 주문진이 강릉시에 편입되었지만 20여 년 전만 해도 주문진은 명주군 내의 읍으로 강릉과는 별도의 행정구역이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주문진에서 강릉으로 유학하였다. 서울도 아니고 외국으로도 아니지만, 읍에서 시로, 여상이 아닌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하였고, 그 덕분에 대학까지 갈 수 있었다. 강릉시 주변의 이곳저곳 시골에서 모여든 친구들과 어울려 3년 여고 시절을 보냈다.


한 번은 친구가 내가 사는 주문진으로 놀러 왔다. 친구의 요구는 '꽁치를 먹고 싶다'였다. 학생이었는데도 집에서 밥을 지어줬을까? 아버지가 고기 잡는 어부가 아니었고, 내가 식사 준비를 도맡은 경우도 아니고, 어디 책에서 꽁치와 양미리를 본 적도 없는지라 나 는 양미리를 사서 구워 주었다. 친구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했다는 것을 안건 나중에서다.


주문진은 강릉에서 7번 국도를 따라 차로 20분 정도 북쪽으로 이동해야 하고, 시내버스를 타게 되면 한 시간 가까이 걸린다. 그 위쪽으로 현남, 현북, 양양, 속초, 고성, 거진 등 소도시가 자리 잡고 있다. 양양고속도로와 KTX가 놓이면서 강릉이나 속초, 고성을 찾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아졌다. 주문진은 잠깐 들러 식사 한 끼 해결하고 지나쳐갈 뿐, 머물지는 않는 어촌 마을이 되었다. 그래도 축항에는 배가 가득하고, 고기 잡는 배들은 주문진 항에 정박해 있다.

오징어가 풍년일 때, 한겨울 명태 철일 때, 어린아이들도 손을 보태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풍요로운 바다였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어떤 때는 주문진이라고, 또 어떤 때는 강릉이라고 말한다. 보통, 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을 때는 강릉이라고 한 것 같다. 그 어떤 때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강릉 경포대는 커피를 마시러 가고, 주문진은 건어물이나 횟감을 사러 가는 만큼 두 도시는 차이가 있다.


영화 ‘강릉’은 누아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많은 설명도 없이 남자들이 나와서 칼부림을 한다. 경포 호수와 동해 바다를 무한대로 펼쳐놓고 세트장 같은 거대한 호텔을 배경으로 폭력이 난무한다. 선교장 앞마당에서도 살인은 계속된다. 강릉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영화 속 장면이 그렇다는 거다.


영화 ‘나는 보리’는 주문진의 풍광을 잘 보여준다.

바닷가 언덕 위의 작은 집. 네 가족 중 유일하게 듣고 말할 수 있는 소녀는 가족 안에서 소외감을 느낀다. 강릉 단오에 나들이를 나왔다가 잠깐 동생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통해 자신이 듣고 말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잡아온 물고기를 마당의 빨랫줄에 거는 아빠의 모습, 더운 여름날 바람에 날리는 모기장, 귀가 먹게 될까 하고 세숫대야 물속에 얼굴을 담그는 소녀. 골목을 드나들 때마다 만나게 되는 동네 할머니들.

영화는 잔잔하면서 따뜻하지만, 나에게는 너무 조용하고 하얗게 비어있는 느낌이 든다.


두 영화는 어느 지점에서 닮아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고향을 찾는다고들 한다. 나는 직업 생활을 마치고 노후에 주문진이나 강릉을 찾아 정착할지, 노부모님이 안 계시면 더 이상 그곳을 찾지 않게 될지 알 수 없다.

다만, 지금은 두세 달에 한 번씩이라도 바다를 보고서야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


꽁치, 양미리, 도루묵이 제 철일 때 그곳으로 달려가 바다를 보고자 한다.


2023.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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