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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희졔졔 Dec 21. 2021

미국에서 한식 사랑

내가 집에서 이것까지 만든다고?




희희와 졔졔를 가장 들뜨게 하는 것 중 하나는 맛있는 한국 음식이다. 한국에 살 때는 몰랐던 우리의 한식 사랑. 이 전에는 몰랐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한식에 열광하는 사람들인지. 한때는 우리도 집에서 파스타 해 먹고, 외식으로 이탈리안 식당 가고, 여행 가면 현지 음식만 먹고 그랬다고!



하지만 희희도 졔졔도 미국에서 살기 시작한 뒤로는 집에서도 외식을 할 때도 한식을 찾는다. 심지어 다른 도시에 가면 그 지역 맛집보다 한식 맛집을 먼저 찾는다. LA에 가면 감자탕을 먹어줘야 하고 뉴욕에서는 물회를 먹어야만 한다.


분명 어디를 여행하든 현지 음식을 즐겨 먹던 우리인데, 지금은 어쩌다가 눈에 불을 켜고 한식을 찾게 된 걸까? 아마도 그건 이곳, 미국이 더 이상 우리에게 여행지가 아닌 삶의 터전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미국도 잠깐 놀러 온 곳이었다면 우리는 오늘도 스테이크 맛집을 찾고 있었을지 모른다. 지금은 안 땡기는 뉴욕 티본스테이크 맛집 이런 거..



물론 외식뿐만이 아니다. 한국이었다면 절대 집에서 만들어 먹지 않았을 음식을 여기에서는 일상으로 만든다. 미국 생활 1년 차에 먹고 싶은 한국 음식을 어디에서 파는지 몰라 시작했던 한식 만들기가, 지금은 열심히 찾아먹어도 결국 밖에서 사 먹는 한식보다 내 집 밥이 더 맛있어서 계속해 먹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미국 생활 n 년 차인 희희졔졔가 1년 차 햇병아리였던 시절에 집에서 만들어 본 한국 음식 이야기, '내가 이것까지 만든다고?' 시리즈를 소개해 본다.





희희의 찹쌀떡


희희는 자타 공인 떡순이이다. 가족들은 맛있는 떡이 들어오면 내 생각을 하고, 친구들은 집들이 선물로 떡볶이를 사 왔다. 이사를 가면 그 동네 떡 맛집부터 검색한다. 그런 나에게 미국 남부에서의 첫해는 너무 가혹했다. 한인 마트라고는 동네 슈퍼 크기 하나에, 그나마 파는 떡은 심각하게 맛이 없었다.


나는 오늘 만든 떡, 그것도 영양 찹쌀떡이 너무 먹고 싶었다. 떡집과 방앗간을 아무리 뒤져도 아무 정보가 나오지 않아서 결국 직접 만들어 먹기로 했다. 문제는 떡을 만들 도구도, 내가 원하는 맛과 식감의 떡이 나올 재료도 마땅치 않았던 것. 그래서 그랬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그저 유튜브 여기저기에서 영상을 보고는 생찹쌀을 불리는 것부터 시작한 것이다.


찹쌀을 깨끗이 씻어 반나절을 꼬박 불리고, 식탁에 얇게 깔아 다시 이틀 동안 말렸다. (아직도 왜 불린 걸 다시 말려야 했는지는 모른다.) 찹쌀이 골고루 잘 말라야 해서 중간중간 뒤집어주면서, 찹쌀 한 톨이라도 바닥에 떨어질까 봐 성심성의껏 말렸다. 다 마른 찹쌀은 15불 주고 산 저성능 믹서기로 3시간 동안 열심히 갈았다. 예상치 못한 고생 끝에 드디어 한국에서 보던 떡 만드는 찹쌀가루 같은 걸 만들어낸 것! 그 믹서기는 얼음도 제대로 못 갈던 건데, 그걸로 찹쌀가루를 만든 내가 너무 기특했다.



며칠에 걸쳐 준비한 재료로는 예상보다 더 맛있는 찹쌀떡을 구울 수 있었다. 찜기도 없어서 오븐으로 만든 떡은 정말 맛있었다. 완성한 찹쌀떡을 행복하게 먹고 냉동실에 얼려두며 뿌듯해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모르는 게 많아서 가능했던 시도였다.





졔졔의 무말랭이


졔졔에게도 만만치 않은 기억이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에 온 지 몇 달 되지 않았던 때, 한국 밑반찬을 어디서 사야 하는지도 잘 몰랐을 때의 일이다. 갑자기 맛있는 무말랭이가 너무너무 먹고 싶었던 것이다.


원래도 집순이인 졔졔는 미국이 락다운에 들어가며 더 격하게 집순이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졔졔에겐 무말랭이쯤은 집에서 만들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샘솟았다. 한국이었다면 최소한 마트에서 말린 무라도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때의 졔졔는 아무것도 몰랐고 아무것도 없었다. 희희가 그랬듯, 졔제도 그래서 그랬다. 생 무부터 사 온 것이다..



졔졔는 사 온 무를 일정한 크기로 잘라서, 또 일정한 간격으로 펼쳤다. 그래야 골고루 잘 마른단다. 2-3일 동안 여러 번 뒤집어주며 말려야 한다. 무 조각 하나하나가 어찌나 소중하던지, 마른 무가 바람에 날아갈까 봐 노심초사했다. 지금의 졔졔가 그때의 졔졔를 지켜본다면 '쟤 지금 뭐 하나'싶을 그런 모습으로.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말린 무를 물에 살짝 불려 양념에 무쳤는데, 글쎄 완성된 무말랭이가 너무 맛있는 게 아닌가! 집에서 이런 것도 만들 수 있다니! 졔졔는 정말 감격했다. 고생한 시간에 비해 막상 무말랭이는 한 줌밖에 나오지 않아서 충격적이었지만 아직도 첫 무말랭이 무침을 생각하면 뿌듯하다.






다시 생각해도 웃음이 나오는 고생 범벅의 찹쌀떡과 무말랭이 에피소드이지만, 이제는 남의 레시피 없이도 만들 수 있는 한국 음식들이 셀 수 없이 많다. 심지어는 찹쌀떡도 무말랭이도 더 쉽게 만들 수 있게 되었고.


미국에서의 첫 계절, 어디를 가야 맛있는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어디에서 어떤 재료를 사야 하는지도 잘 모를 때의 일이다. 어설픈 요리 실력과 충분하지 않은 재료들로 어떻게든 한국 음식을 만들어내려고 했던 그때의 우리가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돌아보면 한국 음식은 입맛에 맞는 음식이기만 했던 게 아니라,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애써 버텨야 했던 우리에게 편안함과 익숙함을 주는 소중한 존재였다.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한식을 찾고 만들었나 보다.


오늘도 희희는 순두부찌개를, 졔졔는 감자전을 만들어 먹으며 한 주를 마무리한다. 내일도 남의 나라에서 열심히 살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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