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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을 깨고 걸어가는 예설이

1박 2일 여름성경학교가 알려준 성장의 의미

by 긍정미소


예설이가 다니는 교회에서 여름성경학교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이번 여름성경학교는 1박 2일로 진행되는 것이었으며, 강화도에 있는 리조트로 가는 여름성경학교였다. 고민스러웠다.

예설이를 처가집에서 봐줄 때도 잠잘 때가 되면 울고불고 난리가 나서 늦은 저녁에 부랴부랴 데리러 가야 했었다. 그런 예설이를 '1박 2일로 여름성경학교를 보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들기 시작했다. 부정적 생각들로 가득했다. 선생님들의 통제를 제대로 따르지 않아서 발생할 수 있는 피해와 아이의 위험 등을 고려할 때는 안 보내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설이에게 물어보았다.


나 : "예설아, 여름성경학교를 1박 2일로 진행한대. 그러면 하룻밤을 자고 와야 하는 건데, 예설이가 하룻밤 엄마, 아빠랑 떨어져서 잘 수 있겠어?"

예설 : "응, 나 이제 2학년이야. 친구들하고 선생님하고 같이 잘 수 있어."

나 : "근데 저번에 할머니 집에 가서는 못 자겠다고 해서 저녁에 아빠가 데리러 갔잖아."

예설 : "그때는 어렸지."


생각 외로 당돌한 대답이 돌아왔다.

예설이의 대답으로 나의 부정적 생각의 회로가 긍정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그래, 일단 신청하고 가기 전에 다시 한 번 마음을 확인해 보자. 그리고 정 안 되면 밤에 데리러 가면 되지 뭐' 라고 생각하고 과감히 신청서를 제출했다.

신청서를 제출하면서도 내심 '이래도 되는 것인가?'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언제까지고 감싸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교회에서는 예설이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고, 선생님들께서도 오히려 예설이를 편견 없이 대해주고 계시기 때문에 믿고 보낼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최후의 수단으로 예설이를 데리러 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해두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예설이가 여름성경학교를 떠나는 날이 되었다.


전날 예설이에게 다시 한 번 물어보았다.


나 : "예설아, 정말 하룻밤 자고 올 수 있겠어?"

예설 : "그렇다니까, 그만 물어봐. 나 짐 싸야 돼."


(이 대화가 얼핏 보기에는 일반 아이들과의 대화로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예설이는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다. 이런 대화를 할 때마다 나 조차도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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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설이는 씩씩하게 짐을 잔뜩 싸고서는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하는 길에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하고 예설이는 1박 2일의 여름성경학교를 떠났다.

회사에서 근무하는 시간 동안 교회학교 선생님들로부터 단체방이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사진을 계속해서 공유해 주셨다. 예설이가 잘 지내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다행히도 선생님들의 통제를 잘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선생님 한 분이 전담으로 맡아주시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예설이가 간다는 것 자체에서 부담감을 많이 느끼셨을 텐데 잘 돌봐주시고 계시는 것으로 보여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밤 10시 단체방에는 "이제 아이들은 잠자리에 듭니다"라는 메시지가 떴다. 그리고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예설이를 담당해 주시는 선생님의 전화였다. '하~ 강화도를 가야 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핸드폰을 받고 "여보세요"라고 이야기하는데 수화기 저편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아빠"였다. 선생님인 줄 알았지만 전화를 건 것은 예설이였다.


나 : "예설아~ 잘 지내고 있어?"

예설 : "응~ 아빠 이제 자려고"

나 : "그래 졸릴 텐데 얼른 자"

예설 : "응~ 아빠 잘 자"


이렇게 불안했던 마음은 가시고 우리는 다음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여름성경학교에서 교회로 출발했다는 단체 메시지를 받고 도착 예정 시간에 예설이를 마중 나갔다. 씩씩하게 달려오는 예설이를 보면서 마음 한켠이 뭉클했다.

발달장애라는 틀에 갇혀서 예설이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예설이는 그 틀을 깨고 혼자만의 걸음을 묵묵히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학습에는 느릴지 모르지만, 생활면에서는 일반 아이들과는 별반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잘 자라주고 있는 예설이에게 너무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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