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부모에서 현재를 믿는 부모가 되기까지
예설이는 처음 병원에서 이야기했던 것에 비해 너무나 잘 성장하고 있다. 학업에 대한 부분이 아니라면 누가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라고 의심할까 싶을 정도다. 말도 또박또박 잘하고 있고, 자신의 의견도 이야기한다.
물론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다. 감정 조절이 잘 안 되고, 자신의 주장을 잘 굽히지 않는다. 자신의 주장을 잘 굽히지 않는다는 것은 좋게 표현한 것이고, 사실은 상대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대로만 생각하고 행동한다. 이런 부분은 발달장애가 아닌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들에게서도 나타나는 모습인지라 별도로 걱정하지는 않는다. 계속해서 이야기해주고 조금씩 고쳐나갈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것이 나의 역할일 테니, 그 역할을 충실히 할 뿐이다.
이 상태로만 자라준다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대의 마음도 여전히 내 안에서 도사리고 있다. '이대로 성장해주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너무나도 불투명하고 불확실하다. 이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불안하다고 해서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나 혼자만의 삶이었을 때는 주저앉아 있어도 괜찮았다. 나 혼자였으니까. 잠시 방황해도 괜찮았었다. 나 혼자였으니까.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내가 놓쳐버린 오늘 하루가 예설이에게는 1년을 후퇴하게 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마음의 무게감 또한 나의 마음을 불안하고 두렵게 만들어버린다.
전에도 이런 마음을 글로 표현했었고, 다잡기를 각오했지만 이 마음만은 쉽게 잡히지가 않는 것 같다.
무엇이 나의 마음을 이렇게 불안하게 만들고 조급하게 만드는지 고민해봤다.
삶은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았을 때, 두려움이 찾아왔던 때는 불확실성에 의해 미래가 예측되지 않았을 때가 아니었던가 싶다. 지금의 상황도 동일하다.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고 불확실하다. 내일 당장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아니, 1분 뒤에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런 불확실함과 불투명성 때문에 예설이에 대한 나의 마음이 그리도 두렵고 불안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두려움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전히 내 삶에서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책을 통해서 이겨나가는 쪽으로 선택을 하게 된다. 두려움의 가장 큰 요인은 역시나 불확실성과 불투명, 상실의 마음이다. 상실은 우리가 잃을 것이 많을 때 잃게 될까 봐 두려운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나의 마음에 이런 마음들이 있었나 보다. 예설이가 일반적인 아이로 성장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확실성과 일반 아이로 태어나지 못한 것이라는 상실감이 나를 두렵고 불안하게 만들었나 보다.
그렇다고 해서 "매일의 삶을 불안해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인가?"라고 질문한다면, 당연히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반대로 예설이가 예측했던 것보다 더 잘 성장할 수도 있다.
독서와 명상, 글쓰기를 통해서 나의 내면은 더욱 더 단단해졌다. 과거처럼 걱정과 두려움만으로 내 삶을 물들이지 않는다. 이제는 오히려 그 불투명성을 즐겨보려고 한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즐거운 것. 영화를 볼 때도 다음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아버리면 재미가 감소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현재에 충실하라", "현재를 즐겨라"라는 말들은 이런 의미라고 해석한다.
예측 불가능한 삶을 예측하려고 하기보다는 현재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