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니 wini Oct 06. 2024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고 해서



 그렇게나 퇴사를 하고 싶어 했으면서 막상 퇴사를 코 앞에 앞두니 불안하고 공허했다. 남들은 앞을 향해 달려갈 때 나는 오래도록 쉴 생각을 하니 막막하고, 허황된 이상을 바라는 건 아닐까 싶고.


 "너무 힘들면 그렇게까지 무리 안 해도 돼.

꿈은 천천히 이뤄도 돼. “


 2월 2일이었던 나의 생일날, 해병대를 나오신 외삼촌의 따뜻한 몇 마디가 나의 심금을 울렸다. 버스에서 통화하고선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쩌면 내가 제일 듣고 싶었던 말. 쉼을 택한 선택에 확신이 있다가도 없어지던 요즘, 사회적 기준과 잣대, 남들과 비교하며 과연 내 선택이 맞을지에 대한 의구심은 정처 없이 나를 괴롭히던 나날이었다.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남들보다 느린 나는 쉼이 불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람마다 각자의 속도가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나의 속도에 대해 스스로 불안의식을 잠재우고 있었다.



 "제가 이번에 퇴사를 하고 오랫동안 쉴 결심을 했는데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교수님이 생각하시기엔 어떠실까요?"

 "내 생각이 뭐가 중요해. 네 생각이 제일 중요하지.

뭐가 됐든 나는 너를 전적으로 응원하고 존중해."

뇌리에 박혔던 인상적인 말씀이라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한다.

 "직선으로 바로 가는 길이든, 돌아가는 길이든 결국엔 네가 가고 싶은 길로 가게 되어 있어."

 지도해 주셨던 교수님이셨기에 보다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조언으로 “버텨봐, 여기서 잠시 쉬는 건 경력에 리스크가 있어. 너무 오래 쉬는 건 좋지 않아.” 와 같은 이야길 해주시는 건 아닐까 겁먹었던 게 무색할 정도였다. 대화를 하는 동안, 주옥같은 말씀을 잊지 않으려고 계속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결국 어떤 선택을 내리든 내 선택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중요한 것이었다. 나는 잠시 한 발자국 물러서서 돌아가는 길을 택했고, 그 길은 오히려 나를 살게 할 것이라 선언했다. 누가 맞고 틀리고, 정답은 없을뿐더러 각자의 성향에 맞게 살아가는 것일 뿐이다. 과하게 과식하려 하지 말고,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으려 하지 말고 그저 나의 성향을 따라가 보는 것이다.

 그렇게 돌아가는 길을 택한 나는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 속에서 깊숙이 이곳저곳 탐험하고 관찰해 볼 예정이다. 마치 여행하듯 꽃도 바라보고, 나비와 초록 풀잎, 시원한 바람, 때론 갑자기 들이닥치는 소나기, 그 길 속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나를 한 뼘 더 성장시켜 주리라 믿으면서. 길을 무작정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닌, 영감을 얻고 안식과 위로를 얻으며 나만의 것으로 남기는 자산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퇴사, 익숙함을 버리고 불투명함과 모호한 낯선 것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의 용기. 퇴사 이후 나를 위한 *갭이어 프로젝트를 실천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청춘에게는 이런 마음이 중요하다. 나만의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 단 한 번뿐인 인생, 제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 "

- 나를 모르는 나에게 中 -


 퇴사를 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쉽게 말해 찌들어져 있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많이 지쳐 보인다는 이야기를 매번 들었다. 스스로도 거울을 보면 낯빛이 그러했다. 생기가 사라진 것이다. 회사 생활 4년 차, 자아를 찾아가는 느낌이 아닌 나를 잃어버린 느낌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일의 성취감과 성장이 없었던 것이 아닌데도. 아마도 내 본래의 성격을 감추고 살아왔었던 것이라 추측해 본다. 사회에서의 나는 말을 많이 아껴야만 했고, 눈치를 계속 보아야만 했다. 정중한 사람으로 무장해서 내면의 소리들은 덮어두었다. 어딘가 점점 위축되어 가고, 생기를 잃어가는 나의 모습이 달갑지가 않았다.

 그래서 퇴사를 하고 나라는 자아를 관찰해 보기로 했다. 나에 대해 성찰하고 물음표를 가져보기로. 무엇을 좋아하고, 즐기는지. 나의 강점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나에게 의문을 던지며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 안에 있는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 공들여 들여다보려 노력한 시간들이 꽤나 깊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돌아가는 길을 택한 여정 이후, 조금 더 또렷해진 시선을 가지고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시작한다. 앞으로 내릴 나의 선택들에 대한 방향의 갈피를 보다 쉽게 잡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스물아홉이라는 시간의 서사를 잘 지켜봐 주기를 바라며, 함께 성장해 나아가길 바란다.




*갭이어 : 학업이나 업무를 병행하거나 잠시 중단하면서 봉사, 여행, 진로탐색, 교육, 인턴 창업 등의 활동을 체험하며 흥미와 적성을 찾고 앞으로의 진로를 설정하는 기간을 말한다. (출처: 한국 갭이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