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35편)

*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



몇 년 전(2016년) 우연히 뉴스에서 어느 화가가 만 100세에 ‘百世淸風(백세청풍) : 바람이 일어나다’란 제목의 개인전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떤 분이시기에 그 나이가 되어서도 개인전을 여는가 하여 궁금했으나 그냥 넘겼는데, 다음 해 또 “김병기 화백, 2017 문화대상 특별상 수상”이 떠서 찾아봤습니다.

‘김병기’,

모르는 사람에게 이 이름은 그냥 수많은 화가 가운데 분이겠구나 하고 넘어가겠지만 아는 이들에게 이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참 특별합니다. 왜냐하면 1916년생이니까요. 좀 더 설명을 더 붙이자면 5, 60년대 대표화가인 「소」로 유명한 이중섭 화백과는 초등학교 동기랍니다.


그 뒤 해마다 한두 번 뉴스에 나올 때마다 눈여겨보았습니다. 2018년에는 책 한 권과 몇 군데 회원 초대전에 그림을 내고, 그 이듬해인 2019에는 "나는 추상을 넘어 오브제를 넘어 원초적인 상태에서 선에 도달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103세인 2019년 7월 중순에는 경기도 고양시 모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남북평화미술전 <남북, 북남 평화를 그리다>에 신작 2점을 내놓았답니다. 그 나이까지 살아 있음도 대단하지만, 그 나이에도 붓을 휘둘러 그림을 그리다니... 그저 범인에겐 충격 그 자체입니다. (2022년 3월 1일 별세)


제 머릿속을 아직까지 울리는 이분의 말씀은 "이제사 그림이 뭔지 알 것 같다."와, 앞으로 어떻게 사실 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붓을 쥔 채 그림 그리다 하늘로 가고 싶다."입니다. 세상에! 백 살이 넘어서야 그림이 뭔지 알겠다고 했으니 예순 넘어 대가연(大家然)하는 사람의 촛대뼈 까는 소리며, 죽을 때까지 그림을 놓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늘로 가는 그날까지 실천했다고 하니...


(김병기 화백, 연합뉴스 2016. 3. 16)


그분을 보면서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 프랭크 시나트라 -


‘세계 최초의 아이돌 가수이며,

영화에도 출연하여 골든글러브 남우주연상을 받은 가수이며,

또 마피아라는 폭력조직과 연루됐다는 소문 등 여러 가십으로 세계토픽에 수차례 나온 가수이며,

하루도 말썽이 끊이지 않았던 세계 최고의 사고뭉치 가수,


바로 그 프랭크 시나트라의 묘비에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답니다.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The best is yet to come)’

가수로서, 영화배우로서, 남자로서 (마릴린 먼로를 비롯한 수많은 미녀들과 염문을 뿌림), 누릴 걸 다 누려본 그의 묘비에 왜 하필 이 구절이 적혔을까요? 물론 묘비명이니까 그가 적은 건 아닐 겁니다. 그럼에도 그를 아는 이들은 모두 이 묘비명이 그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이라고 합니다.

평소에 그가 즐겨 뇌까린 공리주의 철학자 밀(Mill, J.S)의 말속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만족한(배부른) 돼지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겠다.”는 말에 딱 들어맞는 삶을 살았기에.


(프랭크 시나트라 - 구글 이미지에서)



다들 한 해가 끝날 즈음 다가오는 새해엔 무엇을 할까 하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찌 된 일인지 달력이 바뀌면 그 다짐이 갈수록 왜소해집니다. 나중에 뭔지 모를 정도로.

깨달은 이들은 이런 말로 위로를 해줍니다. ‘어차피 이루지 못할 큰 꿈을 잡기보다는 이룰 수 있는 작은 꿈을 잡으라.’고. 그런 말을 따르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꾸만 현실에 안주하려 하니 새로운 꿈을 가지길 꺼려하게 되고 어떤 땐 가지기도 싫어집니다.


그래서 올 정초엔 아예 계획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되는 대로 사는 거지, 뭐.' ‘어차피 계획 세운들 이루지 못할 걸, 뭐.’ 그 덕(?)인지 세운 꿈이 없으니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도 떨어질 때가 다 되었습니다. 그 사이 무위도식하며 산 건 아니나 뭘 하며 살았는지 뚜렷하진 않고...

이랬던 제가 김병기 화백에 관한 부음 기사를 다시 읽으면서 젊은(?) 놈이 벌써 이래서는 되겠는가 하는 부끄러움이 솟구쳤습니다. 백 살 넘었으면 지는 해가 아니라 이미 진 해입니다. 헌데 그 나이에 들어서야 그림이 뭔지 알 것 같고, 살아 있는 한 작품을 계속 발표하겠다는 말이 제 머릿속을 철퇴로 내리쳤습니다.


문득 저랑 나이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40쯤 더해야 합니다. 그렇게 오래 사신 이 분의 이 말은 그냥 던지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진심일 겁니다. 한낱 ‘집 지킴이’로 끝내려는 저 같은 겉 늙은이에게 벌써 꿈을 버리려 하느냐고 죽비로 두 어깨를 매섭게 내리치는 말이기도 합니다.


(전위예술가 무세중 - 구글 이미지에서)



그렇습니다. 이제는 중병에 걸리지 않으면 80세까지는 산다고 합니다. 아니 의사들이 죽지 않게 만든다고 합니다. 그 전제에 따르면 아직 저는 10년은 더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벌써 주저앉으려 하다니… 그냥 ‘집 지킴이’로 사는 걸 당연시했으니...

텃밭을 갈고, 손주랑 놀아주고, 돈 모아 여행 다니고, 짬 내 산을 오르고... 이런 일도 다 소중합니다. 그럼에도 창의적인 일 하나 붙잡는데 인색했으니. 명색이 글을 쓴다고 하면서 생활글 말고 알맹이 있는 글 한 편 쓰겠다는 사소한 계획조차 세우지 않았다니...


예술을 하는 이들에겐 정년이 없습니다. 밥숟가락 놓은 날이, 즉 생을 끝내는 날이 바로 정년이니까요. 예술 작업은 묵은 나이에도 할 수 있는 ‘평생 일거리’입니다. 아니 오히려 연륜이 쌓일수록, 작품은 깊이를 더합니다.


(샤갈의 Moi et le Village, 1911 - 구글 이미지에서)


그래선지 예술계에서는 말년에 걸작을 남긴 이들이 한둘 아닙니다.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은 63세에 [시계 교향곡]을, 베르디는 73세에 오페라 [돈 카를로]를 작곡했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61세에 [레미제라블]을, 톨스토이는 72세에 불멸의 저서 [부활]을, 괴테는 여든 살이 넘어서 [파우스트]를 완성했습니다.

또한 샤갈은 82세에 [대형 서커스]라는 걸작을 그렸고, 피카소도 80이 넘은 나이에도 많은 작품을 그리거나 개작하였으며, 추사의 제자로 글, 그림, 글씨에 모두 능하여 삼절(三絶)이라 불린 소치 선생도 80이 넘은 나이에도 붓을 꺾지 않았다고 합니다.


현재 생존한 이들 가운데서도 노벨문학상을 탄 가수 밥 딜런은 80세에 ‘Murder Most Foul’을 발표했고, [에이리언] 시리즈로 유명한 리들리 스콧 감독은 85세에 에이리언 시리즈 3편인 에이리언 프리퀄을 제작 중이라 합니다.

우리나라로 오면 전 부산대 음대 교수인 제갈삼 님은 만 97세(글 쓴 2021년 기준)의 나이로 매일 오후 3시만 되면 피아노 앞에 앉는답니다. 전위예술가 무세중 님은 86세(글 쓴 2021년 기준)의 나이에도 무대에 올라 그 열정을 식히지 않고 있답니다.


(피아니스트 제갈삼 교수 - 구글 이미지에서)


사람은 죽기 전에 이런 말을 많이 한다고 하지요. ‘딱 10년만 더 삶이 주어진다면 ~~~를 하겠다.’고. 헌데 이 질문엔 이런 답이 나온답니다. ‘10년의 삶이 주어져도 그냥 지내는 사람은 그냥 지낼 뿐이다.’고.

올해 아직 남아 있는 보름 동안 쓴다 쓴다 하며 벼루기만 한 우화를 붙잡으렵니다. 쓰다 안 되면 내년에, 또 안 되면 그다음 해에. 놓지 않으면 우화집 펴낼 기회는 오겠지요. 이리 생각하니 갑자기 핏속에 생기를 불러일으키는 보약이 들어오는 듯합니다. 공진단을 먹은 것도 아니요, 야관문 먹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 붉은피톨이 힘차게 돌다니...


이 글 읽는 모든 분들, 저랑 함께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하고 외쳐 보지 않으시렵니까. 그런 뒤 “내 생애 최고의 순간 만들 날이 얼마 멀지 않았다.”라고 다시 스스로에게 다짐해 봅시다.


*. 오늘 글은 '목우씨의 일기장(2021년 12월 15일)'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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