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33편)
좋아하는 꽃은 많으나 꼭 하나만 들라 하면 '하늘말나리'다. 하늘말나리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우리 집 뒤 언덕 위에 피어나는 꽃이 그리도 좋다. 혹 아는 이가 꽃밭에 자라고 있는 화초를 탐내면 웬만하면 다 주지만 하늘말나리만은 절대로 캐 주지 않는다. 몇 그루 되지 않는 데다 옮기면 잘 죽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하늘말나리는 아무데서나 자라지 않는 꽃이다. 제가 서야 할 자리 아니면 몸을 붙이지 않는다. 이 점이 나를 끌어당긴다. 게다가 하늘말나리는 떼 지어 자라지 않고 홀로 자란다. 홀로 자라도 그 귀태는 돋보인다. 아니 홀로 자라기에 귀태가 더 드러나는 걸까?
하늘말라리는 고만고만한 크기의 꽃 속에 함께 있을 때는 잘 표티 나지 않으나 곧 무리를 헤치고 나와 우뚝 서면 그 고운 태가 확 드러난다. '주머니 속의 송곳은 언젠가는 뚫고 나오기 마련이다'란 뜻의 '낭중지추(囊中之錐)'에 딱 들어맞는 꽃이다.
그런데 하늘말나리 꽃대가 풀솦을 뚫고 나오는 걸 보면 아찔하다. 왜냐면 너무나 가늘고 길게 뻗으며 올라오기에 바람 불면 쉬 부러질까 두렵다. 사실 바람이 불면 잘 휘어진다. 곧 꺾어질 것처럼. 그만큼 꽃대가 가늘다.
헌데도 하늘말나리가 바람 때문에 줄기가 부러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름의 영리한 생존 방법을 터득했음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아마도 이 종(種)은 쉬 멸종되었으리라. 앞서 다른 꽃무리들 속에서 우뚝 선다는 표현을 했는데 바로 이것이다.
홀로가 아니라 다른 풀꽃에 기대어 자란다. 적어도 꽃대의 2/3 정도는 항상 다른 꽃무리들에 기대고 있어 나머지 1/3만 바람에 견디면 되기 때문이다. 즉 다른 풀꽃이 버팀이 돼 주니까 그들을 등받이로 하여 버티는 셈이다. 이 점이 하늘말나리로 하여금 풀꽃 무리 속에 오연히 서 있도록 한다.
내가 즐겨(?) 찾아가는 대학병원이 있다. 환자 대기실에 있다가 전광판에 “○○○씨 진료실”이라는 안내문자가 뜨면 진료실 앞으로 옮긴다. 문제는 환자 대기실엔 등받이가 있는 의자인데, 진료실 앞 의자는 등받이가 없다. 거기서 기다리는 시간은 짧지만 은근히 긴장하게 된다.
등받이가 없으니까 무심코 앉다 보면 뒤로 자빠질 수 있다. 그래선지 그곳엔 아주 친절하게(?) “등받이가 없으니 뒤를 주의하세요.”란 안내문까지 붙어 있다. 그렇지만 나는 사람이 좀 덜 돼 선지 언젠가 한 번 뒤로 넘어진 적이 있다. 다행히 다치진 않았으나 얼마나 놀랐던지… 왜 이렇게 배치했느냐고 따졌더니 간호사들은 모른단다. 나처럼 가끔 넘어지는 환자들이 있다는 데도 방침이 그래서 어쩔 수 없단다.
한때 서울에 제법 오래 머문 적 있다. 어린 손녀를 국립중앙도서관 근처 어린이집까지 데려다줘야 하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다시 딸네 집까지 갔다 왔다 하기 귀찮으니까 그냥 끝날 때까지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다행히 디지털실엔 인터넷도 되니 심심하진 않았다.
거기는 의자도 괜찮았다. 의자가 '괜찮다'라는 말은 '편하다'라는 뜻이고, 잠자기 좋다는 말이기도 하다. 식사 후 커피 한 잔 마신 후 잠시 눈 붙이러 휴게실에 들렀는데 거기 의자는 등받이 있는 의자와 없는 의자 두 종류였다.
처음엔 등받이 없는 의자만 비어 있으면 어쩔까 염려했는데 바로 다음날 기우임을 알았다. 등받이 있는 의자보다 없는 의자가 더 인기 있었기에. 그 까닭을 살펴보니 젊은 축에 드는 이는 없는 걸 선호하고, 중씰한 이들은 있는 걸 선호하는데 거긴 젊은이들이 많이 오는 곳이었다.
한 벗이 내 얘기를 듣더니 이리 말한다.
“자네가 기댈 곳이 필요한 나이가 됐다는 말이네.”
'기댈 곳?' 그리 들으니 정말 그런 것 같다. ‘등받이’가 없으면 허전한, 아니 좀 불안한 게 사실이니까. 정말 기댈 곳이 필요할 나이가 되었나?
문득 생각하니 요즘 들어 아내에게는 물론 아들딸에게도 의견을 자주 묻는다. 전에는 나 혼자 생각으로 결정하고 행동했는데 이젠 그렇지 않다. 내가 은근히 철들었나 여겼더니 벗의 얘기대로라면 홀로는 자신 없어 은근히 기댈 곳을 찾는다는 면으로 해석함이 더 나은 듯하다.
기댐의 가장 완벽한 형태는 사람 '人'이라 한다. 중국 한자든 우리 한글이든 ‘사람’을 뜻하는 원래의 상징 형태는 ‘ㅣ’였다. 한글 모음을 만들 때의 ‘天地人’ 삼재(三才)에서 天은 ‘ㆍ’로, 地는 ‘ㅡ’로, 人은 ‘ㅣ’로 표시한다.
그래서 한자도 (서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처음 형태는 ‘ㅣ’였으나 그 하나로는 서 있는 존재의 의미로는 약하여 하나를 더 붙였는데(‘ㅣㅣ’) 그 표기 형태를 변형시켜 만든 게 ‘人’이라 한다. 이렇게 만들고 보니 정말 절묘한 글자가 되었다.
하나 하나로 서 있을 때는 불안했는데, 서로를 기대는 형태가 되고 보니 너무 안정적이지 않는가. 그로부터 ‘사람은 홀로 존재하지 못하고, 둘 이상이 함께 어울려(기대어) 사는 존재’라는 의미로 해석되어 왔다. (사람 人의 어원설은 다양하며, 위에 풀어놓은 내용이 꼭 진리가 아님)
그럼 나는 이제사 사람의 속성대로 살게 되었다는 말인가. 등받이가 없으면 허전한, 뭔가에 기대지 않으면 허전한, 누군가와 어울리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말인가. 하기야 내게도 하늘말나리처럼 든든한 받침대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이젠 껍데기만 남은 존재라 등받이라도 없으면 어느새 불안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